“재난문자 발송해 달라”… 서울시 요청 78분간 묵살한 용산구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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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10시 53분부터 지시
수차례 실패 후 시가 직접 보내
용산구는 0시 11분에야 발송
서울시 내부 보고도 허점 드러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부상자 쾌유와 진상규명 발원’을 위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부상자 쾌유와 진상규명 발원’을 위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청이 이태원 참사 당일 ‘재난문자를 발송해달라’는 정부와 서울시의 다급한 요청에도 78분간 문자를 발송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은 해당 구청에서 재난 문자를 보내게 돼 있는데, 구청이 이를 이행하지 않자 결국 서울시가 한발 늦게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사고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53분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을 통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재난문자방송 송출(필요시)’이라는 상황 전파 메시지를 받았다. 이어 시는 사고 지역의 지자체인 용산구청에 재난문자발송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난 문자는 1시간이 넘도록 발송되지 않았다.

지자체의 재난문자 발송이 늦어지자 재난 주무 부처인 행안부가 재난문자 발송을 재차 지시했지만, 용산구청은 반응하지 않았다. 행안부의 ‘지방자치단체 긴급재난문자 운영 지침’에 따르면 자치구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은 구청에서 안내문자를 보내게 돼 있다. 서울시 등 광역단체는 2개 이상 자치구에서 발생한 재난에 대해 문자를 발송한다. 행안부가 운영하는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은 상황전파시스템과 재난문자방송시스템 등 25개로 구성돼 있다. 시와 구청 등 지자체 담당자가 전산망 접근 권한을 갖고 있으며 상황 발생 시 해당 내용을 입력해 재난문자를 송출해야 한다.

서울시 측은 “당시 재난문자를 구민에게 송출해야 하는 용산구청에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며 “오후 11시 27분에 용산구 재난문자 담당자와 통화가 이뤄졌으나 이후에도 재난문자는 여전히 발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시는 긴급한 상황임을 고려해 당일 오후 11시 56분에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 호텔 앞 긴급사고로 현재 교통통제 중. 차량 우회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직접 발송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시간 41분이 지난 시점이다. 용산구청은 이보다 뒤늦게 다음 날 0시 11분에서야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신속한 문자 송출을 통한 재난 안내 역할을 해야 할 구청이 일차적인 대응을 놓친 셈이다.

재난 문자가 제때 송출됐다면 사고 지점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길을 막아 원활한 구조 활동과 2차 피해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음에도 구청의 이 같은 대응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용산구청의 재난문자 업무는 안전재난과에서 담당한다. 당시 용산구청 재난문자 업무를 맡았던 직원은 이날 이태원 참사 수사를 진행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는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56분부터 다음 날 오전 4시 12분까지 7차례, 용산구청은 다음 날 0시 11분과 오전 1시 37분 두 차례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재난문자 발송이 늦어진 경위에 관해 용산구청 측은 “담당 부서에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구청과 함께 서울시 내부 보고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태원 참사 당일 시 재난안전상황실이 사고 발생 11분 만에 소방당국에서 통보를 받고도 상부에 즉시 보고하지 않아 시장단이 30분 더 늦게 상황을 알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럽 출장 중이었고, 참사가 발생했을 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출장에 동행한 이광석 정책특보로부터 오후 11시 20분(현지 시각 오후 4시 20분)에 이태원 상황을 처음 보고받았다. 또 김의승 행정1부시장과 한제현 행정2부시장 등이 사고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후 10시 56분에 소방재난본부가 보낸 구조 대응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향후 시·구청 구분 없이 신속한 상황 대처가 이뤄져 재난 정보가 적기에 시민들에게 전달되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행정 기관의 즉각적인 문자 발송과 상황 파악 등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이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을 두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 본부장은 “굉장히 송구스럽다. 문제점을 철저하게 점검해 개선방안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위험성을 사전에 진단하고 지역의 특성에 기초한 맞춤형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이와 함께 “지역의 위치와 도시화 정도에 따라 위험의 양상이 다르다”면서 “이에 따라 다른 처방, 다른 컨설팅을 통해 지역사회 전체의 안전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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