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환자 입원할 데 없어 심야시간 대구까지 이동”[갈 길 먼 응급입원]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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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장지원팀 동행기

“정신질환 아들이 때려” 부모 신고
설득부터 병상 확보 모두 처리
입원·급박성 법령 의존해 판단
부산시립정신병원 자리 차면
울주·양산·김해 ‘뺑뺑이’ 불가피
“비전문가라 잘못된 결정 우려도”

지난 14일 부산 수영구 한 아파트에서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을 위해 현장에 출동한 ‘응급입원 현장지원팀’. 지난달 부산경찰청은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 업무를 전담하는 현장지원팀을 신설했다. 지난 14일 부산 수영구 한 아파트에서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을 위해 현장에 출동한 ‘응급입원 현장지원팀’. 지난달 부산경찰청은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 업무를 전담하는 현장지원팀을 신설했다.

“조현병 남성이 물건을 던지고 가족을 위협한다고 합니다!”

지난 14일 오후 10시 30분 부산경찰청 응급입원 현장지원팀. 지구대에서 전화가 걸려오자마자 응급입원 현장지원팀 당직을 서던 박용오 경사와 손호진 경장은 다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전화기를 붙든 채였다. “나이는요? 병원 전력은요? 폭행 있었나요? 약은 먹은 상태인가요? 언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던가요?” 박 경사의 질문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흥분한 환자가 빠른 시간에 안정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크게 해칠 수 있는 상황. 박 경사와 손 경장의 신경은 곤두섰다.


9년 전 조현병을 진단받은 30대 남성 A 씨는 이날 수영구의 한 아파트에서 물건을 던지고 아버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약물 치료를 한동안 멈추는 바람에 조현병 증상은 악화됐다. 박 경사는 차량에 타자마자 부산시립정신병원에 잔여 병상을 확인하고 응급입원을 통보했다. “미리 선점하지 않으면 가는 도중에 다른 환자가 들어가 병상이 다 차 버릴 때가 있어요.” 박 경사가 말했다.

오후 11시. 신고가 들어간 수영구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A 씨가 지구대 경찰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A 씨 아버지는 “최근 약을 먹지 않고 술이나 커피 등을 먹으면서 증상이 악화됐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아버지를 폭행한 정황도 명백했다. 박 경사와 손 경장은 응급입원을 결정했다. 현장지원팀이 응급입원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자·타해 위협과 급박성. 비전문가인 경찰은 법령에 의존해 응급입원을 판단한다.

자체 판단이 어려울 때에는 부산광역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요원에게 문의하거나 현장 합류를 요청하지만 전문요원과 ‘원팀’은 아니다. 한시가 급하거나 소통이 어려운 야간에는 전화 문의나 현장 판단으로 응급입원이 이루어질 때가 많다.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고, 병상을 찾고, 병원에 환자 상태를 설명하는 모든 단계가 경찰 몫이다.

이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야간에 상시로 운영되는 부산의 정신병원은 단 1곳, 부산시립정신병원이다. 이곳 병상이 다 차면 울주, 양산, 김해까지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지난달 어느 날 자정에는 동래구에서 한 여성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산에는 병상이 없어 다른 곳의 병원을 수소문하느라 애를 먹었다. 겨우 찾은 울주군의 한 병원에 응급입원을 시킨 뒤 부산경찰청에 돌아왔을 때에는 새벽 3시가 훌쩍 넘었다.

지난달 부산경찰청은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 업무를 전담하는 응급입원 현장지원팀을 출범시켰다. 그동안 지구대 경찰에게 맡겨진 응급입원 업무가 치안 공백을 낳는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지원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장지원팀은 응급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현장에서 환자를 후송하고 입원 절차를 진행한다. 병상을 찾고 입원 절차를 밟는 데에는 평균 서너 시간이 걸린다. 병상이 부족한 야간에는 인근 지역에서 병상을 구해야 해 길에서 5~6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현장지원팀의 경찰들은 많은 정신질환자를 만나면서 “반 전문가가 됐다”고 한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도 박 경사는 끊임없이 A 씨와 A 씨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약을 마지막으로 먹은 시점, 수면 시간, 식사 시간, 마지막 진료 기간 등이다. 의사에게 A 씨의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박 경사는 “정신질환자는 약물 치료와 재활 치료만 원활하게 하면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해나갈 수 있다. 약물 치료가 중단되면 증상이 악화된다”며 “가족이 전부 관리하기 어려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립정신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자정이 넘었다. 의사를 호출하자 병원에 불이 켜졌다. A 씨의 응급입원 의뢰서를 작성하자마자 박 경사의 전화벨이 울렸다. 북구에서 한 미성년 정신질환자 B 군이 가족을 위협한다는 신고 전화였다. 현재 부울경에는 미성년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한 곳도 없어 입원시키려면 왕복 4시간 거리의 대구까지 가야 한다.

박 경사는 “구체적인 폭행이 없어 응급입원은 어렵다. 입원이 필요하다면 대구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구대 경찰과 B 군의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전화 속에서 B 군 아버지의 목소리가 절박해졌다. “대구까지요? 지금 입원시킬 수 있는 가까운 병원은 아무 데도 없다는 건가요?”

전화를 끊은 박 경사는 한동안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박 경사는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전공도 아닌데 지금으로선 경찰이 응급입원과 관련해 현장 판단과 입원 처리를 도맡아야 한다”면서 “급박성과 자·타해 위협이라는 법령을 기준 삼아 판단하지만 이런 신고가 들어오면 혹시 이후에라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매번 불안하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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