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고초’ 거론에 국힘 “고인에 대한 모독”
전직 대통령 수사 언급하며
“야당 탄압 수사” 강력 비난
친노·친문 지지층 결집 나서
여 “개인 비리 본질은 그대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0일 검찰 조사 직전 밝힌 입장 발표에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거론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김 전 대통령과 검찰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노 전 대통령처럼 자신에 대한 수사 역시 정권의 수족인 검찰이 ‘야당 탄압’ 의도로 없는 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김대중 대통령은 내란 음모죄라고 하는 없는 죄를 뒤집어썼고 노무현 대통령은 논두렁 시계 등등의 모략으로 고통을 당했다”며 “그것은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검찰 리스크였고 검찰 쿠데타였다”고 말했다. 이어 “조봉암 선생 사법살인,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은 모두 검찰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며 “검찰 공화국의 이 횡포를 이겨내고 얼어붙은 정치의 겨울을 뚫어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권 차원의 하명 수사 등 과거 검찰의 ‘흑역사’를 거론하며 이번 수사 역시 야당의 예봉을 꺾기 위한 조작 수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선을 긋고 있는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 지지층 결집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언급한 사례들이 야당 지도자에 대한 검찰 수사라는 형태만 같을 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에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단 김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은 사법적으로도, 또 역사적으로도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 장악을 위해 고문 등 갖은 수단을 통해 사건을 조작했다고 판명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는 사건 실체와는 별개로 망신 주기 의도가 다분한 정치적 공격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반면 이 대표의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은 이들 사건에 비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산건설, 네이버 등 굴지의 기업이 낸 후원금 규모 자체가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크고, 이들 기업 모두 용도변경, 사옥 신축 등 이 대표가 당시 시장으로 있던 성남시와 각종 민원으로 얽혀있었다는 점에서다. 이 대표는 이날 입장 발표에서도 당시 후원금 모집을 ‘적극 행정’이라고 강조했지만, 지자체가 인허가권을 동원해 기업 후원금을 유도했다면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대표도 검찰 수사에서 당시 해당 기업에 대한 인허가 행위와 성남FC 후원금 모집이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적극 행정이라는 주장으로 법적 처벌을 피해가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이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제3자 뇌물죄로 처벌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를 거론하며 “박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으로부터 ‘묵시적’ 청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3자 뇌물죄로 처벌받았지만 이 대표는 지금까지 드러난 검찰의 정보 등을 보면 ‘명시적’인 청탁을 받았다”면서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제3자 뇌물죄의 무게가 중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경찰이 이 사건을 무혐의로 송치한 것을 ‘조작 수사’의 강력한 증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 역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실제 당시 성남FC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이 대표에 대한 서면조사를 한 뒤 무혐의 취지로 관할 지청인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사건을 넘겼지만, 당시 성남지청 수사팀은 재수사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이 때문에 재수사에 부정적인 박은정 성남지청장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이날 ‘김대중·노무현’ 언급을 맹비난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가 자신의 검찰 수사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고초에 비유했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행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신 분들의 이름을 지금 상황에 올리는 건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과 본인의 개인 비리를 동일 선상에 놓고서 노골적으로 진영 대결을 부추기는 모습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욕 보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