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2억 게워 내고 행정 잘못 확인한 ‘로봇랜드 소송’ [사건의 재구성]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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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부지 제때 이전 못 받아”
민간사업자, 디폴트에 처해
해지시지급금 청구 소송 제기
1심 판결 불복 경남도·창원시
항소심도 패소 후 상고 포기
3년여 소송으로 이자만 530억

잘못된 행정으로 16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물게 된 경남도와 창원시에 대해 비판이 나온다. 마산로봇랜드 전경. 경남 창원시 제공 잘못된 행정으로 16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물게 된 경남도와 창원시에 대해 비판이 나온다. 마산로봇랜드 전경. 경남 창원시 제공

“피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지난 12일 오후 2시 부산고법 창원제2민사부의 주문이다. 약 3년에 걸친 지루한 ‘로봇랜드 소송’은 단 몇 초의 주문으로 모두 정리됐다. 1600억 원 이상의 혈세를 게워 내게 된 행정의 잘못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결말이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마산로봇랜드 사업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소송의 단초인 민간사업자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시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2019년 9월 30일. 대주단에서 950억 원을 빌린 민간사업자 로봇랜드(주)는 이날까지 1차 대출원금 50억 원을 갚아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대출금 상환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끝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민간사업자는 다음 달 곧바로 경남도(사업시행자)·창원시(공동사업자)에 실시협약 해지를 통보하며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2020년 2월에는 도·시와 이들에게서 업무를 위탁받은 경남로봇랜드재단을 상대로 ‘해지시지급금 등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 ‘로봇랜드 소송’이 시작됐다.

마산로봇랜드 사업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대 126만 ㎡에 사업비 7000억 원을 들여 민관합동 개발방식으로 1단계(테마파크), 2단계(숙박시설) 조성을 골자로 한다. 애초 울트라건설이 사업을 추진했지만 2014년 1단계 사업을 완료하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이후 2015년 대우건설이 다시 실시협약을 맺고 공사를 재개, 2019년 테마파크는 문을 열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디폴트 위기에 몰린다.

민간사업자는 2단계 사업 부지 중 일부 펜션 부지 1필지를 되팔아 상환 기한에 다다른 대출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땅 소유권을 창원시로부터 이전받지 못한 탓에 상환하지 못했다는 논리를 폈다.

이를 두고 경남도와 창원시 안팎에서는 민간사업자가 해당 마산로봇랜드의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해 사업을 포기하려 꼼수를 부린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가 된 펜션 부지에 대해서는 실시협약·조성실행계획상 대략적 위치, 면적만 정해졌을 뿐이며, 펜션 건설에 좋은 조건인 대체 부지를 제안했지만 되레 민간사업자가 거부했다고 토로했다. 또 2단계 사업 관련 설계도 제출이나 이행보증금 납부 등 선행의무는 이뤄지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갑론을박은 1년 8개월간 6차례 이어졌고, 2021년 10월 창원지법 민사5부는 “피고인들은 원고에게 투자금과 관리·운영비 등 해지시지급금 1125억 8400여만 원,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민간사업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경남도와 창원시, 재단 등 피고 측은 “민간사업자가 주장하는 펜션 부지 공급 시기는 실시협약과는 달리 민간사업자의 대출 약정상의 기간을 기준으로 삼은 무리한 요구였다”며 재판부가 민간에 유리하도록 협약 내용을 해석했다고 주장하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들은 해지시지급금에 연 이자율 15%를 안고 항소심에 돌입했다.

항소심은 지난해 3차례의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지난 12일 판결을 선고했다. 1심과 같이 펜션 부지 1필지를 제때 이전하지 않은 게 실시협약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급액만 더 불어났다. 소송 지연으로 이자 등 530여억 원이 붙어 민간사업자에게 지급할 금액은 1662억 원이나 됐다.

결국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경남도와 창원시는 “상고 실익과 로봇랜드 사업 정상화를 고려해 상고를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창원지법에 1662억 원을 공탁했다. 결국 완패한 셈이다.

졸지에 거액을 날린 경남도와 창원시는 서로 ‘네 탓’을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도 감사위원회가 “창원시가 로봇랜드 조성 부지 출연 의무 이행을 주저했고, 펜션 부지 1필지 출연 업무 지연 처리가 실시협약 해지의 결정적 사유가 됐다”고 지적하자, 창원시는 “재단이 문제의 펜션 부지 1필지를 누락했고 상당한 시간이 지연된 후에 이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마산로봇랜드 사업 정상화를 위해 도에서 향후 3년간 83억 원을 투입해 리얼로봇 등 콘텐츠 강화와 컨벤션센터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썩 미덥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3년여간 테마파크를 운영하면서 영업손실액이 160억 원으로 줄곧 적자를 보여 왔기에 사업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기 때문이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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