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얼어붙어도 삶까지 얼진 않는다
최강한파 속 겨울나기 안간힘
칼바람에도 쓰레기 치우는 청소원
핫팩 하나 끼고 배달 나선 라이더
인파 끊긴 거리 70대 붕어빵 장수
그들이 사는 이 겨울 춥지 않기를
두꺼운 장갑과 방한 신발, 넥워머(겨울 목토시)로 중무장했지만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은 천과 천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온다.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 비탈길을 쓸고 쓰레기를 모아 수거하는 그는 두꺼운 방한복과 추위에 굳은 몸 때문인지 평소보다 청소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잠바 주머니에 든 핫팩은 강추위에 이미 식어 버렸지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작은 열기도 그에겐 소중하다.
25일 오전 10시께 거리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공 모(47) 씨는 이날 오전 6시부터 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웠다. 이미 몸은 얼음장이었고, 넥워머 안쪽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공 씨는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얼굴 주변에 얼음 같은 서리가 계속 생긴다”며 “10년 가까이 환경미화원으로 일했지만 이런 강추위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쉬엄쉬엄 일해도 되지 않냐는 질문에 공 씨는 “춥다고 쉬면 거리가 더 지저분해질 것이다”라며 “가정이 있으니 성실하게 일해야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
24일 오후부터 기록적인 한파가 거리를 덮쳐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했다. 특히 거리의 노동자들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등으로 허덕이는 저소득층은 난방비 인상 소식과 함께 찾아온 한파가 더 매서웠다. 최강 한파 속 서민들은 힘겨운 겨울을 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낮 12시 점심시간 무렵, 병원과 사무실 등이 밀집한 부산진구 서면 메디컬스트리트 주변 거리는 한산했다. 배달 라이더들만 바쁘게 움직였다. 한 음식점 앞에만 3~4명의 라이더가 목에 핫팩을 대고 대기했다. 그들이 대기하는 시간은 길어야 2~3분. 음식이 나오자마자 오토바이에는 급하게 시동이 걸렸고 곧 사라졌다.
배달 노동자 남 모(30) 씨는 지금은 쉴 틈이 없다고 했다. 추우면 추울수록 배달이 늘어나는 대목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배달 주문 알림창이 쉴 새 없이 떴다. 스마트폰 배달 알림창을 보려고 장갑을 벗자 얼어서 붉게 물든 손이 나왔다. 이날 한낮에도 기온은 영하권이었고,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찬바람을 뚫고 배달을 가야 하기에 오토바이에서 남 씨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훨씬 밑돈다. 남 씨는 “설 연휴 마지막 날부터 이날까지 평소보다 2배 이상 배달 주문이 늘어났다”며 “물론 얼어 죽을 것 같이 춥지만,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든 요즘에 그게 문제냐”고 말했다. 이어 “대목을 놓칠 수 없어 배달 하나하나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추위 탓에 거리에는 사람이 줄었지만,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최 모(70) 씨는 자리를 지켰다. 한밤중에 얼어붙은 팥이랑 밀가루를 녹이느라 정신이 없던 그는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절박함과는 달리, 한파로 인해 2시간 넘도록 손님은 한 명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최 씨는 “매출도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 어제는 5만 원어치도 못 팔았다”며 “난방비도 올랐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밖에 나와서 일하는 것이 훨씬 건강에 좋지 않겠나”라며 쓴웃음을 보였다. 손님도 적고 날도 추운데 굳이 거리에 나온 이유를 묻자 그는 “먹고살려면 방법이 있나. 혹시 붕어빵이 생각나서 찾는 손님이 있을 텐데, 일을 그냥 쉽게 접지는 못하겠다”고 답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