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키시마호 희생자 12구 영락공원 방치 확인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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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의문의 폭침 수천 명 희생
정부 확인 없이 유골 전국 흩어져
부산일보·서일본신문 공동 추적
영락공원 내 무연고자실에서 발견
사건 진상 규명 새로운 계기 될 듯

사진은 2014년 8월 부산 연안여객터미널 옆 수미르공원에서 열린 광복 직후 강제 징용자 등 한국인을 태우고 귀국하다 폭침된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 모습 .부산일보DB 사진은 2014년 8월 부산 연안여객터미널 옆 수미르공원에서 열린 광복 직후 강제 징용자 등 한국인을 태우고 귀국하다 폭침된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 모습 .부산일보DB


수십 년이 넘도록 부산 영락공원에 유골로 방치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희생자(부산일보 2022년 8월 12일 자 1면 등 보도) 가운데 ‘우키시마호’ 참극의 피해자가 다수 확인됐다. 1970년대 국내 반환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골의 봉안 현황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이 한·일 합동 취재를 통해 국가가 손을 놓고 있던 희생자 유골을 찾아낸 것이다.

우키시마호는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 한국인 강제 노역자와 그 가족 등을 태우고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출항한 ‘1호 귀국선’이었다. 당초 목적지는 부산항이었으나, 뱃머리를 돌려 교토 마이즈루만으로 향했고 이후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당시 승선자는 8000여 명, 사망자는 최소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옛 오미나토 해군시설부가 작성한 우키시마호 희생자 명단. 마이즈루모임 제공 일본 옛 오미나토 해군시설부가 작성한 우키시마호 희생자 명단. 마이즈루모임 제공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 취재진은 최근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지하 무연고자실에 보관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194구 중 최소 12구가 우키시마호 침몰 피해자임을 확인했다. 〈서일본신문〉이 입수한 옛 오미나토 해군시설부의 우키시마호 희생자 명단과 영락공원의 명단을 대조한 결과다. 일본 후쿠오카에 본사를 둔 〈서일본신문〉은 〈부산일보〉 자매지로 부산에 파견 기자를 두고 있다.

현재 영락공원에 남아 있는 194구는 1970년대 반환 이후 40여 년간 유족을 찾지 못한 유골이다. 이 가운데 본적지 등 일부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우키시마호 희생자가 추가될 여지도 있다. 부산시설공단 장사관리팀 정병진 과장은 “희생자 명단에 있는 12명의 유골이 영락공원에 봉안된 것이 확인된다”면서 “다른 유골도 유족으로 보이는 봉안 신청자 정보가 남아 있어 우키시마호 희생자와 대조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골의 국내 봉안 현황은 그간 밝혀지지 않았다. 행정안전부와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우키시마호 유골 중에서 241구가 3차례에 걸쳐 한국으로 넘어왔다. 1971년 38구, 1974년 198구, 1976년 5구다. 그러나 우키시마호 희생자라는 별도 표기 없이 다른 강제징용자 유골과 뒤섞여 들어왔고, 이후 한국 정부의 추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타국 바다에서 비극적 사건으로 희생된 것도 모자라 가까스로 국내로 봉환된 유골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족과 시민단체도 두 차례 영락공원을 찾아 우키시마호 희생자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행정안전부 유해봉안과 관계자는 “국내 안치 현황을 확인하려면 봉환 당시 기록을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다”면서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이번 확인을 계기로 전국 유골 현황을 재조사하고, 일본에 남은 유골까지 서둘러 봉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잃어버린 우키시마호 파편을 되찾고 추모 분위기를 확산시켜 사건의 진상을 다시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북아평화·우키시마호희생자 추모협회 김영주 회장은 “희생자 추모 공간을 따로 마련해 뼈아픈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히라바루 나오코(서일본신문)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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