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빨래방·사랑방·공유주택… 이웃이 ‘복지 틈새’ 메웠다[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②]
[황혼에 만난 마지막 가족] 2. 부산 통합돌봄시설 가 보니
개금동 기찻길 옆 마을 거점
골목 빨래방 ‘누구나 때가 있다’
어르신 함께 밥 먹고 안부 물어
주민 활동 매개체 ‘고립’ 막아
마을 공동휴게실 ‘정겨움센터’
교육·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
‘살던 곳서 여생’ 원하는 노인들
“이웃은 마지막 가족이자 복지사”
부산 부산진구 개금온정로 26번길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기찻길 옆 숨겨진 마을이 있다. 양옆에 30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과거 기찻길 자리였던 키 작은 마을은 더 낮아졌다. 슬레이트 지붕은 세월에 칠이 벗겨져 색이 희미해졌다. 지난 17일 아침 일찍 찾은 개금3동 10통. 마을로 내려가는 가파른 철제 계단 옆에 이정표가 보였다. ‘누구나 때가 있다’.
‘누구나 때가 있다’는 2020년 6월 문을 연 골목빨래방이다. 노인이 사는 곳에서 건강 관리, 요양 서비스 등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받도록 지원하는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마을이 있는 곳은 과거 기찻길이었던 탓에 도시가스가 들어오기 어렵다. 어르신들은 여전히 기름보일러나 LP가스, 연탄을 이용한다. 빨래나 목욕을 위해 덥힌 물이 필요할 땐 일일이 물을 데워 바가지로 물을 옮겨다 쓴다. 빨래, 목욕이 어려운 이곳 어르신들을 위해 세탁기, 건조기, 샤워실 등을 마련한 공간이다.
이처럼 공공이 메우지 못하는 복지의 빈자리를 채우는 ‘마을 공동체’가 부산 곳곳에서 움직인다. 2018년부터 부산시 시범사업으로 대안가족 사업이 이루어졌고, 이후 2019년부터 국책 사업인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이 운영됐다. 사는 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별로 통합돌봄망을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골목빨래방과 같은 동네 곳곳의 돌봄시설에서 이웃은 서로 가족이자 간병인, 사회복지사가 된다.
‘누구나 때가 있다’에서 어르신들은 빨래만 하지 않는다. 빨래방 지킴이 주민 김월임(72) 씨는 연중무휴 빨래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주민들이 밥때가 되면 반찬을 들고, 낮에는 과일을 들고 빨래방을 찾는다”고 한다. 개금3동 10통의 사랑방인 셈이다.
김 씨의 방문 세탁은 방문형 건강관리 서비스가 되기도 한다. 거동이 어려운 인근 어르신에게 직접 찾아가 빨랫감을 가져오고 가져다 준다. 김 씨의 하루는 바쁘다. “빨래할 때가 됐는데 와 한동안 연락이 없노 해서 가 보면 할매가 골골대고 있어서 챙기고 그러지. 할 일이 많다 내가.”
이날도 오전부터 빨래하러 온 주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주민 이 모(79) 씨는 5000원을 내고 이불 빨래를 김 씨에게 맡겼다. 세탁기 이용은 3000원, 건조기 이용은 2000원이다. 세탁을 마치면 건조기를 돌려 이불을 접어 놓는 것까지가 김 씨의 일이다. 빨래방에 오전 마실을 온 주민 차곡준(73) 씨는 옆에서 훈수를 뒀다. “이불은 건조기를 두 번은 돌려야 뽀송뽀송해지지. 한 번 가지고는 축축해.” 차 씨는 전임 빨래방 지킴이다.
이 마을 100m 인근에는 슈퍼도 미용실도 목욕탕도 없다. 유일했던 점방은 주인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았다. 수십 년 마을 토박이였던 주민들도 마을이 낡아 가면서 하나둘 떠났다.
‘누구나 때가 있다’는 이곳 주민들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얼굴 보는 횟수가 줄었던 주민들은 빨래하려고 다시 모였다. 빨래를 기다리면서 밥도 해 먹고,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이웃 안부도 묻는다. 달마다 한 번 다 같이 모여 나들이를 가거나 밥을 해 먹는 주민 활동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한 달 평균 빨래방 이용자만 40여 명. 차 씨는 “다들 가족처럼 빨래방에 밤낮없이 드나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은 가족이 됐다. 김경일 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은 “빨래가 생활에 필수적인 활동이다 보니 평소 주민 공간을 찾지 않던 어르신들도 자주 찾는다. 빨래방이 주민 활동의 매개체가 돼 어르신들의 고립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바로 옆 마을 개금3동 8통에도 동네 사랑방이 있다. 2018년부터 부산시 대안가족사업으로 시작된 ‘정겨움’은 마을공동휴게실로 꾸며졌다. 어르신들의 모임과 활동 공간, 강의장 등으로 이용된다. 주요 활동은 어르신 반찬 배달 사업이다. 어르신이 직접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서비스를 진행해 왔다. 어르신의 자활을 독려하고 ‘사회적 가족’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이날 오후 2시 정겨움 센터에는 정기모임에 참석하려는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들어왔다. 센터가 들어서기 전 개금3동 어르신들은 대중교통으로 20분 안팎이 걸리는 복지관이나 경로당을 찾아야 했다. 이마저도 코로나19로 줄줄이 폐쇄되면서 집 밖 외출이 막혔다.
문턱이 낮은 정겨움은 이들의 유일한 사회활동이 됐다. 주민 서정옥(73) 씨는 “복지관이나 경로당은 멀고 인원도 많아서 친해지기 어려운데, 동네 정겨움센터 사람들은 정말 같은 동네에서 서로를 챙겨 주는 가족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교육, 놀이 프로그램, 공동 밥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열린다. 김귀성(83) 씨는 “집에 있으면 주로 TV를 보거나 무료하게 누워 있는데, 센터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일주일이 바빠지고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고 웃었다.
정해석 정겨움센터 팀장은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홀몸으로 남겨진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며 “공공 사랑방은 어르신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곳이자 삶의 터전이 되는 자활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손희문 기자 iamsam@busan.com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