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막은 HUG, 뒷짐 진 국토부… 박동영 예견된 낙마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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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내정자
주총 통과 반나절 만에 돌연 사퇴
부적절한 처신 비난이 부담된 듯
HUG·국토부 안일한 인식 도마에
예탁결제원 사장에 이순호 내정
낙하산 인사 비판에도 주총 강행

부산에 본사를 둔 금융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예탁결제원에서 차기 사장 선임 문제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에 본사를 둔 금융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예탁결제원에서 차기 사장 선임 문제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전경. 부산일보DB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최종 후보자로 오른 박동영 전 대우증권 부사장이 자진 사퇴했다. 정치권과 지역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HUG가 주총을 통해 박 전 부사장의 사장 내정을 강행했으나 당사자가 반나절 만에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는 “예정된 시나리오였다”며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린 HUG와 사태를 방치한 국토교통부가 자초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날(27일) 오전 HUG 주주총회를 통과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임명 제청과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 절차만을 남겼던 박 전 부사장이 같은 날 오후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국토부는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사퇴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가와 정치권에서는 박 전 부사장과 HUG 고위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만남’ 논란(부산일보 2월 14일 자 2면 보도 등)을 둘러싼 정치권과 지역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박 전 부사장이 주총을 앞두고 HUG 고위 관계자들을 지난달 8~9일 이틀에 걸쳐 만나 인사 등 업무와 관련된 논의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나 사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야당과 부산시민단체협의회 등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박 전 부사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국토부는 “HUG 관계 법령에 따라 재공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새 사장 공모 등의 절차를 고려하면 국민 불편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세 보증 사고가 급증하는 가운데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할 HUG 사장 자리의 공백 상태는 지난해 10월 권형택 전 사장이 자진 사퇴한 후 5개월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HUG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정희 부산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지역 시민사회는 물론 중앙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에 엄중한 문제의식을 드러냈지만 HUG는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런 지적에도 HUG는 투서로 시작된 경쟁자 간 일종의 ‘마타도어’ 정도로 받아들이는 등 여전히 안일한 인식을 보인다. 재공모 절차에서 비슷한 사태가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HUG 관리·감독 기관임에도 사실상 방관해 온 국토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원 장관은 지난달 24일 박 전 부사장 논란을 질타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국토위원들에게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한 것은 없다”고 말하는 등 다소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와 관련,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민주당 간사인 최인호(부산 사하갑)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과 상식, 법을 무시한 사태가 또 다시 벌어졌다는 것은 자기 부정이자 국정농단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예탁결제원 차기 사장에는 이순호 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2실장이 내정됐다. 예탁결제원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 실장을 차기 사장 후보자로 단독 추천했다. 금융위 승인까지 이뤄지면 이 실장은 지난해 초 예탁원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 이후 첫 사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앞서 이 실장을 둘러싸고 윤 대통령 대선 캠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라는 이력에 대한 정부의 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다 NH농협금융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NH농협금융 자회사인 NH투자증권이 옵티머스펀드 관련 손해액을 투자자들에게 배상한 뒤 예탁원 등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와중에 NH농협금융 사외이사가 예탁원 사장으로 선임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 여론이 분출하기도 했다.

내부에서는 ‘낙하산 인사’로 규정, 이 실장 취임에 강력하게 반대해 온 만큼 출근 저지 등의 투쟁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예탁원 노조는 이날 “보이지 않는 커다란 권력 앞에서 금융위원회와 임추위가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에 큰 실망과 함께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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