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최소 6개월 전 인재 확보를… 공천 탈락자 포용 시스템 필요”[총선 앞으로 1년]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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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가 말하는 공천 전략

대통령 측근 낙하산 공천하면
당선돼도 국민 공감 못 얻어
진영정치 대신 국민 공감 얻기를
현안 중심으로 지역구 챙겨야
부산, 정치 인재 산실 돼야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을 맡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진석 기자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을 맡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진석 기자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4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기억을 뼈아프게 떠올린다. 공천을 진두지휘한 그는 민주당에 과반 의석을 넘겨준 ‘총선 참패’로 ‘여소야대’ 국면을 부른 책임자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당시 영남권 현역 의원 45명 중 절반이 넘는 24명을 공천에서 배제시키는 등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하고 청년 공천을 대폭 확대하는 등 ‘정치 교과서’적인 개혁 공천을 이뤘지만, 결과는 보수정당사에 흑역사로 남을 만한 참패였다.

김 전 의장은 그동안 쏟아지는 비난에 대응하는 대신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당시 실패의 원인을 곱씹었다. 22대 총선을 1년 앞둔 현재, 여당이 된 국민의힘에서는 벌써부터 ‘검사 공천’ ‘영남 대규모 물갈이’ 등 섣부른 이야기가 흘러나와 긴장감이 가득하다. 실패의 기억이긴 하나 보수정당 공천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전 의장을 만나 바람직한 정당 공천 방향, 현 상황 진단 등을 들어봤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부산일보〉와 만난 김 전 의장은 지난 총선 참패의 책임을 받아들이면서 공천 과정의 문제점과 내년 총선에 대비해 당이 준비하고 수립해야 할 전략을 열거했다. 김 전 의장은 “지난 총선 때 공천을 받은 인물들이 배제됐던 현역 의원보다 경쟁력이 없었다는 비판을 인정하고 또 책임을 느낀다”며 “그 책임의 중심에 내가 서 있었지만, 패배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공천 지휘봉을 잡았던 그가 바라본 참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가장 컸던 건 부족한 당내 인재와 선거 직전 급하게 꾸려진 공관위였다. 김 전 의장은 “당시 공관위는 총선 80일가량 전에 구성됐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대면 심사도 어려운데 심사와 인재 찾기를 병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었다“며 ”공천 심사로 인물을 잘라 내는 만큼 인재를 발굴하는 시간도 주어졌어야 하는데,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규대로 최소 6개월 전에는 공관위가 구성돼 공천 심사 전에 인재 풀을 확보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주어지는 게 관건”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인재를 영입해 ‘불펜’을 채우고 심도 있는 공천 심사를 거쳐야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공천 탈락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당 시스템도 지적했다. 그는 “수도권 분위기 일신을 위해 영남권 의원이 희생됐다고 PK(부산·울산·경남)와 TK(대구·경북)의 반발이 당연히 제일 심했다”며 “당이 인재를 키우고 커 가기 위해선 공천 탈락자 반발을 감싸 안고 포용하는 정당 차원의 시스템이 있어야 했는데, 그 또한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락한 현역의 측근이 대규모로 공천된 데 대해서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탈락한 현역과 공천자를 조율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상황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김 전 의장은 내년 PK 총선 카드로 거론되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과 ‘검핵관’(검찰 출신 핵심 관계자) 인사 차출설과 관련, “대통령 측근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면 당선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선거에서 쉽게 이기면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국민을 무서워하는 정치를 해야 그 정치인은 힘을 받는다”며 “해당 지역에서 최소한 6개월 전부터 주민을 만나고 지역 사정을 익혀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어 “무엇이든 빠르면 그만큼 빠르게 썩는 법이다.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산 영도구에서 5선을 한 김 전 의장은 현역 의원 지역구 활동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결혼식, 장례식, 산악회 등을 찾아다니고, 국회 회의장에서도 지역 주민 경조사를 챙기는 그런 활동이 아니라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넓게 보고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중앙과 지역 활동의 조화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숙명이자 책임”이라며 지역구를 등한시하고 ‘공중전’에만 매달리는 의정 활동에도 선을 그었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을 3명 배출한 부산을 한국 정치의 산실이라고 짚으며 지속적으로 정치 인재를 배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부산에서 유독 정치사의 큰 인물이 배출되는 것은 해양을 지향하고 개방성이 높은 지역적 특성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며 “부산 시민도 그런 자부심을 갖고, 인물을 키우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전반적인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진영 정치’의 폐해를 언급했다. ‘팬덤 정치’ ‘정쟁 중심 정치’로는 정치 인재가 나오기 어려워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이다. 김 전 의장은 “국회의원이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과반을 목표로 잡는 여당도 지금 식으로 가면 쉽지 않다”며 “내 편만 보는 이런 정치로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협치로 국민 공감대를 사는 국회로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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