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조작’에 초점 맞추지만, 대미 저자세가 논란 키워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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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감청 의혹 파문…‘상습적 동맹 도청’ 쟁점은

‘위조’ 강조해도 상당수 사실과 부합
공개된 문건 ‘빙산의 일각’ 지적도
민주당 “주권 침해 강력 항의해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최종 조율하기 위해 11일 오전 출국하고 있다.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최종 조율하기 위해 11일 오전 출국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지속적으로 도감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한·미 당국은 ‘조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공개 문건의 상당 부분이 현실과 부합해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즉각적으로 항의하지 않아 저자세 논란을 자초한 배경과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의 연관성, 추가 문건 여부 등도 관심사다.


■‘위조’라지만 사실 부합 사례 많아

대통령실은 11일 공지를 통해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미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일부가 조작됐다는 것을 안다”면서 “일부 사례의 경우 온라인상에 올라온 정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 소스에서 변경됐다”며 한국 정부와 말을 맞췄다.

하지만 대통령실 관련 문건 내용 가운데 다수는 실제 사실과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3월 초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이문희 외교비서관에게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폴란드로 수출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문건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문건이 위조라고 확인한 근거를 묻는 질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 언제 어떻게 얼마나 아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기밀 사항일 수 있어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고 즉답을 회피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공개된 기밀 자료에는 미국의 정보 수집 방법, 우크라이나·한국·이스라엘 등 가까운 동맹국을 염탐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당혹스러운 증거 등이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왜 저자세 논란 불렀나

민주당은 이번 의혹을 명백히 주권을 침해한 행위로 보며 미국에 강력 항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대통령실은 미국 정보기관이 안보실 등을 직접 도감청했는지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미국이 한·미 동맹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만큼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헌신은 철통같다”며 “한국은 역내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다. 우리는 한국과 여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국내 비판 여론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확인된 최소한의 도감청 정황만으로도 정부가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향후 한·미 관계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11일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사회시민연대 등이 미국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사회시민연대 등이 미국을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 이전’으로 보안 문제 생겼나

야당은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대통령실 졸속 이전’을 거론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실 이전이 졸속으로 추진돼 당시 지적했던 문제가 현실화한 것”이라며 “대통령실 보안이 너무 허술해 국가 안보에 큰 허점이 노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에 논란이 있는 나라들을 보면 대통령실을 이전했나, 총리실을 이전했나”며 “용산 이전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은 정치적 공세”라고 일축했다. 그는 “청와대 시절엔 본관 도감청 방지 시설을 우선적으로 하고, 비서동 보안 시설은 본관만 못 한 게 사실이었을 것”이라며 “용산에서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한 건물에 근무해서 청사 전체가 대통령 집무실과 같은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개 문건은 ‘빙산의 일각’(?)

현재 언론 등에 공개된 도감청 관련 문건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현지 언론은 미국의 채팅 서비스 ‘디스코드’ 이용자가 1월 처음 문건 파일을 공개했고, 2월 말~3월 초 문건 파일이 확산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 정보 당국이 이런 사실을 최근에야 인지했다는 것이다. 당시 문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접한 정보의 양에 비해 현재 공개된 문건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당국이 문건 유출 사실을 인지하기 전 상당한 양의 정보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민감한 정보를 비롯한 한국 관련 문건이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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