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쇼핑, 연인·친구끼리 투약… 향정 오남용 '초비상’ [일상 파고드는 마약]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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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 불특정 다수에 유통
광고·사용 후기 등 손쉽게 접해
‘좀비마약’ 공부 잘하는 약 둔갑
원룸·노래방·자동차 투약 성행
마약사범 연령 하향 10대 급증
서울 공급망 부산 클럽서 유통
부울경, 해상 마약 우려도 높아

“○○일보도 인정한 퀄리티, 기사 나와서 채널 터졌나.”

<부산일보> 취재진이 텔레그램을 통해 접근하자 지난 14일 한 SNS 마약 판매자는 기사 인터넷 접속 주소와 함께 이 같은 문구를 보냈다. 그의 마약이 해당 기사의 주요 적발 사례로 언급될 정도로 유명하다고 자랑한 것이다. 적발된 것을 오히려 ‘훈장’으로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영업’했다.

“샘플-20만 원, 0.5g-40만 원, 1g-70만 원.” 다른 판매자는 양에 따라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구매 가능 지역은 부산, 경남 창원시, 울산, 대구 등. “비트코인, 무통장 입금으로 당장 오늘이라도 받을 수 있다”며 “직거래를 언급하면 바로 (대화를)차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마약 인증 사진부터 적나라한 투약 후기도 첨부했다. 장소에 관계없이 마약 범죄는 이미 SNS 등을 통해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텔레그램의 한 마약 판매자가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보낸 마약 관련 기사 인터넷 접속 주소(왼쪽)와 마약 인증 사진. 텔레그램의 한 마약 판매자가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보낸 마약 관련 기사 인터넷 접속 주소(왼쪽)와 마약 인증 사진.

 

■10대 마약…부산도 초비상

지인 사이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던 마약은 최근 SNS 등 온라인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유통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1년 마약류 광고가 가장 많이 적발된 곳은 채팅앱(26명)이었다. 이어 포털사이트(23명), 텔레그램·트위터(각 15명), 중고마켓(9명), 다크웹(6명) 등의 순이었다.

자연스럽게 주요 마약사범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지난해 검찰이 집계한 10대 마약사범은 481명으로 전년보다 31명 늘었다. 같은 기간 15세 미만은 6명에서 41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20대의 경우 지속적으로 늘어 연령별 마약사범 중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다.

부산에서도 20대 이하 마약사범이 다른 세대의 배에 달한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에서 아직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약 유통 사례가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위험성은 크다. 재수생과 자퇴생의 마약 투약 사건은 간간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마약이 일상을 파고들면서 투약에 대한 경각심도 크게 낮아졌다. 연인끼리 자동차 안에서, 친구끼리 대학가 원룸이나 노래방 화장실에서 공공연하게 투약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울산에서는 최근 직장 기숙사 주차장에서 캔커피에 필로폰(히로뽕)을 타 마시거나 시내 골목에서 대마초를 피운 마약사범이 잡혔다.

부산경찰청 이승주 마약수사계장은 “온라인뿐 아니라 서면 등지의 주요 클럽에서도 서울 쪽 MD들(영업직원)이 내려와 마약을 유통한다”면서 “10~20대는 특히 위험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친구끼리 호기심으로 ‘나도 한번 해 보자’며 마약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향정 오·남용 심각…예방교육 시급

최근에는 10~20대 마약사범과 함께 향정신성 의약품(향정) 오·남용 사례도 급증했다. 현행법은 마약류를 마약과 향정신성 의약품, 대마 3종류로 나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마약사범 대다수는 향정(지난해 기준 65.4%)에 연루됐다. 향정은 각성, 진통제 등의 효과를 목적으로 개발된 것인데 필로폰, 엑스터시(MDMA) 등이 포함된다. 최근 전국적으로 충격을 줬던 이른바 서울 강남구 ‘마약 음료’ 사건에 쓰인 마약도 필로폰이다.

최근에는 필로폰과 함께 좀비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프로포폴, 옥시코돈 등의 불법 투약도 잦다. 특히 펜타닐 등은 큰 병을 앓거나 통증을 호소하면 처방받을 수 있어 오·남용 우려가 크다. 지난해 부산·경남의 병원, 약국을 돌며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10대 41명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최창욱 본부장은 “학생들은 향정의 위험성을 모른 채 ‘공부 잘하는 약’ 등으로 여기며 처방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향정은 중독성이 강하고 잘못 투약할 경우 부작용도 많아 예방 교육이 시급하다. 펜타닐의 경우 치사량이 2mg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오·남용으로 연간 7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부산의 경우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소속 강사 50명가량이 학교 안팎을 돌며 교육을 실시하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김상진 상임이사는 “향정신성 의약품인 수면제나 다이어트제를 처방받아 텔레그램, 다크웹에 되파는 것도 심각한 마약 범죄”라면서 “한 번의 마약 호기심이 중독이 되고,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예방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울경 뇌관 ‘해상 마약’

바다를 낀 부산·울산·경남에서는 해상 마약이 또다른 뇌관이다. 2019년에는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앞바다에서 필로폰 성분이 든 주사기들이 발견됐다. 지난해에는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서 낚시 바늘에 60개가량의 마약 주사기가 든 봉지가 걸려 올라왔다. 경남 통영시의 한 가두리양식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약 파티’를 벌이다 적발되기도 했다. 남해해경은 지난해에만 마약사범 294명을 붙잡고 50명을 구속했다. 2017년(38명)보다 적발 인원이 약 8배나 늘었다.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클럽들이 요트에서 ‘환각 파티’를 벌인다는 첩보도 종종 이어진다. 해운대 바닷가의 한 상인은 “예전에 자갈밭 청소를 하러 나가면 주사기와 성인용품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겨울철 러시아 쪽 바다가 얼어 부산으로 피항 오는 외국 요트의 ‘마약 투약설’도 나돈다.

해상에서 마약을 투약하다 적발되기도 하지만, 육지에서 투약한 뒤 주사기를 해상에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해상에서 DNA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남해해경 마약수사대는 “요트경기장 등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곳을 집중 추적한다”면서 “최근 해운대 요트경기장에서는 한 요트 선주가 화장실에서 마약을 투약한 뒤 바다에 주사기를 버렸다가 붙잡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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