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플 권리도 없나요” 중증장애인, 구강 진료 ‘별 따기’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휠체어 이동공간·보조 인력 갖춘
부산 상시 치과진료기관 1곳뿐
진통제로 두 달 견뎌 공공의료 이용
복지기관·의사회 등 시청 앞 회견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 등 촉구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부산 남구 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보행환경을 체험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보행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부산 남구 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보행환경을 체험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보행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뇌병변장애인인 김기환(34) 씨는 지난달부터 밤낮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내야 했다. 잇몸질환 때문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진통제를 먹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에 선뜻 나서는 민간 병원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데다 기댈 수 있는 공공의료시설의 경우 예약이 꽉 차 최소 두 달은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어머니 문해숙(62) 씨는 “장애인에게는 아플 권리도 없는 것 같다”며 “비장애인에게는 병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겠지만, 중증장애인은 매번 병원에 사정해야 하는데 문전박대가 일상”이라고 말했다.

6만여 명에 달하는 부산 중증장애인이 상시로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사실상 한 곳에 불과해 장애인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 장애인도 아프면 제때 구강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의료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부산뇌병변복지관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부산에서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부산대병원 부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 부산의료원, 나눔과열림장애인치과의원(민간시설) 3곳이다.

지난해 12월 부산시에 등록된 장애인은 모두 17만 6245명이다. 이 중 마취가 필요하거나 보조인력이 필요한 치과 영역 중증장애인(지체·지적·뇌병변·자폐·정신·뇌전증)은 11만 8624명이다. 이들에게 상시 치과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부산대병원 부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 한 곳뿐이다.

중증장애인은 신체 이동 제약 때문에 구강 치료를 받기 어려워 전담 병원이 필요하다. 휠체어나 보조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치과 진료실에는 전용 이동 공간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거나 소리에 예민하기 때문에 진료 과정에서 저항하거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치과 치료를 받으려면 사회복지사 등 보조인력 5~6명이 팔다리와 머리를 붙잡아야 한다. 수면마취나 전신마취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전문의와 시설 장비는 필수적이다.

그나마 중증장애인이 구강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인력 부족 등 인프라가 열악하다. 부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서는 지난해만 지적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 6100여 명, 하루 30명이 진료를 받았다. 치과 의사 3명 등 의료진 9명이 상시 인력으로 근무하고 마취과 전문의가 상황에 맞춰 지원해도 환자를 전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또 다른 공공의료기관인 부산의료원에도 담당 의사가 한 명뿐이라 여건상 주 1회만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증장애인의 구강 건강에는 항상 적신호가 켜져 있는 셈이다. 중증장애인은 혼자 치아 관리를 하기 힘들어 보호자의 돌봄을 받아도 충치와 잇몸병 등 구강질환이 많다. 보건복지부의 ‘2020∼21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구강검진 수검률은 17.7%로 비장애인보다 8.1%포인트(P) 낮았다. 중증장애인(14.3%)은 비장애인에 비해 11.5%P 낮은 수준이었다. 장애인의 다빈도 질환 1순위는 잇몸병으로 불리는 치주질환이었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부산시의 대책 마련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서울의 경우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와 의료진 50여 명이 상근하는 독립된 ‘시립장애인치과병원’이 있다. ‘제2시립장애인치과병원’도 문을 열 예정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뇌병변복지관 등이 포함된 ‘부산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 정책 제안 연대’는 19일 오후 2시 부산시청 앞 광장에 모여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를 위한 전담인력 확충 △서부산의료원 개원과 침례병원 공공 전환 시 중증장애인을 위한 치과 진료 시설 확충 등을 시에 요구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부산경남지부 김권수 공동대표는 “부산의 장애인 치과 현실은 지난 10년 동안 개선된 게 거의 없다”며 “서울 현황을 참고해 부산에도 장애인 구강진료기관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한 시는 이를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