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범죄자 신상 공개, 어디까지?
모호한 기준 등 각종 제도적 허점 드러나
머그샷 공개 비롯한 보완 목소리 분출
무죄 추정 원칙도 중요…세심한 개선 필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 2심 선고를 계기로 범죄자 신상 공개 문제가 핫이슈로 떠오른 요즘이다. 국민 눈높이와 법 감정에 맞게 강력 범죄의 신상 공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뜨겁다. 대통령이 나서서 확대 방안을 지시했고 피해자 측도 헌법소원을 예고한 마당이다. 하지만 무죄 추정이라는 기본 원칙과 인권 보호 측면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신상 공개, 어디까지 해야 할까.
‘머그샷’은 경찰이 범인 식별을 위해 촬영한 얼굴 사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과 함께 머그샷 공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일보DB
■ 현행법 맹점들 수두룩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귀가하던 여성을 따라가 무차별 폭행을 가해 의식을 잃게 한 뒤 성폭행까지 시도한 중범죄 사안이다. 12일 부산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신상 공개의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는 데 있다. 신상 공개는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 단계에서는 가능하지만 재판에 넘겨진 뒤 ‘피고인’이 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 피의자 단계에서 가능한 신상 공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해당될 때만 적용된다. 그것도 범행 수단이 잔인하거나 피해가 중대한 경우, 재범의 우려가 높을 경우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례에 해당하는지 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여기까지는 아직 피의자에 한정된 절차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의 신상 공개는 아예 법적 근거가 없다. 법원이 선고와 동시에 신상 공개 명령을 내릴 수는 있지만, 성범죄자에만 해당된다. 이번 ‘돌려차기 사건’의 피고인은 그나마 성범죄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신상 공개가 가능해진 경우다. 하지만 피고인이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면 신상 공개는 유죄 확정 전까지 다시 연기되고 형기를 마친 뒤에야 거주지 인근 주민들에게 제한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게 현행법이다.
앞서 말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도 문제가 많다. 각 시도 경찰청마다 위원회가 따로 구성돼 판단 기준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힘든 구조다. 최근 10년간 신상 공개 심의는 전국 60여 건에 불과했다. 그 역할도 노하우도 축적됐다고 보기 어렵다.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 “개선과 보완” 높아지는 목소리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여성 대상 강력 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관련 법안 제정에 들어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살인이나 여성 상대 범죄 중 죄질이 나쁜 경우는 신상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나머지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상 정보 공개는 범죄 잔혹성보다는 재범 방지라는 본래 취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측이 “가해자가 출소하면 50세가 된다”며 “충분히 보복할 수 있는 나이라 여전히 두려운 심정”이라고 피력한 걸 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법원 재판 단계에 들어가면 성범죄자 말고는 살인 등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신상 공개 대상이 아니다.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가 살인미수로만 재판받았다면 신상 공개는 영원히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형이 확정되기 전 피고인 신분이라도 신상 공개가 가능하도록 하고, 신상 공개 대상 범죄를 성폭행에서 살인 등 다른 흉악 범죄로 넓히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6월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부산일보DB
■ 무죄 추정의 원칙과 인권 보호
일각에서는 법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신상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거하는데, 모든 국민은 이 원칙에 따라 인권을 보호받는 게 사실이다. 결국 피의자·피고인을 모두 범인 취급하면 심각한 인권 침해를 낳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실제로 진범이 뒤늦게 잡힌 경우뿐만 아니라 범인으로 몰려 기소됐지만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과거 사례들은 숱하다. 그 피해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때도 많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상 공개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의 실명 공개에 제한을 두거나 범인으로 체포된 사람의 초상권을 인정해 옷이나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다만, 무죄 추정의 원칙은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중대 범죄의 경우에는 제한된다. 신상 공개는 엄격한 요건 아래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그 취지는 오로지 추가 범행 방지와 알 권리 충족에 있다. 피고인 단계에서 추가 범행의 우려가 줄고 재판 후 범죄자 신상 공개를 통해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게 신중론자들의 입장이다.
문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요’라는 모호한 판단 기준이다. 피의자가 공인(公人)이거나 사안 자체가 연쇄살인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케이스가 있다. 이를 어떤 기준으로 일반 사건과 구분할 것인가. 결국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은 없는가. 대단히 예민한 문제라서 섬세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 공적 기관 대신하는 사적 제재
이렇듯 현행법상 신상 공개 기준이 투명하지 못하다 보니 법적 절차 없이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사적 제재’도 속출하는 형편이다. 얼마 전 한 유튜브에서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사진과 이름, 직업 등을 공개한 적이 있다. 이어서 서울의 한 구의원도 SNS에 신상 정보를 올려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일부 시민들은 사법기관도 하지 못한 걸 개인이 해냈다며 응원을 보냈다. 2차 가해, 보복 범죄, 스토킹이 계속되면서 피해자 보호가 미흡한 상황인데, 불법이라도 신상 공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적 신상 공개는 우리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게 중론이다. 성범죄자는 늘어나는데 처벌 수위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는 현실은 실제 수치로 확인된다. 낮은 형량을 내린 사법부와 이에 공감 못 하는 국민 사이의 괴리가 사적 신상 공개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 언론은 신상 공개 못 하나
하지만 사적 제재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경찰·검찰·법원 등 공적 기관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의 제재는 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끝없는 갈등과 보복의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특정 피의자·피고인 신상을 공개하는 사적 제재는 위법의 소지도 안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적인 신상 공개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언론이 먼저 피의자·피고인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데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령 괌에서 한국인 부부가 아이들을 차량에 방치했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미국·한국 언론의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났는데, 미국 언론은 이 부부의 ‘머그샷’(mug shot·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을 모자이크 없이 처리한 반면 한국 언론은 부부의 얼굴을 가린 채 공개했다.
한국 언론이 신상 공개에 소극적인 건 1998년 대법원 판결의 영향이 크다. ‘범죄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공공성이 있지만 피의자 신상을 보도하는 것은 공공성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범죄자를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공인’(public figure)으로 본다. 가해자 인권보다 공익과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 뚜렷하다.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이 6월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뒤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관련 법안 ‘탄력’… 세심하게 지켜봐야
지금 분위기라면 우리 역시 신상 공개 확대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가해자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인권이라는 데에 긍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법안은 현재 여러 가지 내용들이 논의되거나 발의된 상태다. 앞서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정유정의 사진이 실물과 너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에 따라 신상 공개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신상 공개 결정 시점부터 30일 이내의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또 신상 공개 때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영상물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더 나아가 기존에 공개된 사진만으로는 피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 ‘머그샷’ 공개도 거론되고 있다.
국민들은 법 개정 논의와 과정들을 세심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알 권리’와 ‘인권’의 문제는 당장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는 신상 공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