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만 본다’ 총선 셈법에 사라진 정치
‘입법독주’ 대 ‘거부권’ 양상 반복
장관이 국책사업 백지화하기도
야, ‘독단 정부’ 프레임으로 맹공
상대 악마화로 진영 결속 노림수
민생 실종 속 무당층 증가 기현상
여야의 최근 ‘강 대 강’ 대치 전선이 무한 확장되고 있다. 간간이 등장하던 ‘협치’는 이제 단어 자체가 ‘증발’됐고, 여야 대화마저 끊겼다.
여권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잇단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에 이어 장관까지 국책사업 ‘백지화’를 일방 선언하는 등 유례없는 대야 강경책을 펴고 있다. 반대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야당은 ‘입법 독주’로 대통령 거부권과 여당의 극단 대응을 유도, 여권의 ‘독단’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야 모두 이념을 앞세워 진영을 결속, 내년 총선 주도권을 잡겠다는 셈법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달 중 야당 주도 강행 법안 처리에 대응해 윤 대통령의 세 번째 거부권 행사가 검토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도 대기 중이다. 이들 모두 야당 주도 강행 법안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의 평균 거부권 행사 횟수는 2.6차례다. 조만간 야당 주도 법안 처리가 예고된 만큼 윤 대통령이 추가로 거부권을 행사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국민대의기구인 국회의 결정을 거부하는 것은 위험도가 크다. 이명박(1건)·박근혜(2건)·문재인(0건) 등 과거 정부에서 거부권 행사가 극도로 신중하게 이뤄진 배경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최근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국민도 찬성할 것이라는 시각으로 돌아섰다.
여야 대치에는 장관들도 가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민주당이 정치 쟁점화한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에 대해 직권으로 백지화를 선언했고,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야당이 국회 정무위에서 단독 처리한 민주유공자법안에 대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 전반의 기류가 더욱 강경해지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일본 정부 용역 기관’으로 몰아세우며 대결 수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여야의 이런 행태는 명분과 실리에서 불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야당은 입법 공세를 통해 이해관계가 걸린 각 직능단체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면 대여공세의 고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단 정부’ 프레임을 강화해 여권의 지지율 상승을 제어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반면 여권은 야당 ‘독주’를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공개된 연합뉴스·메트릭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여론조사에서는 오염수 피해 지역으로 꼽히는 부산·울산·경남(PK)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한 달 만에 11.8%포인트까지 추락한 바 있다. 여권은 여소야대 정국 속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강단과 추진력이 부각돼 총선 정국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내 편’만 보는 진지전에 몰두하면서 지지율은 모두 30%대 박스권에 갇히고, 무당층이 ‘제1당’ 위치를 위협하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폴리컴 박동원 대표는 “물가 상승, 수산업 피해, 선거구제 개편 등 민생 관련 사안에 대해 여야가 틈을 넓혀두고 타협점을 찾을 때”라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