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후쿠시마 오염수 피해, 日에 배상 요구 안 하나
오염수 방류 전 이미 피해 현실화
일본 자국 어업 보호에 적극 나서
원인 제공한 쪽에 구제 책임 있어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저지 대책위원회-국제원자력기구 면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하다? 아니다? 도대체 뭔가
“오염수를 안전하게 처리해 방류하면 후쿠시마산 수산물도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는 보고서를 일본 정부에 전달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나흘 뒤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한 말이다.
그런데 박구연 국무1차장이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은 후쿠시마 인근 해역에 있는 어류 등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주장과는 다르다는 설명을 10일 내놓았다. 그러면서 “일본 측이 오염수를 방류하려는 장소가 후쿠시마 바다일 뿐, IAEA 평가 대상은 방류 계획상 오염수의 안전성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건지 아닌지, 일반인들로서는 금방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박 차장의 설명은 대중의 불안심리를 눅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여부나 오염수의 안전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미 수산물 소비가 급격히 줄며 어업인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시중 횟집에선 찬바람이 불고, 양식 어민들은 재고 처리를 못해 발만 구르고 있다. 오염수는 아직 방류도 안 됐는데 어업인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왼쪽 세 번째)이 지난 11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오염수 방류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국 피해자 지원에 적극적인 일본
일본 어업인들의 사정은 우리보다 더 하면 더 하지 못하진 않을 터.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자국민을 달래려는 시도는 오래됐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로 인한 일본 국민 개별 피해에 대해 직접 배상에 나섰다. 그 범위가 어업에서 농업, 수산도매업, 관광업에 이르기까지 넓다.
일본 정부는 피해 대책을 위해 막대한 기금을 확보했다. 그 규모가 우리 돈으로 작게는 7500억 원 크게는 1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기금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어장을 개척하고 어업 인력을 양성하는 등 일본 수산업의 황폐화를 막는 데 사용된다. 그와는 별도로, 우리로선 특별히 주목되는 부분인데, 이른바 ‘풍평 피해’에도 기금을 활용해 지원한다. 피해를 입은 어민들로부터 생선을 대신 구입하거나 보관 경비를 지원하거나 판로 따위를 주선하는 식이다.
풍평(風評)은 말 그대로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이다. 풍평 피해는 그런 막연한 소문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다. 오염수 안전에 대한 진실을 헛소문이라는 뉘앙스로 호도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여하튼 불안심리에 따른 간접적인 피해도 구제한다는 의미가 담긴 조치임은 분명하다. 풍평 피해는 지금 우리 어업인들이 처한 현실에 적용하기에 딱 맞는 말이라고 하겠다.
■원인 제공 일본에 배상 요구해야
우리 정부의 어업인 피해 대응은 미온적이다. 특별한 대책은 없고, 단지 수산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기존 사업의 예산을 약간 늘리는 수준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어업인들로서는 섭섭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에 따른 피해를 우리 정부가 배상하거나 지원하는 게 옳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원인은 일본이 제공하는데 우리가 그 부담을 안는 건 온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로선 일본에 배상을 요구해야 하는데, 지금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철저한 수산물 안전관리’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우리 어업인들에게 이미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을 향해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법학자인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 언론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는 국제법(국제해양법, 런던협정, 핵안전협정)을 명백히 위반하여 일본의 국제책임이 성립된다. 일본은 손해배상 등 국제책임 해제조치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 정부와 여당은 일본에 지금까지 항의나 질의 하나 하지 않고 있다”라고 탄식한 게 그 예다.
한국연안어업인중앙연합회가 지난 10일 부산역 광장에서 어업인에 대한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일보DB
■결국은 우리 정부 의지가 중요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는 시도가 있기는 했다. 2021년 5월 한림수협 등 제주지역 어업인들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제주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실패했다. 제주지법은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심리 없이 이를 각하했다. 각하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외국의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당시 소송은 배상 자체보다는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한 선언적 의미로 진행돼 사전 준비가 미흡했던 측면이 있다. 오염수 방류와 우리 어업인 피해의 인과관계 증명이나 객관적인 피해금액 산정 등 향후 엄밀한 법적 보완을 거치면 실질적인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정 국가의 주권 행위라도 중대한 불법 행위에는 피해 당사국이 재판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소송 준비를 개인이나 민간에 맡겨 두지 말고 우리 정부가 주도해 진행하면 더 효과적일 테다. 이와는 별도로 소송이 아닌 정부 차원의 교섭과 조율을 통해 피해 구제를 모색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 정부의 의지다. 오염수가 방류되더라도 안전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방류될 오염수는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게 오염수 방류로 입게 될 실질 피해는 물론 풍평 피해에도 배상과 지원을 약속했다. 순전히 일본의 잘못으로 애꿎게 피해를 입는 우리 어업인들이다. 우리 국민을 보호해야 할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