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가로, 일부 구간이라도 그대로 두면" "북항과 연결하는 재미난 공간으로" [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낡은 고가로, 새로운 미래]
1. 전문가 8인의 발칙한 상상
부산 동서고가로를 철거하는 대신 재생한다면 어떤 활용 방안이 있을까. 어느 구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도시 발전과 경제, 시민 생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부산일보>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동서고가로 활용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도시건축포럼B’와 함께 지난 8월 17일 부산디자인진흥원에서 ‘아이디어 콘서트’를 진행했다. 포럼 소속 건축가와 학계 전문가들은 고가로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을 스케치와 이미지로 펼쳐 보였다.
■트램과 PM이 달리는 공간
루가건축사사무소 공부성(도시건축포럼B 회장) 대표는 대심도 개통 후 기능을 다한 동서고가로의 사상~진양램프 구간을 “일단 그대로 좀 두자”고 제안했다. 그는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고가로 상부 공간은 한동안 녹지로 남겨두는 방안도 괜찮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높은 현재 고가로의 높이를 보완하려면 중간층을 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고가로에 중간층을 두어 카페나 팝업 스토어 공간으로 활용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공간을 만드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 경우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접근로를 만들 수 있다.
공 대표는 서부산권의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트램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는 “부산에도 1968년까지 시내에 전차가 다녔던 적이 있다”며 “서면~학장 구간이라도 트램을 다니게 한다면 도심에서 서부산권으로 편리하게 이동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 대표는 “현재 트램 도입을 추진 중인 남구 용호동은 도로가 넓지 않아 반대 의견이 나온다”며 “동서고가로는 이미 도로 기반 시설이 다 돼 있는 상태이니, 빈 도로를 시범구간으로 활용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가 상부의 경우 트램과 함께 전동 킥보드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PM)을 자유롭게 타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게 공 대표의 생각이다. 최근 들어 이동 수단의 변화가 가속화 하면서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나 도심항공교통(UAM) 승강장이 향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도로 기능을 다한 동서고가로 구간을 이 같은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비 도시농장
가가건축사사무소 안용대 대표는 도시농장을 구상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비하고, 고가로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인근 주민에게 혜택을 돌려줄 수 있는 아이디어다. 안 대표는 “부산시가 최근 주요 정책으로 추진 중인 ‘15분 도시’를 구현할 중심축으로 고가로를 재활용하자”며 “소음과 분진 피해를 감수해 온 주민들에게 싼 가격이나 무상으로 농장을 제공하면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옥상농장 형태로 오래된 건물의 루프톱 등을 재활용하기도 한다. 안 대표는 “프랑스는 파리 엑스포를 열었던 공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루프톱 농장을 만들었다. 덴마크에서는 자동차 경매장 위에 옥상농장을 만들고, 레스토랑을 운영해 새로운 식사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거창한 구조물을 따로 만들지 않고 상자를 놓고 농작물을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오래된 고가로에 하중 부담을 크게 주지 않을 수 있다. 안 대표는 또 “태양광 패널 파고라를 만들어 전기 생산도 하고 그늘도 제공하고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도시농장에서 생산된 신선한 채소를 활용한 공유 주방과 함께 채소 가게, 카페 등도 운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일부 구간에는 과일나무 등을 심어서 따먹을 수 있게 하고, 가운데 구간은 시민 산책로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 대표는 “잔디와 벤치가 있는 획일화된 공원의 모습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농장을 그려봤다”며 “기후위기와 먹거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체도시로 가는 길
동아대 안재철 건축학과 겸임교수는 자동차 중심의 ‘기능적 길’이었던 동서고가로를 ‘문화적 공간’으로 바꿔내자고 제안했다. 안 교수는 또 부산을 일본 도쿄와 같은 입체도시로 전환하는 계기로 동서고가로가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안 교수는 “최근 도쿄 시부야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입체도시로의 전환에서 온 것”이라며 “건물 위에 새로 조성된 미야시타공원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부야의 새 랜드마크로 떠오른 미야시타공원은 높이 17m에 있는 옥상공원이다. 산지가 많고 유휴 부지가 적어 평지에 공원을 조성하기 힘든 부산도 참고할 사례다.
미야시타공원은 도쿄 최초의 옥상공원으로 1960년대에 조성됐다. 원래는 1층 주차장 위에 있었다. 2020년 시부야구와 미쓰이부동산이 공원 부지에 3층 규모의 상가를 재개발하면서 옥상공원을 새로 조성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쇼핑, 관광 명소가 됐다.
안 교수는 “동서고가로가 입체도시로 가는 잠재력을 가진 장소로 재활용된다면, 주변 지역과의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가로가 각종 이벤트가 열리는 문화공간이나 공원으로 재탄생하면, 서면을 비롯한 인근 지역과 골목까지 함께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
안 교수는 “올여름 일본 삿포로의 타누키코지 쇼핑거리를 방문했는데, 공터에 인조 잔디만 깔아 놓아도 시민들이 즐겁게 노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며 “동서고가로에도 당장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기보다는 게릴라 형식의 이벤트와 축제를 통해 지역에 문화의 힘이 침투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더스트리 하이웨이로
라움건축사사무소 오신욱 소장은 동서고가로 일부 구간을 ‘부산 인더스트리 하이웨이’로 변신시켰다. 그는 상대적으로 주거지보다 공장이 많은 사상구 특성에 주목했다. 감전램프와 학장램프 사이 2km 구간에 지식산업센터와 주차 전용 건물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오 소장은 “사상의 부족한 산업 공간 확보를 위해 동서고가로를 수평으로 확장해 연결하면 상부 공단 조성이 가능하다”며 “기존 램프를 존치시켜서 접근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부산은 유휴 부지가 없어 공장들이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확장성이 없는 기존 공단을 대신해 수직적으로 상부에 도시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가로 상부 공간을 업무나 생산, 창업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 소장은 자신의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고가로에 3층 이하의 상부 건축물을 올리고 이를 테라스로 연결해 녹지와 휴게 공간을 조성했다. 공단 지역의 부족한 주차장 문제 해결을 위해 주차 전용 건물을 만드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2km 구간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하고, 지구단위계획을 세운다면 현재 사업성을 찾지 못하는 부지들이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공장은 사상에 있고 사무실은 센텀시티에 있는 일부 기업들의 불편을 고가 위 지식산업센터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가 위 사무실 개념으로 2km 구간 전체 1만 평의 면적에 연면적 6500평의 가용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바다·산과 만날 기회
영국인 건축가인 스튜디오팝팝 제이슨 찬 대표는 “14km에 걸친 동서고가로를 활용하면 부산의 자연 자산인 강과 바다, 산을 다시 연결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고밀도 개발로 도심에서 볼 수 없게 된 자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각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구간별 콘셉트를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동서고가로가 지나는 구간이 공업지역과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으로 다양하다”며 “지역별 특성과 주민 요구를 반영하고, 야간과 주간의 이용 방식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찬 대표는 동서고가로 인근 지역을 5개 구간으로 나눠 각각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먼저 사상구 감전동과 학장동의 경우 사상 스마트시티와 연계한 인큐베이팅 공간을 고가로 중간층에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주거지역인 사상구 주례동과 부산진구 개금동, 당감동의 경우 지역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수영장과 문화공간 등을 포함한 스케치를 그려왔다.
이어 부산진구 전포동과 부전동 일대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방과 상가, 남구 문현동과 동구 범일동 일대는 디자인, 레저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성공할 경우 엑스포 행사장이 될 부산항 북항 인근 지역은 마이스 지구와 연계한 랜드마크 도입도 가능하다. 찬 대표는 특히 북항 바다와 만나는 우암고가교 위에 대관람차를 얹고,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는 회전형 접근로를 만들어 연결하는 유쾌한 상상을 스케치로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우암고가교에 수영장을
(주)에이컴퍼니 김승남 대표는 동서고가로의 우암고가교 구간에 주목했다. 상대적으로 차량 통행이 적고, 주변에 주거지가 적어 철거 요구 주민도 많지 않아 활용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봤다. 김 대표는 “우암고가교 구간은 북항재개발, 해양클러스터 개발과 같은 호재가 있는 곳”이라며 “부산시가 2030엑스포 유치 때 우암고가교를 철거하고 싶어 하지만, 비용이 막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항 바다를 볼 수 있는 경관이 아름다운 만큼 해양클러스터를 개발할 때 우암고가교를 포함한 동서고가로를 활용하라는 지침만 주면 된다”며 “이 일대를 엑스포까지 연계한 도시의 어메니티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암고가교에 접근하는 방안으로는 부산시민회관 부설 주차장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다. 도시철도 2호선 문현역과 이어지는 부산시민회관 부설 주차장은 동서고가교 하부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진입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바다가 보이는 스카이 덱을 만들면 동천과 북항이 만나는 지점을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김 대표는 또 “도시고속도로 번영로와 연결되는 지점은 북항을 타고 가면서 천혜의 바다를 품을 수 있는 곳”이라며 “이곳에 인피니티 풀을 만들면 북항을 보면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엑스포 전시장을 도시와 연계할 강력한 축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북항재개발지역과 55보급창, 신선대와 감만대를 하나로 연결하는 게 우암고가교”라며 “이곳을 중심축으로 하면 전시장을 오가기 좋고, 차양막만 설치해도 더위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항 잇는 야외 전시장
경성대 강동진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전을 추진 중인 부산진구 범천동 철도차량정비단 부지에서부터 동구 범일동 미군 55보급창 부지를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동서고가로 구간 중 해당 3.7km 구간이 가장 활용 효과가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범천기지창 부지와 55보급창을 직접 연결하고, 북항재개발 2단계 부지와의 입체 통합 장치로 활용하면 좋겠다”며 “이 구간에 단순 보행을 넘어서는 복합 입체 연결의 개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범천기지창의 경우 재개발을 하더라도 철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몇 개 건물은 남겨 박물관과 미술관 등으로 리모델링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미국 뉴욕 하이라인 공원과 연계해 휘트니미술관이 들어선 후 죽어있던 주변 창고들이 화랑으로 변신했다”며 “55보급창 부지에도 부산근대미술관 같은 의미 있는 문화공간이 생긴다면, 인근 지역이 살아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암고가교를 포함한 동서고가로를 재활용하면, 서면 도심부터 북항 바다로 이어지는 야외 전시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뉴욕시가 하이라인을 남긴 이유에 철거비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도 포함됐다”며 “부산시도 또 다른 용도로 활용하면 새로운 도시 발전을 이끌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동서고가로를 먼저 헐어내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획일화된 지역 개발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역사성과 장소성, 차별성을 가진 개발, 지역성을 파괴하지 않는 개발이 도시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고가로에 루프톱 명소를
(주)에이컴퍼니 손명균 대표는 “미국 뉴욕에 있는 ‘더 스탠다드 하이라인 호텔’은 허드슨강과 휘트니미술관을 조망할 수 있는 루프톱 명소로 유명하다”며 “동서고가로에 이런 명소 하나만 들어서도 시민들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더 스탠다드 하이라인 호텔은 하이라인 공원이 건물 중심을 관통하는 형태로 설계됐다. 손 대표는 “부산은 아직 제대로 된 루프톱 명소 하나 없는 실정”이라며 “이런 건물 하나만 생겨도 고가로 주변으로 개발 붐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동서고가로가 부산 전역에 걸쳐 있어 존치, 개발할 경우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줄 수 있다. 특히 서면 주변으로 이어지는 도심 구간은 재밌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팍(Park·공원)세권’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 개발 호재로 작용해 좀 더 높은 가치 상승을 담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인근 주민에게 더 나은 환경과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계획과 섬세한 시공으로 정말 공간이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그동안 고가로로 인한 유무형의 불편을 감수해 온 인근 주민의 의견은 당연히 우선순위로 고려돼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손 대표는 “고비용의 철거만이 해답인지, 잘 활용하는 게 인근 주민을 포함한 모두에게 긍정적일지 시민 전체의 의견을 수렴해 볼 필요도 있다”며 “여론조사 역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부산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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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