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3] 전설이 된 ‘청담동 호러’…20주년 맞은 ‘장화, 홍련’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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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홍련’에 참석한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배우. 황예찬 인턴 기자 8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홍련’에 참석한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배우. 황예찬 인턴 기자

“영화 두 번째 보신 분, 세 번째 보신 분, 세 번 이상 보신 분!” 관객 열댓 명이 관람 회차를 물을 때마다 우르르 손을 들었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영화 ‘장화, 홍련’의 마니아층은 건재했다. 20년 만에 다시 열린 ‘장화, 홍련’ 상영회에 오랜 팬들이 극장을 찾았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8일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 대영 2관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 홍련’ 상영회를 열었다. 개봉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상영회 이후 김지운 감독과 작품에 출연한 임수정 배우가 관객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BIFF는 올해 관객이 기획하는 ‘리퀘스트 시네마’ 중 하나로 이 프로그램을 선정했다.

‘장화 홍련’은 한국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영화로 손꼽힌다. 한국공포영화계의 기준이 된 장르 영화이자 임수정, 문근영 등 보석 같은 배우들을 발견한 영화이기도 하다. 자매로 등장하는 두 배우는 각각 언니 수미(임수정)와 동생 수연(문근영)을 연기했다.


8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홍련’에 참석한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배우. 황예찬 인턴 기자 8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홍련’에 참석한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배우. 황예찬 인턴 기자

영화 상영이 끝나고 김 감독과 임수정이 등장하자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당초 문근영도 참석 예정이었으나 외조모상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관객과의 대화 이전 짧은 추모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 촬영 현장에서 문근영 배우의 할머님께서 저희 모두를 많이 챙겨주셨다”며 “그때 모습들이 생각나 마음이 안 좋았지만, 할머님은 오늘 관객과의 대화를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추모했다.

영화 ‘장화, 홍련’의 제작 계기를 묻자 김 감독은 “어릴 적부터 공포 영화를 만들게 되면 아름답고 슬픈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장화, 홍련 원작 자체가 슬픈 사연도 있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어서 장화, 홍련의 현대물 각색 제의를 받았을 때 꿈을 이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장화, 홍련’은 강렬한 벽지와 색감, 앤틱한 소품들로 지금까지도 공포영화 미장센의 표본으로 거론된다. 영화 특유의 감각적인 미장센에 대해 김 감독은 “영화가 개봉할 당시 ‘청담동 호러’, ‘벽지 호러’, ‘꽃가루 호러’라는 얘기가 나왔었다”며 “호러가 미술이 많이 들어가는 장르가 아닌데, ‘장화, 홍련’에서는 비싸고 예쁜 벽지부터 바르다 보니 그 뒤로 공포영화 하면 비싸고 예쁜 벽지부터 바르게 돼서 한국 공포영화의 폐해를 ‘장화, 홍련’이 가져왔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감추고 싶은 기억을 어떤 모티프를 계기로 되살리는 것, 그렇게 되살아난 기억과 투쟁하는 것이 영화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기억을 명징하게 되살리려면 공간이 강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모티프를 제공하기 위해 공간의 패턴, 오브제 등을 강렬하게 두어서 영화의 미술이 인상적으로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사에 영화 미술로 한 획을 그었다는 세간의 평을 전하자 김 감독은 “그전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미술감독의 적극적인 개념이 자리잡히지 않았는데 이 영화 이후로 영화에서 미술의 중요성, 미술감독의 역할이 드러났다”며 “단순히 예쁜 것을 넘어 작품의 주제, 영화의 무드, 인물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삶의 조건을 드러낼 수 있는 게 미술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수정 배우와 김지운 감독의 첫 만남도 거론됐다. 임수정은 “제게 장화, 홍련 영화는 제 필모그래피의 기초가 됐던 영화로 이 영화를 발판 삼아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다”며 “ 오디션장 한가운데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말없이 아우라를 풍기던 분이 기억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김지운 감독님이었고 그 옆에 계시던 분이 박찬욱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임수정 배우가 맡은 수미 역은 적개심과 죄의식이 가장 감정적으로 필요한 요소인데, 당시 오디션장에서 임수정 배우와 대화하면서 이 배우가 수미의 감정을 한번은 제대로 느껴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주눅 들지 않고 ‘되바라지게’ 말했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8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홍련’에 참석한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배우. 황예찬 인턴 기자 8일 부산 중구 남포동 롯데시네마에서 커뮤니티비프 ‘장화,홍련’에 참석한 김지운 감독과 임수정 배우. 황예찬 인턴 기자

당시 신인배우로서 맡은 큰 역할에 느꼈던 부담감도 전했다. 임수정은 “당시 신인배우로서는 너무 큰 기회였고, 이렇게 큰 영화를 리드하는 역할을 맡은 게 처음이라 계속 울었다”고 말했다. 촬영장에서 자주 울어 생긴 에피소드도 언급됐다. 임수정은 “수미 캐릭터의 감정이 깊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표현이 안 돼서 세트장, 숙소에서 계속 울었다. 나중에는 매일 우는 소리가 나니까 염정아 언니가 감독님께 “여기 귀신이 나온다. 어떤 여자가 계속 운다”고 말했다더라. 알고 보니 그게 저였다“며 웃었다.

영화 ‘장화, 홍련’ 이후 ‘거미집’으로 20년 만에 재회하게 된 소감을 묻자 임수정은 “마치 이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하기 위한 시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장한 느낌이다. ‘장화, 홍련’의 수미는 처음부터 눈과 얼굴을 가리고 감정이 안 드러나는데, ‘거미집’에서 맡은 이민자 역은 처음부터 이민자 눈동자의 강렬함으로 시작한다”며 “신인배우로서 ‘장화, 홍련’에서 최대한 적은 표현을 했던 수미에서 ‘거미집’의 1970년대 베테랑 배우 역할인 이민자 캐릭터를 만나기까지 제가 그만큼 경력 있는 배우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과 임수정 배우는 20년간 계속되는 팬들의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임수정은 “‘장화, 홍련’이 개봉한 지 20주년 되는 해에 또 김지운 감독님과 함께 ‘거미집’이라는 작품으로 BIFF에 올 수 있게 돼 큰 영광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행사는 ‘장화, 홍련’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의 촛불을 임수정 배우가 끄면서 마무리됐다. BIFF는 오는 9일 남포동 일대에서 각종 커뮤니티비프 행사를 선보였다.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공식 초청작을 상영하는 것과 달리 개성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만났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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