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부터 APEC정상회의까지, 부산 역사는 국제도시 도전사 [부산의 도전은 계속된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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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역사상 첫 경선 승리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대형 행사
135만 서명 힘 입어 APEC 유치
누리마루·불꽃축제 유산 남아
엑스포 도전 과정서도 큰 성과
부산 경쟁력 세계에 알린 기회

2003년 12월 부산상공회의소는 2005 APEC 정상회의 부산 유치를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부산일보DB 2003년 12월 부산상공회의소는 2005 APEC 정상회의 부산 유치를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부산일보DB

부산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다. 어촌 마을에서 피란 정부가 거점으로 삼은 ‘1000일의 임시수도’로, 세계 2위 규모의 환적항이자 글로벌 국제도시로 거듭났다. 부산은 이 과정에서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형 국제 행사에 도전했고,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부산 시민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고, 부산은 당당한 제2 도시가 됐다. 당장 2030년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는 아쉽지만, 부산이 얻은 것도 분명히 있다.

■운명의 2002년, 부산을 뒤흔들다

2002년은 부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다. 그해 5~6월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했는데, 부산에서도 역사적인 월드컵 경기가 열렸다. 월드컵 개최지는 1996년 결정됐는데, 앞서 1995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개최가 먼저 정해졌다. 그 결과 부산 연제구에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건설이 확정됐다. 훗날 이곳은 부산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자, 한국이 폴란드를 상대로 2대 0 완승을 거둔, 2002 한일월드컵 한국 조별 예선 첫 경기가 열린 역사적 장소가 됐다.

부산은 2002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으로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부산의 아시안게임 유치전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전만큼 치열했다. 아시안게임 역사상 최초로 경선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전에는 아시아 도시가 단독 입후보해 회원국이 승인하는 정도였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1995년 21세기 첫 아시안게임 유치를 놓고 대만의 가오슝과 부산이 맞붙었다. 부산은 한국 제2 도시지만 글로벌 인지도는 낮았다. 부산은 글로벌 도시를 꿈꾸며 아시안게임 유치에 도전했다. 당시 중국과 양안 갈등 상황에 놓여있던 대만은 국제 대회 유치로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려는 목적이 컸다.

부산의 의지는 대단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발전기금으로 1000만 달러(현재 기준 약 129억 원)를 내놓기로 했다. 부산을 찾는 아시아 각국 선수단에 항공권과 숙박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정부 차원에서 나서 부산을 지원 사격한 셈이었다.

1995년 서울에서 OCA 총회가 열려 부산과 가오슝을 놓고 투표가 진행됐다. 부산은 41개국 중 37개국 지지를 얻어 2002년 아시안게임을 따냈다. 마치 사우디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물량 공세로 2030엑스포를 따낸 것과 묘한 기시감이 드는 결과다.

부산 아시안게임은 지방화 시대 이후 대형 국제 메가 이벤트를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개최한 첫 사례다. 당시 남북이 해빙무드를 맞으면서 북한 응원단이 공식적으로 부산 아시안게임을 찾았고, 한반도가 스포츠를 통해 평화로 나아간다는 의미도 있었다.

■APEC 정상회의, 국제도시 ‘우뚝’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는 부산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2000년 11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2005년 APEC 의장국으로 선정됐다.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는 확정된 상황이었는데, 어느 도시에서 열릴지를 두고 관심이 쏠렸다.

도전장을 내민 것은 부산과 서울, 제주였다. 최종적으로는 부산과 제주가 APEC 정상회의 유치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부산은 부산시와 시의회,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범시민 유치 서명운동을 벌였고 단 18일 만에 135만 명의 서명을 모으는 저력을 보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부산은 제주를 12 대 4로 누르고 당당하게 2005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이름을 올렸다. 해운대 동백섬에 건설한 APEC 누리마루는 주 회담장이 됐다. 누리마루는 압도적인 풍경과 더불어 보안·안전 관리가 쉬워 지금도 부산 대표 회의장소 역할을 한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005년 11월, 광안리해수욕장에서 ‘APEC 정상회의 경축 첨단 멀티미디어 해상쇼’라는 이름으로 불꽃쇼가 열렸다. 현재 부산불꽃축제의 출발점이다. 당시 100만 명의 인파가 몰리며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부산으로서는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한 불꽃축제’라는 새로운 관광 아이템을 얻은 셈이다.

부산이 2030년 월드엑스포를 유치했다면 한국은 올림픽, 월드컵, 월드엑스포라는 국제 3대 메가 이벤트를 모두 개최한 국가로 떠올랐을 테다. 당장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부산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서울은 알아도 부산은 몰랐던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부산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2035년 월드엑스포에 재도전할지도 관심사다.

월드컵, 아시안게임, APEC정상회의 개최로 부산은 국제도시로 거듭났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한국 시간으로 29일 새벽 엑스포 개최지가 발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부산은 전 세계로부터 역량과 경쟁력, 잠재력을 충분히 인정받았다”면서 “2035년 엑스포 유치 도전을 정부와 부산시민과 함께 논의하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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