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 실패했지만…182개국 발품 판 덕에 뜻밖의 수확도 [부산의 도전은 계속된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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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 적던 나라와 전방위 외교
장기적 관점 외교 필요성 체감
BIE 회원국 밀착 접촉한 재계
교류 통해 신시장 개척 교두보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가 안타깝게 실패로 돌아갔지만 치열한 유치 과정에서 얻은 자산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정치권과 경제계 등에서 “성과가 있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정부와 재계, 시민사회단체가 ‘원팀’으로 나서 세계 각국을 상대로 ‘총력 외교’에 나선 경험은 큰 자산이라는 평가다.

2030엑스포는 우리 정부 ‘외교 역량’의 시험대였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과 달리 월드엑스포는 각국 정부가 직접 지지 국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개인’(IOC 위원, FIFA 집행위원)을 향한 득표전에서 성공했던 우리 정부는 2030엑스포 유치전에선 각국 정부를 겨냥한 설득에 나섰다.

태평양 도서국이나 카리브 연안국, 아프리카 국가 등 그동안 교류가 많지 않았던 중립 성향 국가를 상대로 득표전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력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미국이나 중국 등 기존의 ‘대국 외교’를 지향하는 국가와 달리 중립 성향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필요’에 근거한 외교 관계를 이어온 우리 정부로서는 귀중한 자산을 쌓은 셈이다.

2030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우리 정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한계도 확인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30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방문한 태평양 도서국가의 경우 기존 ODA로 건설한 어항 냉동시설이 ‘수리능력 부족’으로 방치된 사실도 알게 됐다”면서 “소규모 인프라 건설 사업도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운영 능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방위 외교’를 이어가야 한다는 필요성도 확인됐다. 정부는 2002년 2010여수엑스포 유치에 나서 중국 상하이와 격전 끝에 20여표 차로 아깝게 패한 경험이 있다. 2002년 당시 정부는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의 집단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30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공식적으로 사우디 지지 선언을 했다. 사우디의 ‘물량 공세’ 영향이 크지만 우리 정부의 장기적인 외교관계 강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30엑스포 유치 과정에선 정치권도 때에 따라 ‘원팀’으로 활동했다. 특히 국회는 지난 4월 엑스포 유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눈길을 끌었다. 정치의 양극화로 잊혀졌던 ‘만장일치’가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협치의 가능성을 보였다.

2030엑스포 유치를 지원한 재계도 이번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발굴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하는 소정의 성과를 얻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12대 그룹은 지난해 6월 민간유치위원회 출범 이후 18개월 동안 총 175개국의 고위급 인사 3000여 명을 만났다. 관련 회의만 모두 1645회에 달하고, 이 중 절반 이상은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급이 직접 참여했다.

특히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를 중심으로 삼성과 현대차, LG, 롯데 등 주요 5대 그룹은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소화했다. 이들은 국제박람회기구(BIE) 182개 회원국을 비즈니스 연관성 등을 기준으로 나눠 맡아 밀착 마크했는데 여기에는 그동안 교류 기회가 적었던 나라들도 포함됐다.

삼성은 네팔과 라오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등에 부산의 매력을 호소했고, SK는 아프가니스탄과 아르메니아, 리투아니아, 몰타 등과 접촉했다. 현대차는 페루, 칠레, 바하마, 그리스 등과 만났다. LG는 케냐와 소말리아, 르완다 등을 각각 담당했다. 롯데는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을 대상으로 유치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확장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최태원 회장이 올해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미국·중국 갈등 등 지정학적 문제로 글로벌 시장이 쪼개지는 가운데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지금, 엑스포는 세계 시장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치 결과 발표 직후인 29일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도 논평을 내어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이뤄진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 역시, 향후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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