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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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대학 인문학부에서 텍스트 읽기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읽기와 비평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아무리 훌륭한 글에서도 그 속에서 비판할 거리를 찾는 능력, 다른 하나는 아무리 못 쓴 글이라도 그 속에서 단 하나의 일리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전자에 해당할 대표적인 문제의식 중 하나가 성(性), 즉 젠더·섹슈얼리티에 관한 것이다. 수천년간 존경을 받아온 인류 문명의 경전이나 여러 고전들도, 유독 성에 있어서만큼은 현재를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편견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인류에게 성 관련 지식과 실천은 최근까지 그 윤리의 기준이 빠르게 변해온 주제다. 현재 성폭력, 가정폭력, 성희롱,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로 분류되는 말과 행동들은,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별 문제가 안되거나, 남들과 히히덕거리는 용도로 주로 언급되던 것이었다. 그런 인식이 변해왔다는 것은 곧 그 사이 우리 사회가 그만한 변화를 겪어왔음을 의미한다. 옛 고전 속에서 소위 ‘빻음’(‘젠더 감수성 없음’을 의미함)을 발견하는 일은, 오늘날 비로소 가능하게 된 변화를 재확인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지성의 활동이다.

이와 더불어 필요한 것은, 역사 속 숱한 ‘빻은’ 글들 가운데의 일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다. 사실 현재의 준엄한 기준으로 완벽한 과거의 글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과거에 쓰인 많은 글들은 그 시대에 고유한 편견을 편견인지도 모르고 써제낀 경우가 허다하다. 그 허다한 ‘빻은’ 글들이 그럼 오늘날 모조리 별 소용이 없어진 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세상에는 잘 쓴 글보다 못 쓴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못 쓴 글들을 전부 폐기처분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압도적인 양의 교재를 잃는 것과 같다. 아무리 못 쓰고 문제적인 글이라도 그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그 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하나의 일리는 있기 마련이고, 그러한 일리를 내 것으로 만든 연후에 그걸 그 글과는 다른 방식으로 펼칠 줄 알게 만드는 것도 인문학의 중요한 공부법이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상대의 입장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극복은 곧, 그 상대가 지닌 문제의식들 중 일리있는 것을 상대보다 더 나은 나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대하며 나를 다잡는다는 측면에서 글과 사람은 그처럼 유사한 면이 있고, 그렇기에 그것을 인문학이라 부른다. 그 인문학이 최근 수십년간 진행해온 일이 바로, 인간의 성을 이전보다 말이 되는 방식으로 말하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역사 속 ‘빻은’ 것들을 짚어내고, 동시에 그 중 일리있는 것들을 읽어내 오늘날 형성된 젠더·섹슈얼리티의 입장과 관점에서 그것을 다시 쓰는 일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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