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해양수산 빠진 지방시대는 없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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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부산 중심 '지방시대' 연일 강조
해수 중대 현안들 외면에 실현의지 의문
직통창구인 비서관 복원 기대에도 '찬물'
부산시대 위해 해수부도 존재감 키워야

‘부산이 활짝 여는 지방시대’.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11번째 민생토론회 주제다. ‘지방시대’라는 단어가 썩 달갑지 않지만 현실을 보면 토를 달기 어렵다. 부지불식간 쓰는 ‘지방’은 서울 이외 지역이라는 뜻을 가져 대한민국을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다.

어찌 됐든, 지역의 생존과 번영을 담은 지방시대는 서울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업임은 틀림없다. 그 중심엔 제2의 도시 부산이 있다. 부산이 살아야 ‘지방’에 희망이 생기고 우리나라도 백년대계를 위한 새 동력을 얻는다.

지방시대 리더인 부산의 중심엔 해양수산이 있다. 부산의 정체성이자 수도권 일극체제에 맞선 독보적인 무기. 세계 2위 환적항과 국내 최대 산지 수산물 도매시장을 보유하고 해양기관이 밀집한 부산은 명실상부 해양수도다. 부산을 키우고 지방시대를 열 지름길은 ‘바다’인 셈이다. 이를 익히 아는 정부와 지자체 모두 ‘세계 3대 해양강국 건설’ ‘글로벌 해양중심지 조성’을 외치며 시민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해양수산부는 해양수산 업계를 대변하고 국민과 대통령실에 각종 현안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알릴 지방시대의 핵심 부대다. 이런 위상에도 여전히 부처 서열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잇단 중대 사안에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HMM(옛 현대상선) 매각 사례가 대표적이다. HMM은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이자 선복량 기준 세계 8위의 글로벌 기업이다. 이에 자금 조달 능력을 의심받는 하림그룹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HMM 노조, 해양 시민단체의 반발이 들끓었지만, 메아리 없는 절규에 불과했다. 해양수산 업계뿐 아니라 공공기관 관계자들도 사석에서 “해운업 특성을 무시한 졸속 매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홍해 발 물류대란,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이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설상가상 노조가 사상 첫 파업까지 예고했지만 대통령실과 정치권, 심지어 해수부도 침묵하며 사태를 키웠다. 금융논리를 앞세운 산업은행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물론 HMM의 도약을 위해 민영화는 필요하지만, 단순 경제논리로만 섣불리 매각하면 국내 해운물류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문제다. 우리는 이미 한진해운 파산 사태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는가. 이를 모를 리 없는 해수부가 스스로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내심 HMM 노조와 시민단체를 응원했다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해양수산 분야가 미치는 지역이 상대적으로 적어 부처 간 파워대결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부산을 거점으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한 만큼, ‘특별 대우’는 아니더라도 동등한 선에서 해양수산을 바라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HMM 인수 갈등, 한일어업협정 표류 등 잇단 현안에도 ‘신해양강국’을 외친 대통령은 참모진을 재편하며 해양수산 전담 비서관을 부활시키지 않았다. 6개 경제 부처 중 유일하게 해수부 소속 전담 비서관만 없다. 전담 비서관은 해당 분야의 현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알릴 직통채널이다. 특히 부산의 경우 2030세계박람회 유치전을 전담했던 대통령실 내 미래전략기획관실까지 해체되면서 해수 전담 비서관 복원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해양수산업은 사실 ‘잘 나가는’ 부산항에 가려져 있을 뿐 심각한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만성적인 한국인 해기사 부족은 유사시 인력 수급 문제를 초래할 뿐 아니라 해기사를 필요로 하는 부산의 선박관리산업까지 위협하고 있다. 갈 길 먼 자율운항 선박 기술 상용화에 기대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더불어 부산 공동어시장에서 만난 어민들은 기후변화와 남획으로 인해 “좋은 시절 다 갔다. 물고기를 잡아 돈 버는 건 끝났다”며 한탄한다. 해기사 부족과 어획량 감소, 어촌 소멸은 부산뿐 아니라 전국 연안 지방 경제에 치명적인 사안이다. 국가 경제 안보와도 직결된 만큼 대통령실과 정치권도 나서 예산 지원의 물꼬를 터 해수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런 목소리를 두고 누군가는 또 지방의 열등감, 피해의식으로 폄하할 게 분명하다. 수도권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주민의 요구가 담긴 지역 언론의 기사를 ‘지방방송’으로 치부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더는 과민하고 속 좁은 지역민, ‘지방방송 기자’가 되지 않도록 이제 중앙정부가 나서 전국을 들썩일 대책을 터뜨려 달라. 더불어 존폐를 반복해 온 해양수산부도 ‘진짜 부활’을 위해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야심 차게 내세운 부산의 부활이자 지방시대의 첫걸음이다.

이승훈 해양수산부장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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