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화장장 확보 진퇴양난…통영화장장 공동사용 동의안 보류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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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 소관 상임위서 민주당 반대
“무조건 반대 아니라 공론화 필요”
사실상 ‘여야 동수’ 재합의 불투명
시민사회 “민생 현안마저 정쟁화”

거제시의회 제244회 임시회 본회의. 사무국 제공 거제시의회 제244회 임시회 본회의. 사무국 제공

경남 거제시가 시립화장장 대안으로 추진한 통영시추모공원 공동사용(부산일보 2월 8일 자 11면 등 보도)이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집행부 간 협약 동의안이 야당 반대로 시의회 상임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애초 계획한 상반기 시행도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민생 현안마저 정쟁화하는 정치권을 향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21일 거제시의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제244회 임시회 행정복지위원회에서 ‘통영시 추모공원 공설 화장시설 공동사용 협약 체결 동의안’이 심사 보류됐다.

동의안은 거제시가 출연금을 내고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30년간 통영시민과 같은 혜택을 받는 게 핵심이다. 출연금은 99억 2600만 원이다. 화장장 건립비 중 시비 부담금의 50%, 진입로 개설비의 25%를 합친 금액이다. 운영비는 이용자 비율에 따라 분담한다. 작년 기준 한 해 4억 원 안팎이다.

안건 제안 설명, 전문위원 검토 보고, 질의·답변 후 한 차례 정회를 거쳐 ‘심사보류 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행정복지위는 더불어민주당 4명, 국민의힘 3명 구성이다. 민주당 안석봉, 최양희, 이미숙, 한은진 의원은 ‘심사 보류’에 찬성했다.

이들은 시민 절대다수가 필요성을 인정한 사업을 시민 공감대 없이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을 문제 삼았다. 애초 거제시는 민선 8기 핵심 공약사업으로 시립화장장을 추진했다. 당시 시민 90.1%가 동의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작년 9월 타당성 용역을 거쳐 보건복지부 ‘제3차 장사시설 수급 및 종합계획’에 맞춰 건축 기획 용역까지 마쳤다.

그러나 건립 대상지 인근 주민의 거센 반발이 뻔한 데다, 가뜩이나 빠듯한 지방 재정에 주는 예산 부담도 상당해 머뭇거렸다. 실제 시립화장장은 건설비로만 258억 원이 든다. 이 중 160억 원 이상을 시비로 충당해야 한다. 여기에 인접 지역 주민보상 사업에 100억 원, 운영비와 주민 인센티브와 매년 7억 원 상당을 써야 한다.

고민에 빠진 거제시는 국회의원‧시장 업무간담회를 통해 신축 대신 통영화장장 공동사용으로 선회했다. 뒤늦게 이를 인지한 민주당은 “시립 화장장은 시민 기본 필수 복지 인프라 확충의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독자적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통영시 추모공원. 부산일보DB 통영시 추모공원. 부산일보DB

이날 상임위에선 “(공동사용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며 한발 물러선 대신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시민 의견을 더 수렴하고, 심도 있게 토론하며 심사숙고할 사안”이라고 짚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시민 편익과 예산 절감, 행정 효율을 강조하며 원안 통과를 주장했지만 수적 열세를 뒤집진 못했다.

상임위에서 보류된 안건은 의원들 간 합의만 되면 언제든지 재논의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의회가 사실상 ‘여야 동수’인 데다,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찬반이 극명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9대 거제시의회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각 8석 대 8석으로 출발했다. 지난해 음주운전과 성희롱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여야 의원 2명이 탈당해 무소속이 됐지만, 정치색과 구도는 그대로다.

거제시는 이번에 동의안이 통과되면 3월 중 통영시와 협약을 맺고 5월 1일부로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면서 이마저도 차질을 빚게 됐다. 한 여당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시민 복지 문제를 정치 문제로 끌어들이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언성을 높였다.

시민사회에선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미 여야 입장차가 분명했던 사안이다. 사전 교감이나 조율 없이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식이다 보니 반감이 상당한 듯하다”면서 “이대로는 행정력 낭비만 가중할 게 뻔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거제시 통계를 보면 관내 화장 비율은 80%를 넘어섰다. 지난해 일반 사망자와 묘지 정리에 따른 개장 유골을 합쳐 총 1167구 중 972구가 화장을 택했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에는 화장률이 95%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정작 화장시설이 없다. 거제시민은 통영이나 고성, 멀게는 창원까지 원정 장례를 치러야 한다. 이마저도 제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시설이 있는 지역 주민에게 우선권을 주는 탓에 예약부터 쉽지 않다.

비용도 마찬가지. 거제시민이 가장 많이 찾는 통영화장장은 2022년 새 단장하면서 요금을 대폭 인상했다. 관외 거주자 비용은 45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배 가까이 올랐다. 통영시민은 10만 원이다. 2014년 통영시가 ‘화장장 현대화 사업’을 준비할 당시 거제시가 사업비 일부를 분담하고 거제시민도 할인받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끝내 무산됐다.

거제시는 지원 조례를 개정해 사망자 1인당 보조금을 2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증액했다. 그럼에도 통영화장장 이용 시 거제시민은 최소 85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장외버스 관외 운행비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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