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위한다면서… ‘환자 잡는’ 의정 갈등 깊어만 간다
의대 교수 “체력 한계로 근무시간 조정”
이달부터 상급병원 외래·수술 축소
정부 “2000명 증원, 개혁 출발점” 완강
양측 입장 갈려 4월에도 ‘강 대 강’ 대치
애먼 응급환자들 골든타임 놓치고 숨져
4월에도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가 지속될 전망이다. 앞서 정부가 의사 단체에 대화를 시도하는 등 ‘유화 제스처’로 의정 갈등이 해결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양측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 채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의지는 변함이 없다. 의사 단체에서는 대화의 조건으로 ‘2000명 증원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합의를 위한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전국 의대 교수들이 이번 주부터 근무시간 재조정에 나선다고 밝히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의료 공백 장기화로 인해 한계가 왔다면서 근무시간을 재조정하기로 했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를 전부 보고(진료하고) 환자를 줄이지 않았지만, 물리적이고 체력적인 한계가 온 것 같다”며 “근무시간을 재조정해 각 과 사정에 따라 비필수의료를 줄이고 필수의료에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급병원의 경우 경증 환자를 줄이고 응급환자에 집중해 외래진료와 수술이 축소될 예정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은 31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지금은 교수들이 너무 탈진한 상황이다. 교수들도 들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이라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과 정치인들뿐이다. 빠른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이 ‘의료개혁의 최소 필요조건’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대 증원은 의료개혁의 출발점”이라며 의료계를 향해 “의료개혁을 위한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장기화하는 사이 응급환자들이 숨지는 상황이 잇따르면서 환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충북 보은군에서 생후 33개월 된 아이가 주택 옆 1m 깊이의 도랑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아이가 이송된 병원은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충북·충남권 상급종합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소아 중환자를 받을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전원 요청을 거부당해 끝내 아이는 숨졌다.
부산에서도 지난달 초 한 공공병원에서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90대 환자가 대학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심근경색 환자 처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원을 거절당했다. 결국 이 환자는 10km 정도 떨어진 울산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골든타임을 놓쳐 끝내 사망했다.
앞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시점을 유예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이번 주 면허 정지 대상이 되는 전공의들은 수천 명 단위로 늘어날 전망이다. 당정은 이 문제를 두고 일주일째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갈등으로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월 1882억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지난달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을 열고 이 같은 지원 방안이 담긴 ‘비상진료체계 건강보험 지원’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지난 2월 20일 전공의 집단 이탈 후 예비비와 건보 재정을 투입,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해 왔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