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키시마호 승선 명부 보관해 왔다…유족 "거짓 주장 해명하라"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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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 김자야(77) 씨가 부산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 5층 ‘기억의 터’에서 선친 김복경 씨의 위패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 김자야(77) 씨가 부산 남구 일제강제동원역사관 5층 ‘기억의 터’에서 선친 김복경 씨의 위패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1945년 광복 직후 부산항으로 귀향하다 일본 앞바다에서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탑승자 명단을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배 침몰과 함께 명부가 사라졌다고 밝힌 일본 정부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해당 명부가 확인되면서 국내 남아 있는 유족들도 고인의 사망 사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교도통신은 23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정보공개 청구에 응해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후생노동성이 공개한 명부는 여러 가지로, 해군과 기업이 각각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해군시설부의 ‘승선 명부’의 경우 2429명의 명단이 적혔다. 개인의 직종, 성명, 생년월일, 본적지 등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가려졌다. 제4부대장 명의의 명부에는 333명의 칸이 있으며, 8월 19일로 기재돼 있다. 더불어 일본통운 오미나토 지점 ‘우키시마마루 승선 조선인 명부’에는 144명, 8월 22일이라고 기록됐다.

이와 별도로 공개된 오미나토 지방 복원국 장관의 1946년 4월 19일 문서의 경우 조선인 승객이 3735명으로 기재됐다. 오미나토 해군시설부 2838명, 해군시설협의회·일본통운 897명 등이다. 해당 문서에는 “억지로 편승한 사람도 소수 있어 선상에서 추가 명단을 작성했지만, 침몰로 상실했다. 70명 정도로 추측”이라고 기재됐다.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이후 생존자와 유족들은 집계되지 않은 조선인을 포함해 승선자 수가 8000명에 이르고, 사망자도 수천 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침몰 이후 승선자 3700여 명이고 사망자는 524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족과의 국가배상청구 소송 때 승선자 명부는 배 침몰로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명부를 배에 비치했고, 침몰하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선자 명부도 없이 어떻게 사망자와 승선자 수를 추산하고 명단을 작성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실제 사망자 524명의 명단은 현재 일본 시민단체 ‘마이즈루모임’ 등에 보관돼 있다.

후생노동성은 해당 보도에서 “이번에 공개한 문서는 사고 후 조사를 거쳐 작성된 명부”라면서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승선자 명부와는 작성 시기가 달라 별개의 것”이라고 해명했다.

승선자 명단이 일본 현지에서 공개되면서, 유족들도 고인의 이름 ‘석 자’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족단체는 한국 정부 등을 통해 개인정보가 적힌 명단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영용 유족회장은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명단을 확보할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명부가 없다고 했는데 거짓 주장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키시마호는 강제징용 조선인을 태운 ‘해방 귀국선’이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했지만, 이틀 뒤 의문의 이유로 교토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일본 정부는 해저 기뢰에 의한 폭발로 발표했지만, 생존자와 유족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시켰다고 주장했다. 실제 침몰 후 제대로된 선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이에 대한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1992년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04년 패소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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