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정부 ‘우키시마호 비극’ 진상 규명 위해 공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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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 때 승선자 명부 공개·조사 등
양국, 정부 차원 의혹 해소 나서길

1945년 일제 강제징용자 귀국선 우키시마호. 원내는 폭침 직후 모습. 부산일보DB 1945년 일제 강제징용자 귀국선 우키시마호. 원내는 폭침 직후 모습. 부산일보DB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1945년 침몰한 우키시마호의 승선자 명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동안 승선자 명부는 없다고 주장하던 일본 정부가 최근 입장을 바꿔 관련 명부의 존재를 시인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달 승선자 명부 3종을 공개한 뒤 “비슷한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일에는 〈부산일보〉가 일본 언론인으로부터 입수한 명부 8개를 공개하기도 했다. 승선자 명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핵심 자료다. 광복 후 수십 년 동안 묻혀 있던 우키시마호 비극의 진상이 일본 정부의 대응에 따라 규명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다 침몰한 우키시마호 사건의 전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다고 발표했을 뿐,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않았다. 피해 규모도 승선자 3700여 명 중 524명 사망이라고 밝혔는데, 승선자 8000명에 3000명 이상 숨졌다는 유족들의 주장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 정부의 축소·은폐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선 당시 일본 정부가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승선자 명부가 공개되면 이런 의혹들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는 승선자 명부를 분석하면 당시 피해자 규모 산정은 물론 국내 생존 추가 피해자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일본 정부는 진상 규명에 대단히 소극적이다. 70여 개 승선자 명부의 존재가 드러난 것도 일본 내 민간단체와 언론 등의 집요한 정보공개 요구에 마지못해 응한 결과일 따름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명부에 대한 향후 조사계획도 뚜렷이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에 승선자 명부를 공개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도 “관련 기관과 논의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반응으로 일관한다. 피해 규모와 사건 경위에 대한 진상 규명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잊혔던 우키시마호 사건이 그나마 세간에 알려진 데에는 한국과 일본의 양심적 개인과 시민단체, 언론 등 민간의 힘이 컸다. 우키시마호 유골을 처음 확인한 것도, 승선자 명부의 존재를 드러낸 것도 순전히 양국의 민간 협력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민간의 진상 규명 역량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양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키시마호 폭침에 따른 수많은 인명 피해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의 비극이기도 하다. 과거사의 얽힌 실타래를 풀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게 현재 양국 간 추진되는 외교정책 아닌가. 그렇다면 그 단초는 우키시마호 진상 규명을 위해 서로 공조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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