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생부모 동의 없이 인적사항 공개 못해… 법·제도 개선 절실 [귀향, 입양인이 돌아온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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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 개 조문에 막힌 뿌리 찾기

현행 입양특례법 현실적 한계
2021년 이후 동의 16.4% 불과
입양인 '알 권리' 법제화 필요
부실한 기록물 관리도 걸림돌
통역 등 지원 서비스 마련돼야

지난 7월 <부산일보> 취재진과 만난 뿌리의집 김도현(왼쪽) 대표와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노혜련 명예교수가 해외 입양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행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7월 <부산일보> 취재진과 만난 뿌리의집 김도현(왼쪽) 대표와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노혜련 명예교수가 해외 입양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행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있다.

해외 입양인들에게 ‘뿌리를 알 권리’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법과 제도는 이들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보건복지부는 민간 입양기관에 분산돼있던 25만여 건의 기록물을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한다는 내용의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입양인들은 ‘뿌리 찾기’의 현실적 장벽을 여전히 호소한다.

친생부모의 개인 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친생부모 동의 없이 그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법 조항부터 ‘부모를 알 권리’는 철저히 막혀있고, 뿌리 찾기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목소리다.

■배제된 ‘부모를 알 권리’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무지가 평생 가는 구멍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부모를 알 권리’를 명시하며 1991년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 비준했지만 해외 입양인들에게 이 조항은 한국이 단 한 번도 지켜준 적 없는 권리로 남았다.

현행 입양특례법에서 입양인은 친생부모 동의 없이 그들의 인적사항을 제공받을 수 없다. 입양특례법 제36조에 따라 입양인이 친생부모 인적사항을 포함한 자신의 입양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으나, 청구를 받은 입양기관과 아동권리보장원은 행정 정보 공동이용망을 이용해 친생부모 소재지를 파악한 후, 친생부모 동의 여부를 우편으로 확인해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명시했다.

입양인이 정보 공개를 청구하면 아동권리보장원은 친생부모에게 등기우편을 발송해 동의 여부를 묻지만 전문가들은 소극적 행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해당 주소지는 수십 년 전 입양 기록에 남아있던 것이어서 친생부모가 그곳에 살 가능성이 적고, 확인이 안 되면 추가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입양인의 전체 청구 사례에서 정보 공개에 동의한 사례는 1000건(16.4%)에 불과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노혜련 명예교수는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권리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 입양기관과 관련 시설은 개인정보 보호 등을 내세우며 입양인에게 비협조적인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양인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입양인 ‘알 권리’를 법률에 명확히 선언하는 것은 그 시작이다. 비밀입양의 원칙만을 과도하게 보장하고 입양인의 알 권리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 연구용역 보고서 ‘해외입양동포 친족찾기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 방안’에서는 법률에 입양인 알 권리를 명시해야 친생가족에 대한 알 권리 실현을 도울 수 있다고 봤다.

■조작된 진실, 규명 필요

해외 입양인 정보를 보유한 입양기관의 자료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최근 아동권리보장원의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서는 기록물의 쪽 번호 표시가 빠져있거나 자료 절반이 백지로 드러나는 등 부실한 기록 관리 과정이 속속 드러나 입양인들의 우려가 커진다.

현행 입양특례법 제29조는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업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공기관, 입양기관 등에 대하여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입양 자료를 받더라도 입양인들은 자료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60~90년대 덴마크·미국·스웨덴 등 11개국에 입양된 375명의 진실 규명 신청을 접수받아 조사 중이다. 이들은 친생부모의 동의 없이 입양이 이뤄졌고 고아로 서류가 조작됐다며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실제로 진화위에 따르면 일부 입양인들이 기록을 통해 고아로 둔갑된 채 입양된 사실이 다수 드러났다.

내년 6월 아동권리보장원의 입양 기록물 전산화 사업에서 보다 철저한 기록물 관리가 명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인다. 해외 입양인 뿌리 찾기 지원 단체인 뿌리의집 김도현 대표는 “입양기관들은 해외 입양인들에게 조작된 서류를 제출하고 진짜 정보는 주지 않는다”며 “입양기관이 주는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해외 입양인들에게는 절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실체 없는 뿌리 찾기 지원

실질적인 지원 서비스를 구체화할 필요도 있다. 현행법은 ‘입양기관의 장은 국외로 입양된 아동을 위하여 모국방문사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자주 진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입양연대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신필식 박사는 “지금까지 진행된 모국방문사업은 국가에서 예산을 조금 마련해 입양기관과 재단 등에 지원하면 이곳에서 심사를 통해 대상자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해당 행사로 1년에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입양인은 50여 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에서 뿌리 찾기를 할 때 가장 필요한 주거와 통역 지원도 부족하다. 입양인 대부분은 민간 단체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동안 입양인들은 뿌리의집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난해부터는 게스트하우스 운영도 중단됐다. 신 박사는 “모국 대한민국이 해외 입양인들에게 일생 최소 1번 한국 방문을 지원하는 정책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끝-

글·사진=양보원·변은샘 기자 bogiza@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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