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어서원, 영도 이전해 시문학 천착한다
15년 9개월 머문 중구 떠나
규모 줄여 영도 영선동 정착
‘신선시사’ 별명 시 중심으로
2025년 새해를 맞아 백년어서원이 정든 부산 중구 동광동을 떠나 영도구 신선동 1가 74-1로 이사한다. 부산 원도심에서 인문정신을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김수우 시인이 2009년 문을 연 백년어서원은 함께 읽고, 쓰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15년 9개월 동안 원도심을 지켜 왔다. 또한 원도심 예술창작촌으로 자리 잡은 ‘또따또가’의 뿌리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의 성과는 가위 탁월하다. 인문 계간지 <백년어>를 60호까지 발간했다. ‘개똥벌레의 철학’ 단행본 시리즈로는 <부산에 삽니다>, <굴참나무, 기후위기를 걷다>, <기술과 인문, 그 나선의 춤> 등 11권을 냈다. 각종 공부 모임의 단행본도 <경전 한 잎 바람 한 잎>, <버지니아 울프의 오래뜰>, <오솔길 안에는 아직도 오솔길이> 등 6권이나 발간했다.
고명자 시인은 백년어서원의 영도 이전에 대해 “침침한 인쇄 골목이었던 중앙동(동광동)을 살린 건 인문학 공간 백년어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라는 글을 SNS에 남겼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많은 글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백년어서원을 처음 열려고 할 때 주변에서는 젊은이들이 많은 경성대 앞이나 해운대로 가라고 다들 말렸다고 한다. 누가 인문학 공부하러 원도심으로 가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 시인은 “부산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 원도심이고, 기억이 잘 살아 있는 도시가 인문학적인 도시다. 부산을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시로 만들고 싶으냐”라며 고집을 부렸다. 결과는 놀랍게도 백년어서원이 문을 열자마자 강사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것은 시대의 요청이었다.
김 시인은 백년어서원이 중구를 떠나는 게 아쉽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열심히 문학을 할 시간도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자신이 있으니 고령화된 분만 오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대신 맡아줄 사람을 7~8년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하긴 요즘 세상에 돈이 되지 않는 비자본적인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게 어쩌면 욕심이었다.
김 시인은 한 산문집에서 ‘내 삶엔 늘 영도 앞바다가 출렁거렸다’라고 썼다. 영도구 신선동으로 옮긴 백년어서원 자리가 마침 자신이 태어난 곳 바로 옆이라니,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규모를 조금 줄여 옮긴 영도에서는 문학(시)을 중심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백년어서원에다 ‘신선시사’(新仙詩社)라는 이름을 추가했다. 신선은 동네 이름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신선들이 시를 읽으며 시대를 논하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다. 영도에 새로운 시의 바람이 세차게 불 모양이다.
김 시인은 우리나라 역사의 인물 중심으로 서사시를 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네루다의 <모두의 노래>를 보면 라틴아메리카의 정복자, 해방자, 배신자 이름을 다 열거해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의 독립군 아무개는 무슨 일을 했고, 침략자를 도운 사람, 배신자는 무엇을 했는지를 낱낱이 쓰고 싶어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년어서원이 중구를 떠나 영도에 새로 자리 잡은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끝으로 김 시인은 “비영리단체 ‘문화사랑 백년어’는 백년어서원과 독립해 동광동 건물에서 새로운 편집진을 갖추고 인문계간 <백년어>를 계속 발간하니 응원을 부탁한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