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심해저 '경배 지역' 새로운 권익과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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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영유권 허용되지 않는 바다 밑 개발
역사·종교 의미 있으면 예외적 보호
무분별 인정 탐사권 침해, 기준 필요

해양에 관한 국제법의 탄생에는 오래된 두 명제의 대립이 있었다.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어서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명제와 바다도 영토처럼 차지할 수 있다는 명제다. 이 두 명제의 치열한 다툼의 산물로 오늘날 국제법은 바다의 일정 부분은 한 국가가 영토처럼 관할하도록 인정하면서도, 다른 부분은 어느 한 국가의 영유권도 허용하지 않고 모두에게 열어 둔다. 후자가 국가의 관할권 밖에 있는 지역에 해당하는 공해와 심해저다. 그런데 지금, 가장 멀고 깊은 바다에서 새로운 권익과 주체가 떠오르고 있다.

올해 3월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에서 심해저 광물 자원 개발 규칙을 제정하기 위한 국제해저기구(ISA) 제31차 이사회가 개최되었다. 전기차 배터리와 첨단 산업에 쓰이는 금속 수요가 늘고 심해저 해양환경 보전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심해저는 새로운 자원 개발 경쟁의 현장이자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중요 대상으로 떠오른 터다. 이 협상장에서 소수 민족을 대표해 발언권을 얻은 한 옵서버 대표가 조상의 혼을 기리는 전통 민요를 불렀다. 하와이 원주민의 조상이 깃든 심해 평원과 해산이 자신들에게는 신성한 장소, ‘경배 지역(venerated site)’이니 심해저 자원 개발로 그 정신적 연계를 훼손하지 말라는 호소의 서곡이었다.

‘경배 지역’은 새로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2001년 채택된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 보호협약의 부속 규칙은 유해나 ‘경배 지역’에 대한 불필요한 교란을 피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비극적 사건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수중의 장소나 역사적·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장소를 무분별한 발굴과 탐사로부터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다만, 이 협약의 ‘경배 지역’은 난파선과 같은 물리적 대상이나 역사적·종교적 유물이나 유적을 전제한다. 반면, 옵서버가 말하는 ‘경배 지역’은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라 정신적 연계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이러한 주장은 더 큰 국제 규범의 흐름 위에 있다. 바로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다. 오랜 차별과 소외의 역사를 지닌 이들을 국제 사회가 특별히 보호해 온 것은 정당하며, 이들은 이제 국제법의 당당한 권익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최근 발효한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 해양생물다양성 협정(BBNJ 협정)도 공해와 심해저에 관한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전통 지식의 존재와 그 존중을 규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BBNJ 협정이 규정하는 것은 이들이 ‘가지는 지식’이다. 지식은 공동체가 지닌 무형의 자산으로 인정될 수 있다. 반면, 심해저에서 ‘경배 지역’ 주장은 인류 공동 유산으로 지정된 심해저의 특정 장소에 특별한 보호 이익을 설정하는 행위다. 그들이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지역에 말이다. 지식의 존중과 장소에 대한 권리 주장은 결코 같은 차원의 일이 아니다.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의 전통 지식도 존중해 주니 ‘경배 지역’ 주장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경계되어야 한다.

따져 봐야 할 문제는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경배 지역’에 대한 권리를 부정할 것인지가 아니다. 바다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은 심해저를 인류 공동 유산으로 정한다.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가보지 않은 미지의 심해저에 조상과의 정신적 연계를 이유로 특정 지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독점적 점유를 부정하는 인류 공동 유산 개념과 조화될 수 있는지. ‘경배 지역’의 존재와 가치는 누가 인정하며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경배 지역’이 취지가 좋으니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 물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ISA를 통하여 심해저 세 곳에서 자원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심해저 개발로부터 보호해야 할 범주가 어떤 형태로 정해지는지는 우리나라 개발 주체의 미래와 직결된다. 핵심은 ‘경배 지역’을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범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다. ‘경배 지역’이 자칫 광범위한 지역의 심해저 채광을 막는 도구로 쓰일 여지는 없는지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무형의 정신적 연계가 장소에 대한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하면, 이 논리는 다른 영역에서 확장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경계(儆戒)는 부정이 아니다. 어떤 권리든 한계가 분명해야 비로소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검토 없이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심해저 탐사권을 가진 국가로서 이 논의를 회피하지 않고 ‘경배 지역’ 범위 설정을 위한 균형 잡힌 기준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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