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키조개 추억의 소환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키홍합’을 이렇게 적었다. ‘큰 놈은 지름이 대여섯 치 정도이고 모양이 키와 닮아서 평평하고 넓으며 두껍지 않다. 돌에 붙어 있으나 곧잘 떨어져 헤엄쳐 다닌다. 맛이 달고 개운하다.’ 학자들은 이 키홍합을 오늘날의 키조개로 본다. 200여 년 전에도 우리 선조들은 키조개를 눈여겨봤고, 그 맛 또한 높이 평가했던 모양이다.
예전 시골에는 밤에 오줌을 가리지 못해 이불에 지도를 그린 아이에게 곡식의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농기구인 키를 머리에 씌워 소금을 받아 오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공동체가 아이 생활 습관을 바로잡아 주던 시절 지혜였지만, 키를 뒤집어쓴 채 이 집 저 집을 다녀야 했던 아이에게는 적잖이 창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키를 꼭 빼닮은 조개가 바로 키조개다. 껍데기 모양이 키와 흡사해 붙은 이름이다. 예부터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해 ‘서해부인’이라는 별칭도 가졌다. 키조개는 수심 20m 안팎의 펄과 모래가 섞인 바닥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남해안 득량만과 여자만, 서해안 보령·서천 근해가 대표 산지다. 7~8월이 산란기라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봄이 제철이다. 잠수부들이 바닷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하나씩 채취하기에, 여느 조개보다 사람의 땀과 수고가 더 많이 배어 있는 셈이다.
키조개의 진짜 별미는 조갯살보다 ‘관자’다. 패주(貝柱)라고도 부르는 이 근육은 껍데기를 여닫는 역할을 한다. 두툼한 살결과 쫄깃한 식감, 씹을수록 번지는 단맛 덕분에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버터에 살짝 구워 먹으면 여느 고급 레스토랑의 가리비 요리 못지않다. 전남 장흥에는 ‘장흥삼합’이 유명한데,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를 함께 구워 먹는다.
기자에게는 30여 년 전 남해의 봄 바다에서 맛본 키조개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언론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선배들과 떠난 남해 야유회 길. 잠수부가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 키조개를 즉석에서 손질해 내놓았다. 바닷바람과 짭조름한 내음, 갓 잡아낸 관자의 맛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키조개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돼 비싼 초밥 재료로 사용되곤 했다. 해양수산부가 6월의 수산물로 키조개를 선정했다는 소식에 옛 기억이 저절로 소환됐다. 지나간 시간을 건져 올리는 바다의 타임캡슐처럼 말이다. 남해의 봄날과 젊은 날의 추억.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