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거닐며 디자인을 읽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도시 감각/김지원

■도시 감각/김지원 ■도시 감각/김지원

잠깐 경험했던 영국 런던은 머물던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와서 우울했다. 버버리 코트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이 그래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런던이 지루하면 삶이 지루한 것이다.” 런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 쓴다는 이 말은 뜻밖이었다. 런던은 언뜻 수도 서울과 닮아 보인다. 시민을 위해 열린 공간으로 지정한 공원이 3000여 개. 런던 시민의 44%가 도보 5분 거리 안에 공원을 두고 산다니 많이 다른 모양이다.

<도시 감각>은 길에서부터 시작해 골목, 조리도구, 우산, 미술관과 축제까지 여러 방식으로 런던을 읽어낸다. 런던은 ‘작은 레이스 스카프를 걸친 18세기 할머니의 모습으로 온화하게 웃고 있다’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얼마나 이용할까 싶은 빨간 우체통 이야기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런던에서 우체통은 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자랑한다. 대부분은 미지정 문화재, 희귀한 우체통은 등재를 통해 지정문화재로 관리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1968년 9월에 런던의 우편환 사무소는 쥐를 잡기 위해 공식적으로 고양이들을 고용했다. 쥐가 갉아 먹는 바람에 파손된 우편물이 큰 문젯거리였기 때문이다. 주당 1실링으로 근무를 시작한 고양이들은 탁월한 성과를 냈고, 1873년 주당 6펜스로 임금이 인상됐다. 1950년부터 1964년까지 근무한 고양이 탑스는 사망한 뒤에 부고 기사가 나올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왜 런던일까? 런던은 세계 교통 표지판의 표준이 되었다. 100여 년 전 무질서하고 복잡했던 런던의 교통망에 통합적인 디자인 체계가 도입되었고, 언더그라운드 노선도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 지하철 노선도의 기원이 되었다. 런던 지하철 노선도는 사용 목적에 따라 디자인 체계를 변경해 사고방식의 전환까지 가져왔고, 현대 노선도의 근간이 되었다.

여행은 어떤 가이드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기억이 완전히 달라진다. 신뢰가는 현지 가이드를 따라 셜록 홈즈 펍에 들러 맥주 한잔하고, 라이프스타일 전문 브랜드 조셉조셉에서 신기한 조리 기구 구경에도 나선 느낌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출판사 펭귄북스 책 구경도 빠질 수 없다. 펭귄북스는 지금도 갱지에 인쇄한 문고판을 만든다. 영국인들은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지만 1830년에 문을 연 ‘제임스 스미스 앤 선스’라는 우산 가게는 꼭 가 봐야겠다. 이 모든 곳에 디자인이 잘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와의 사랑은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최고의 관심과 노력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라고 주장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승용차 대신 도보로 여행하며 밀도 높은 도시 틈새의 풍경을 즐기려는 마음, 온라인쇼핑몰과 지역 상점을 균형 있게 이용하려는 의식, 식재료를 가급적 동네 재래시장에서 구입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각자의 방식대로 쌓아가는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공간과의 상호 관계를 만들어 도시 속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게 만든다. 저자는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공부한 산업 디자이너다. 런던에 잠깐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이 책은 이렇듯 매일 마주하면서도 잊고 지낸 도시에서 사는 감각을 되살린다. 우리의 도시, 부산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김지원 지음/위즈덤하우스/332쪽/2만 3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