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의 산실, 묵향이 지켜본 80년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일보> 논설실 편액으로 읽는 정론직필의 궤적

‘드디어 ‘글의 감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부산일보>의 한 논설위원이 편집국 복귀 발령을 받자, SNS에 올린 소회에 묘한 여운이 남았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상사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기는 쉬워도, 써야만 하는 글은 어렵기 마련이다. 게다가 논설위원은 중립의 방패 뒤로 숨을 수도 없다. 그래서 세평에는 남다른 용기도 필요하고,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도 중요하다. 예로부터 기록하고 비평하는 일을 맡은 이들이 붓을 권력보다 무겁게 여긴 이유다.


<부산일보> 논설실에 걸린 편액 ‘無愧我心’(무괴아심).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부산일보> 논설실에 걸린 편액 ‘無愧我心’(무괴아심).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는 뜻이다.

야릇한 운명인지 몰라도 얼마 뒤 필자도 그 논설실로 자리를 옮겨 칼럼과 사설을 쓰게 됐다. 출근 첫날 벽면에 즐비한 편액(扁額)이 자아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낯설었던 기억은 4년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마치 느슨해진 수행자의 어깨를 내려치는 죽비처럼, 글 쓰는 마음가짐을 다잡으라는 호령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無愧我心(무괴아심)’ ‘直筆 啓民 報國(직필 계민 보국)’ ‘天下開口 萬和之機(천하개구 만화지기)’ ‘水深江靜(수심강정)’…. 먼지 쌓인 유묵에 둘러싸인 사무실에 앉아 있노라면 마치 ‘파놉티콘’의 감시탑 아래에 놓인 것과 진배없다는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오는 10일 <부산일보>는 창간 80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뚫어온 80년 동안 시대정신도, 논설실을 거쳐 간 논객도, 글을 쓰는 도구도 다 바뀌었지만 글 쓰는 자세를 일깨우는 서액(書額)의 묵향만큼은 변함없이 고고하다. 문인과 서예가들이 휘호로 뜻을 나누던 시절, 신문사에 전해진 붓글씨에는 정론을 바라는 성원과 당부가 담겼고, 그 바람은 다시 지면의 글과 호응하며 세상과 소통했을 터이다.

묵향과 논설실의 기풍을 잇는 첫 글귀는 ‘無愧我心(무괴아심)’이다. 논설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액자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세속의 분별을 넘어 불이(不二)의 세계로 들어서는 사찰의 불이문처럼, 논설실로 들어서는 이에게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살피라고 세워 놓은 문패처럼 느껴진다. 서예가가 휘호에 담고자 한 것은 문장의 기교보다 논객의 기개였을 것이다. 사설과 칼럼은 권력·자본과 태생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남을 향해 들었던 잣대를 먼저 자신에게 들이대라는 주문은 날카롭게 내려치는 죽비에 다름 아니다.

‘무괴아심’이 글을 쓰기 전의 마음가짐이라면, 그 글의 지향점은 ‘直筆 啓民 報國(직필 계민 보국)’이다.


<부산일보> 논설실의 편액 ‘直筆 啓民 報國(직필 계민 보국)’. 언론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명을 주문하고 있다. <부산일보> 논설실의 편액 ‘直筆 啓民 報國(직필 계민 보국)’. 언론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명을 주문하고 있다.

앞선 이의 발자취는 후대에 길잡이가 된다. 시대를 앞서간 선배 논설위원들의 활약은 후배들의 사표가 된다는 의미다. 초창기 <부산일보> 논설실에는 취재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 출신뿐만 아니라 시대를 읽는 안목과 문장으로 내로라하는 문인과 대학 교수들이 모여 논객의 시대를 풍미했다.

‘손풍산’이라는 필명으로 일제강점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참여했던 시인 손중행은 <부산일보> 논설실의 문학적·사회비판적 전통을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정치·사회 현안을 짧게 비평하는 1면 ‘동남풍’을 장기 연재해 시사 촌평의 틀을 확립하며 주필·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사하촌’에서 식민지 농촌의 수탈을 고발했던 요산 김정한은 부산대 국문과 교수 자리를 떠나 상임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다. 부산대 이종달 교수도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참여해 조봉암 사형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공안당국의 탄압에 직면했다.

논설위원의 활동은 원고지 안에 머물지도 않았다. 논설위원 박두석은 1958년 부산의 문인·평론가들과 영화평론가협회 결성을 주도했고, <부산일보> 주최의 부일영화상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서울에도 영화상이 없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영화도시 부산을 만든 문화적 씨앗이 그때 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산일보> 논설실에 걸린 편액 ‘天下開口 萬和之機(천하개구 만화지기)’. 사람들의 말문이 트여야 사회가 화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산일보> 논설실에 걸린 편액 ‘天下開口 萬和之機(천하개구 만화지기)’. 사람들의 말문이 트여야 사회가 화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언론 자유가 불편했던 권력에 부산일보는 눈엣가시였다. 박정희 유신 시대와 전두환 군사정부를 거치며 신문사에 시련이 찾아왔다. 5·16 군사정변 이후 언론 탄압으로 박두석은 구속되고 손중행, 김정한 등 논설실의 주축이 대거 해직됐다. 1980년 신군부가 강행한 언론 통폐합 때도 박두석(당시 논설주간) 등 논설위원들은 강제로 신문사를 떠나야 했다.

정론직필이 핍박과 수난을 피할 수 없는 불행한 시대가 있었지만 <부산일보>는 굴하지 않았다. ‘숙명적 여당지’라는 자조를 깨고 언론 민주화를 요구하는 행동에 나선 것이다. 1988년 7월 <부산일보>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제작을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던 때였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언론을 만들겠다는 외침은 기자들에 의한 편집국장 추천제를 탄생시켰고 이 제도는 이후 전국의 언론으로 확산하며 한국 언론의 이정표가 됐다.

붓글씨 ‘天下開口 萬和之機(천하개구 만화지기)’에는 그러한 간난신고 끝에 지켜 낸 언론 자유의 정신이 담겨 있다. 글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할 때 공동체가 화합할 길도 열린다는 의미다. 공론장을 통한 숙의 민주주의 원리라고 보면 되겠다. 이 유묵은 일반적인 휘호라기보다 투쟁을 응원하는 격문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좌우의 작은 글씨가 단서다. ‘민주 언론 대도 필승 기원’과 ‘부산 연제구 연산2동 남상길’. 지역의 독자가 언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보낸 것이다. 이 서예 작품은 시민의 입이 열리는 것이 공론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는 점에서 울림이 결코 작지 않다. <부산일보>는 독자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지면 제작에 반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독자 우선 정신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일보> 논설실 편액 ‘水深江靜(수심강정)’은 ‘깊은 물은 고요하다’는 의미다. <부산일보> 논설실 편액 ‘水深江靜(수심강정)’은 ‘깊은 물은 고요하다’는 의미다.

1966년 작품인 ‘水深江靜(수심강정)’은 무려 60년이나 묵었지만 고루하기는커녕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논설실에 가장 절실한 주문을 담고 있다.

얕은 물은 쉽게 출렁이고 큰 소리를 내지만, 깊은 물은 겉으로는 잔잔해 보여도 그 안에 큰 흐름과 힘을 품고 있다. 이는 말이 글을 압도하는 요즘 세상에 곱씹어야 할 교훈이다. 시쳇말로 ‘사법부 위에 유튜부’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대다. 하지만 목소리가 큰 쪽을 따르는 글은 오래 남지 않는다. 깊이 들여다보고 충분히 의심한 끝에 내놓은 글이라야 독자와 공명할 수 있다.


<부산일보> 논설주간실에 걸린 묵죽도. 먹으로 그린 대나무 왼쪽에 ‘山空養翠(산공양취)’가 쓰여 있다. ‘고요하고 맑은 산이 푸름을 기른다’는 의미다. <부산일보> 논설주간실에 걸린 묵죽도. 먹으로 그린 대나무 왼쪽에 ‘山空養翠(산공양취)’가 쓰여 있다. ‘고요하고 맑은 산이 푸름을 기른다’는 의미다.

논설실의 사령탑 논설주간실에 걸린 묵죽도에 적힌 ‘山空養翠(산공양취)’는 산속의 맑은 공기와 고요함 속에서 녹음이 짙어지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세상의 소음에서 한발 물러나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을 거칠 때 좋은 글이 나온다는 은유다. 현기증 나는 모바일의 속도와 SNS의 ‘밈’이 세상을 휩쓰는 시대이지만 적어도 논설실은 숙고와 절제를 미덕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부산일보> 논설실의 편액 ‘正論直筆(정론직필)’은 ‘바른 말을 굽히지 않고 쓴다’는 뜻이다. 저널리즘의 자세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글귀다. <부산일보> 논설실의 편액 ‘正論直筆(정론직필)’은 ‘바른 말을 굽히지 않고 쓴다’는 뜻이다. 저널리즘의 자세를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글귀다.

저널리즘이 보도와 논평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간다면 신문의 경향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쪽은 논평이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무엇을 문제로 보고 어떤 해법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신문의 논조가 갈린다. 특정 신문을 구독하는 행위에는 이런 뉴스 소비의 경향성이 작동한다.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를 골라 보여 주는 오늘날 추천 알고리즘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신문사에 대입해 말하자면 독자의 생각과 공명하는 것, 바로 논설실이 하는 일이다.

여든 해 동안 수많은 논객이 드나들었지만, 논설실의 다짐은 한 치도 변한 게 없다. 부끄럽지 않은 마음, 말문을 여는 언론, 그리고 올곧게 쓰는 글. 80년을 지나 100년을 지향하는 <부산일보>의 다짐이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편액들이 논설위원들의 실천을 지켜보고 있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