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자율’에 맡긴 원양 예인, 안전 대응까지 내맡겼다 [예인선 전복 침몰 사고]
항구 밖 선박 예인 필요한 상황
당국의 보고·승인 절차 빠진 채
민간 업체-선사 간 협의로 진행
적정성 검증은 ‘사각 지대’ 놓여
“대응력 강화·경보 시스템 필요”
지난 2일 부산 오륙도 인근에서 티엔에스캐처호가 침몰한 후 대체 투입된 예인선이 컨테이너선을 부산항 북항으로 예인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기관이 멈춘 대형 선박을 끌어 움직이는 원양 예인 작업은 사고 위험이 큰 고난도 작업이지만, 어떤 예인선을 몇 척 투입하고 어떻게 배치할지는 사실상 민간의 판단에 맡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티엔에스캐처호 침몰과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일률적인 규제를 늘리기보다 ‘데드십’ 예인에 특화한 교육과 매뉴얼, 위험 징후를 사전에 알려주는 경보 시스템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판단에 맡겨진 원양 예인
침몰한 티엔에스캐처호는 장거리 예인 작업에 투입되는 원양 예인선, 이른바 ‘오션 터그’다. 항내에서 선박의 접·이안을 돕는 일반 예선이 부두 주변에서 선체를 밀거나 당기는 역할을 한다. 반면 원양 예인선은 바지선이나 선체 블록, 기관 고장 선박 등 자력 운항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선박을 먼 거리까지 끄는 데 주로 투입된다.
작업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항내 예선은 조타실에서 유압장치 등을 이용해 예인줄 길이를 비교적 신속하게 조절할 수 있다. 반면 원양 예인선은 선수나 선미에 예인줄을 연결한 채 장시간 끌고 가는 방식이어서 줄 조정에 시간이 더 걸리고 일부 작업은 수동으로 이뤄진다. 돌발 상황에서 즉각 대응하는 데 상대적으로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기관이 고장 난 선박에 원양 예인이 필요하면 선사나 선박 대리점이 민간 예인업체와 직접 계약해 예인선을 수배한다. 어떤 예인선을 몇 척 투입할지, 선단을 어떻게 구성할지, 각 예인선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도 기본적으로 선사와 예인업체가 판단한다. 예인선들이 피예인선을 끌기에 충분한 마력과 제원을 갖췄는지, 선단 규모와 지휘 체계가 적절한지를 관할 당국에 사전에 보고하거나 승인을 받을 의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한국해양대 이윤석 해양경찰학부 교수는 “원양 예인 작업 ‘오션 토잉’은 대상 선박의 크기나 상태를 보고 예인업체가 적정한 규모를 평가한다”며 “법으로 일률적으로 정해 놓은 기준이라기보다 현장 상황에 맞춰 판단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와 부산해양수산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항만당국이 개별 원양 예인 작업마다 예인계획이나 위험성평가서를 제출받아 심사하거나 특정 예인선을 지정·승인하는 별도 절차는 없다. 피예인선 상태와 조류·풍속 등 해역 조건을 고려해 충분한 마력의 예인선을 배치해야 하지만, 이를 작업 전에 검증하고 선단 운영을 직접 관리·감독하는 공식 주체는 없는 셈이다.
다만 예인선 자체의 안전관리는 별도 제도에 따라 이뤄진다. 예인선은 해상교통안전법에 따른 안전관리체제를 마련해야 하고, 선박과 안전관리회사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운항과 작업 안전을 관리한다. 티엔에스캐처호 역시 별도의 안전관리회사가 관련 절차를 맡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일 오후 1시 30분께 부산 오륙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예인선 티엔에스캐처호의 모습이 예인하던 컨테이너 선박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부산해양경찰서 제공
■안전 공백 메울 교육·시스템
피예인선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고·관제 절차가 작동한다. 피예인선의 기관 고장이 해양사고에 해당하면 사고 선박은 선박 등록국인 기국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 이번에 예인되던 컨테이너선은 라이베리아 국적이어서 사고 신고도 원칙적으로 라이베리아를 상대로 이뤄지는 구조다.
사고 당시 기관 고장 컨테이너선에는 도선사도 승선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선사는 해양경찰 선박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며 선박 이동 상황을 공유하지만, VTS가 예인선 배치나 속력, 홋줄 운용 등 세부 작업 방식까지 관리하거나 지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현행 원양 예인 체계는 선박과 예인선 자체에 대한 안전관리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 전 선단 구성과 예인 방식의 적정성을 항만당국이 검증하는 구조는 아니다. 예인선 수배와 작업 방식 결정은 민간에 맡기고, 선박 안전관리체제와 기국 신고, VTS 교신 등 각 제도가 나뉘어 작동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티엔에스캐처호 침몰과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운항자가 위험을 사전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교육과 시스템을 함께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교육과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현장 대응 능력을 높여야 한다”며 “예인선과 상대 선박의 속력과 위치 등을 분석해 전복 가능성이 커지는 지점이 되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는 프로그램 개발도 방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 고장으로 자력 운항이 불가능한 ‘데드십’ 예인 상황에 맞춘 현장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작업은 빈도가 낮아 도선사들도 충분한 경험을 쌓기 어려운 만큼 재교육과 자체 매뉴얼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대학의 공길영 항해융합학부 교수는 “도선사들이 데드십 된 선박을 끌고 들어오는 경험은 많지 않다”며 “항만당국이 일일이 작업 방식을 규정하기보다는 이런 상황에 대한 재교육이나 도선사 자체 매뉴얼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