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로마의 소나무, 그 막강한 피날레
음악평론가
지금이야 하루 만에 비행기로 전 세계를 오갈 수 있지만, 과거에는 한 지역을 벗어나 활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을 사뿐히 뛰어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생의 3분의 1을 여행으로 보낸 모차르트가 그랬고, 전 유럽을 돌며 콘서트를 가진 파가니니와 리스트가 그랬다.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역시 같은 부류의 음악가였다.
1879년 7월 9일에 태어난 레스피기는 이탈리아 볼로냐 음악학교를 거친 뒤, 1900년부터 1903년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배웠다. 이듬해에는 베를린으로 건너가 막스 브루흐를 사사했다. 그는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연주에도 재능이 뛰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제국 오페라단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는 무젤리니 현악 4중주단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1913년부터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작곡과 교수가 되었으며, 1924년에는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작곡과 연주 활동에 주력하면서 유럽과 미국 등지를 여행했다.
레스피기-로마의소나무
행적으로만 보자면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라 할 수 있지만, 레스피기의 정서적 고향은 항상 이탈리아 로마였다. 그중에서도 ‘로마 3부작’은 레스피기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대표작이다. ‘로마의 분수’(1914~16), ‘로마의 소나무’(1923~24), ‘로마의 축제’(1928)로 이어지는 로마 시리즈는 색채적 관현악법과 감각적인 화성이 돋보이는 명곡들이다. 마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림스키-코르사코프, 드뷔시의 음악을 한데 모아놓은 듯하다. 레스피기는 후기 낭만주의 전통에 서 있는 음악가였지만, 중세 이탈리아의 그레고리안 성가 형식에도 큰 관심을 보여 ‘교회의 유리창’, ‘류트를 위한 옛 아리아와 무곡’처럼 고풍스러운 작품들도 남겼다.
레스피기의 이름을 가장 진하게 남긴 작품으로는 역시 ‘로마의 소나무(Pini di Roma)’를 꼽을 수 있다. 그가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교수 시절 작곡한 이 곡은 총 4부로 구성된 교향시이다. 제1부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 제2부 ‘카타콤베 부근의 소나무’, 제3부 ‘자니콜로의 소나무’, 제4부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로 이어지는데, 특히 4부에서 묘사되는 로마 군단의 행진 장면이 유명하다.
안개 낀 새벽, 저 멀리서 로마 군단이 다가오는 듯 저음 현악기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장면은 금관악기가 합세하면서 점점 선명해지고, 이어 오케스트라가 거대한 음향으로 확대된다. 곡의 길이는 5분 정도에 불과하지만, 듣고 있노라면 시간을 거슬러 그 대열에 끼어 함께 걷고 있는 듯한 판타지에 사로잡힌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노르웨이 축구 응원단에 섞여 함께 노를 젓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