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 바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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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관광·산업·풍경·경제가 동시에 만나는 곳
북항 재개발·해양관광 중심 가능성 모색
바다를 삶 속으로 끌어안는 도시가 돼야

부산의 모든 길은 바다로 향한다.

금정산과 백양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온천천과 동천을 지나 바다를 만난다. 낙동강은 삼각주를 이루며 남해로 스며들고, 산비탈을 따라 난 골목길은 어느새 항구와 시장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바다 앞에 닿는다. 그러나 바다는 길의 끝이 아니다.

부산항을 떠난 배는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향하고, 남중국해를 지나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으로 이어진다. 조선통신사는 그 길을 오갔다. 개항 이후에는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그 항로를 따라 들어왔다.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피란민이 이 항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오늘도 컨테이너선은 세계의 항만과 부산을 잇는다. 부산의 길은 육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다가 되고, 그 바다는 다시 세계로 이어진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에서 역사의 무대를 왕조나 국가보다 바다에서 읽어냈다. 그에게 지중해는 하나의 바다가 아니라 수많은 도시를 잇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바다는 영토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사람과 물자, 언어와 기술, 사상과 생활 방식이 오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도시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저마다의 문명을 쌓아갔다.

얼마 전 발간한 인문무크지 〈아크〉의 주제를 ‘바다’로 정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열여덟 명의 필자는 모두 바다를 이야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같은 바다를 바라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생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기억이었다. 또 다른 이에게는 떠난 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고, 생명의 기원을 사유하는 공간이었다. 같은 바다를 두고도 서로 다른 삶과 시간이 겹쳐 있었다.

도시도 그렇다. 같은 항구를 품고도 도시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갖는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를 건너온 상인과 학자들이 모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웠고, 베네치아는 동방과 서방을 잇는 항로 위에서 유리와 직물, 건축 기술을 받아들이며 독자적인 도시 문화를 만들었다. 암스테르담은 운하를 도시의 기반시설이자 공공공간으로 발전시키며 상업과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이 도시들이 남긴 것은 거대한 항만이 아니었다. 바다를 통해 축적된 시간이었다.

부산의 거리를 걸으면 도시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광안리와 해운대만이 아니다. 초량의 골목과 영도의 흰여울, 기장의 해안 길, 가덕도의 작은 포구까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필자의 사무실 근처인 자갈치시장에는 여행객과 상인이 뒤섞이고, 해 질 무렵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다양한 언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거리에서 만나는 도시의 풍경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다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들을 부산으로 이끌고 있다.

해 질 무렵 가덕도에서 거가대교와 부산 앞바다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본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항로가 되었다. 노을이 천천히 수평선 위로 번질 무렵 대만의 양밍해운 선박이 지나고, 프랑스 CMA CGM의 컨테이너선이 뒤를 이었다. 일본 ONE의 자주색 선박과 스위스 MSC의 초대형 선박도 같은 시간 같은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국적도, 선사도 달랐지만 모두 부산 앞바다에서 만났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부산의 미래는 이미 바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 풍경을 석양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기억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세계 물류가 교차하는 항로로 읽을 것이다. 건축을 하는 내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하나의 공간에서 관광과 산업, 풍경과 경제, 시민의 일상과 세계의 흐름이 동시에 만나는 장면이었다. 좋은 건축은 건물을 드러내기보다 이런 풍경을 오래 머물게 한다. 자연과 사람이, 그리고 도시와 바다가 서로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이 건축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다시 바다를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새롭게 출범한 시정은 해양 관련 산업과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북항 재개발과 해양관광을 중심으로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시장이 시정을 맡으면서 해양은 더 이상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도시의 핵심 의제로 자리 잡았다. 부산이 오랫동안 품어온 해양수도의 구상이 한층 속도를 낼 것이라 기대한다.

해양수도는 해양산업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 머무는 공간, 시민이 일상 속에서 바다를 누리는 수변, 오래된 항만의 기억과 새로운 도시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해양도시는 바다를 가진 도시가 아니라, 바다를 삶 속으로 끌어안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통해 세계를 만났다. 그 바다는 오늘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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