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연고자 사후 연결 프로젝트 부산시 전역으로 확대 검토
속보=무연고자의 사후 결정권을 강화해 사회적 단절을 막는 ‘연결 프로젝트’(부산일보 6월 2일 자 1면 보도 등)가 부산에서 확산한다. 부산시는 시 차원의 실행 지침을 마련하고, 남구청은 이달부터 사전 장례주관 지정 사업을 펼친다.
부산시는 올 하반기 중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주관자 사전 지정 등과 관련한 세부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부산시 배병철 사회복지국장은 “사회복지 전문가와 각 구군의 의견을 종합할 계획”이라며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장사법 개정을 통해 무연고 사망자는 생전 지속적인 친분 관계를 맺은 사람을 사전에 지정해 장례의식을 주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장례주관자에게 무연고자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체계가 없어 개정 법이 무용지물인 실정이다.
이에 부산일보와 동구청은 지난 7월 시범적으로 ‘해피엔딩 장례’ 사업을 시행했다. 생전에 장례주관자를 지정한 무연고자가 사망하면 등록된 장례주관자에게 고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무연고자의 사후결정권을 강화한 것이다.
이후 부산 곳곳에서 ‘연결’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관련 체계를 도입하는 분위기다. 부산 동구청에 이어 남구청도 이달부터 무연고자 사전 장례주관 지정·관리사업을 시행한다.
남구 관내 동 행정복지센터에 희망자가 방문해 사전 장례주관 지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하면, 이후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에 신청 내용을 등록해 관리한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미리 파악된 정보로 장례주관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등 무연고자의 생전 의사를 이행할 수 있게끔 대응할 계획이다.
남구청은 이번 사업을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망 형성 사업과 웰다잉 교육과도 연계한다.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 사업이 무연고 1인 가구의 생전 고립을 막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1인 가구의 장례주관 의사 관리는 사회적 가족 개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생전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한다.
남구청 문영희 복지정책과장은 "고독사 예방과 무연고자 지원을 연계해 고립 예방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과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함께 지원하면 무연고자가 사망한 이후 뒤늦게 발견되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4-09-02 [18:41]
-
연락망 쪽지 품고 다니던 무연고자 “연결 되니 이젠 안심”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다른 방법이 없으니 쪽지라도 써서 붙인 거죠. 죽고 나서 연락이 간다니 다행입니다.”
지난 24일 〈부산일보〉 취재진과 만난 부산 동구 쪽방 주민 이주형(가명·65) 씨는 휴대전화 케이스에 테이프로 붙인 작은 쪽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쪽지엔 자신의 이름과 10년간 알고 지낸 교회 장로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이 씨는 최근 동구청의 ‘해피엔딩 장례’ 사업에 참여해 장로가 장례 주관자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작성했다. 구청은 이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 장로에게 연락해 이 씨의 사망 사실을 알리고 장례 주관 의사를 묻게 된다.
이 씨는 비상연락망 쪽지뿐만 아니라 그동안 모은 장례비와 집 보증금 액수, 원하는 재산 처리방식 등 중요한 정보를 적어둔 종이를 가방에 넣어 항상 지니고 다녔다.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지 오래인 그는 죽음 이후 주변인에게 소식이 전달되지 않고,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사후를 걱정했다.
이 씨는 “10여 년 전 회사 부도로 빚이 생기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노숙 생활 끝에 지금은 혼자다”며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을지 모르고, 설령 갑자기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내 흔적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대비해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종이를 잘 들고 다니는 게 최선의 노력이었는데, 이젠 죽고 나서 지인들에게 연락 갈 방법이 생겨 다행이다”고 말했다.
■한 달 만에 25명 ‘연결’ 원했다
30일 부산 동구청에 따르면 이날까지 ‘해피엔딩 장례 지원사업’에 지역 주민 25명이 참여했다. 동 행정복지센터, 지역 복지관 등을 통해 가족관계가 단절된 주민들에게 홍보가 이뤄졌고, 원하는 주민들은 사전 장례의사 관리 신청서를 작성했다. 구청은 신청 목록을 관리하다, 이들이 사망 후 무연고자로 분류되면 신청서 내용을 토대로 장례 주관자나 유언 집행자, 비상연락망 등에 사망 소식을 알리게 된다.
쪽방 주민들끼리 서로를 장례 주관자로 하는 신청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과 서로 장례 주관자가 되어주기로 한 박정훈(가명·63) 씨는 “한 지붕 아래 지내는 가족 같은 사이다”며 “우리의 사이를 증명하는 서류가 생긴 것 같아 뿌듯하고, 마지막을 챙길 수 있게 돼 든든하다”고 말했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도 동구에 거주하는 피해자 박경제(69) 씨와 함께 구청을 찾아 신청서를 작성했다. 협의회는 무연고 사망이 우려되는 피해자의 장례를 챙기기 위해 공영장례 위임장을 작성하고 유언장을 준비해 왔다. 협의회는 이런 서류를 마련하더라도 사망 여부를 즉시 알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는데, 사전에 장례 의사를 남겨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며 안도했다. 협의회 손석주 대표는 “다른 구에 거주하는 피해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부산시 전체로 확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복지망 연계·공동체 회복 수반돼야
전문가는 무연고 사망이 우려되는 취약 계층의 생전 의사를 사전에 확인하는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런 시도가 정착하려면 기존 사회복지 체계와의 유기적 연계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또 지역사회 내 관계 회복과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 향상이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라대 초의수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앞으로 고독사와 무연고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제는 존엄한 죽음도 복지의 기준선 안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며 “공영장례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안에 무연고 사망 등에 관한 분과위원회를 둬 기존의 사례 관리와 연계해 생전 연결을 돕는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또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주민공동체 회복 노력도 필요하다”며 “관계 회복을 위한 사회적 처방이 이루어지려면, 서울시 고독사 지원센터처럼 실질적인 역할을 해내는 컨트롤 타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존엄사 교육 등 문화적 접근도 중요하다. 초 교수는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 탓에 사후를 미리 대비하자고 무작정 접근하면 거부감을 부를 수 있다”며 “유언 작성, 자서전 쓰기 등 교육 후 죽음에 대한 대비를 제안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청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사안인 만큼 복지 대상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생활지원사 등 기존 복지망과 연계해 제도를 안내하고 있다”며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장수 사진 촬영, 유언장 작성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고 앞으로 시범사업이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2024-07-30 [18:18]
-
죽음 일상화 영구 임대 고령 주민 "건강한 애도 문화 만들래요"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부산 한 영구 임대 아파트의 고령 주민들이 일상화되고 무감각해진 이웃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여러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에선 이웃을 애도하거나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생각할 만한 문화적 기반이 없는 상태다. 이런 공백에 무력감과 갈증을 느꼈던 주민들은 애도 문화 소모임을 꾸렸다.
부산 북구 동원종합사회복지관은 올 4월부터 영구 임대 아파트 주민 5명으로 구성된 애도 문화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같은 아파트 이웃이 죽고 사라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자신의 처지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에 충격을 받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다.
모임원 곽순귀(84) 씨는 지난해 가을 사망한 이웃의 집에 다른 이웃이 드나들며 생필품을 가져가는 것을 목격했다. 곽 씨는 “아직 망자의 혼이 남아 있으니 손대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며 “정말 허무했다”고 말했다. 정춘옥(78) 씨는 “여긴 가족이 있어도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며 “그래도 이웃이나 친구가 있을 텐데 죽고 나면 말 한마디 없이 떠난다. 자연스레 내 앞날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애도 문화에 갈증을 느낀 이유는 이들의 생활 반경에선 존엄한 죽음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의 공영장례가 진행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은 조문하러 가기도 어렵다. 자취를 감춘 이웃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그리고 망자의 집이 순식간에 치워지고 다른 이웃이 입주하는 쓸쓸한 풍경이 반복될 뿐이다. 일부 주민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기도 해 이웃의 사후를 챙기는 건 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소모임은 죽음이라는 화두를 직접적으로 던지기보다,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먼저 확산시키기로 했다. 올 5월 아파트에 무연고 사망자를 애도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도 했지만, 불길하다는 일부 주민의 반발이 있었다. 소모임은 접근 방식을 바꿔 올 하반기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존엄사에 대한 가치를 확산하는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동원종합사회복지관 박진숙 관장은 “많은 주민이 인생 말기 단계에 들어섰지만 죽음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행정적인 장례 지원과 별개로 주민 공동체의 건강한 애도 문화를 조성해 이웃의 지지 속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2024-07-30 [18:17]
-
한 달 넘게 치우지 못한 현수의 방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누군가 깊게 잠들었다 금방 일어난 듯 침대엔 이불이 구겨져있다. 깨끗하게 빨아 빨래건조대에 널어놓은 양말도 그대로. 유명 트로트 가수 사진이 프린트된 형광 분홍 응원봉과 죽기 일주일 전 다녀온 콘서트 티켓도 탁자 위에 그대로 올려져있다.
모든 게 지난달 현수가 병원에 입원한 시점에 멈춰있는 이곳. 5월 19일 3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강현수(가명)의 집이다.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현수의 원래 이름과 정확한 생년월일은 아무도 모른다. 현수는 8살 무렵 부산 한 백화점 앞에서 덩그러니 홀로 발견됐다.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았던 현수는 아동일시보호소로 옮겨지면서 주민등록이 이뤄졌다. 이후론 사회복지시설에서 쭉 자라왔다. '강현수' 세 글자도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지어준 이름이다.
발달장애가 있지만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현수는 시설에서 나와 살고자 하는 의욕이 아주 강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내가 번 돈으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집에서 두 발 뻗고 살고 싶었다.
2021년 12월, 20여 년 만에 생애 첫 독립 생활이 시작됐다. 일자리도 있는 현수는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자신 명의의 오피스텔도 마련했다.
호불호가 명확했던 현수는 같은 시설을 이용하던 다른 장애인들과도 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유독 사회복지사인 김지은만큼은 잘 따랐다. 둘은 부산시 장애인탈시설주거전환지원단 팀장과 탈시설장애인 관계로 만났다. 현수는 지원인력과 연락하는 것도 싫은 내색이었지만 지은에게만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둘이 성년후견 제도를 통해 가족 아닌 가족이 된 건 현수가 아프고 나서부터였다. 현수는 평소 신장이 좋지 않았고, 종종 지은이 병원 진료를 동행했다. 2023년 초 상태가 나빠지자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 입원을 하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했고, 그제서야 현수에게 법적 보호자가 될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현수는 성년후견인을 지정하면 어떻겠냐는 지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2023년 8월 지은은 현수의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됐고, 현수에게도 '보호자'라고 부를 수 있는 법정 대리인이 생겼다. 가족이 없는 현수에겐 사실상 가족이 생겨난 것과 다름 없었다.
“후견인이 되고 나서도 그냥 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하루는 이모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길래 그래도 된다고 했는데, 쑥쓰러웠는지 그냥 선생님 선생님 하더라구요.”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쳤다
5월 15일 밤 지은은 현수에게서 몸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야간이라 주변에 문을 연 병원이 없어 다음날 아침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게실염과 맹장염 소견을 받았다. 예상보다 염증은 심했다. 11일부터 통증이 시작됐지만 감각이 무딘 현수는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입원치료를 받다 다음 주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입원 5일차 현수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신장 손상을 유발하는 조영제 때문에 CT촬영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지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선 방법이 없었다. “CT라도 찍으려고 하던 중 현수 맥박이 빨라졌고 그러다 산소 공급이 안됐다고 했어요.” 그렇게 현수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성년후견인 자격을 앞세워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현수가 사망한 건 일요일이었지만, 후견인증명서를 월요일 아침에 떼어 오겠다고 병원 장례식장에 약속해 사망 당일 빈소가 차려졌다. 현수의 장례식엔 지은과 함께 다니던 교회 지인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갔다.
화장과 봉안도 성년후견인임을 알리고 허락을 받았다. 사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써야했지만, 현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지은이었기에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제가 직접 장례를 치러줬으니까 평소 지인들에게 부고를 보낼 수 있었어요. 교회 지인들이 와서 함께 기도를 해줬어요. 현수의 마지막은 쓸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생전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할 자격은 가족뿐
장례와 화장을 지은이 도맡아 해결해서 현수는 현재 법적으론 무연고 사망자가 아니다. 장사법에서는 연고자의 범위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를 포함하고 있고, 지은은 여기에 해당됐다.
그러나 장사법상 연고자로 지은이 가진 권한은 딱 장례와 화장까지였을 뿐, 사후 정리에선 그 어느 것도 쉽게 손댈 수 없었다. 지은은 연고자이자 성년후견인일 뿐, 현수의 상속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은 피후견인이 사망함과 동시에 종료되는 게 원칙이다.
집도 그가 병원에 입원했던 시점의 상태 그대로다. 이 집의 소유자는 현수. 만약 세입자였다면 집주인이라도 나서서 법적 절차를 밟는 등 정리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현수의 몸만 사라진 채 남아있는 집은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그냥 남겨진 상태로 존재한다.
“피후견인이 사망하고 나서부턴 성년후견 자격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집을 치우러 안에 들어가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주거침입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무것도 치우거나 손대지 않고 가만히 두고 있어요.”
가장 황당했던 건 통신사 콜센터에 현수 집에 연결된 인터넷을 해지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다. 현수의 가족이 아니라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하길래, “앞으로 어떻게 되냐”고 되물었더니 “요금이 계속 현수 명의의 계좌에서 빠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잔액이 없으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수가 사망한 지 38일째인 6월 25일, 현수의 통장에선 인터넷 요금 2만 7400원이 빠져나갔다.
현수의 흔적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를 통해 해결하는 것뿐이다. 지은이 개인으로 대응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 부산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가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등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지은은 최근 법원에 성년후견인 종료를 신청했다.
“사후 정리도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막막했어요. 가족에게서 버려졌다고 하더라도 시설 생활이 아닌 자립 생활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고, 또 돌봄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장례부터 살았던 터전 정리 등 마지막을 존엄하게 챙길 수 있도록 체계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가족 구성·돌봄 형태 다양화…실정 맞는 사후처리 체계 마련돼야
민법상 사후 재산처리 권한은 상속인에게만 두는 것으로 매우 엄격하고, 상속인이 아니라면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등 거쳐야 하는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 무연고 상태로 사망해 상속인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후견인처럼 법적 인정을 받은 사회적 가족이 있더라도 사후에 개입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망자가 생전에 맺은 사소한 계약을 해지하는 것에 있어서도, 법정후견인의 자격이 사후에 인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가족이 아닌 사람이 망자의 계약해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개별 상황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며 "계약에 대한 해지를 주장할 대리인의 범위를 딱 선을 그어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사후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등 절차가 복잡해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대부분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재산은 사실상 방치돼있다. 은행 관계자는 "예금주가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그 예금주가 무연고 사망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며 "사망한 고객의 예금에 대해선 상속인에게만 지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가 주로 사회복지시설 입소자 등에서 많이 발생되어 시설입소자의 재산가액이 500만 원 이하인 경우엔 간소화 처리 절차도 마련돼있다. 그러나 현수처럼 시설에서 나와 자립 생활을 이어간 경우 적용할 세부 지침은 없다.
법무법인 로운의 정가온 변호사는 "민법에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 위임이 종료된 법정 대리인이 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상속사무 처리규정이 있긴 하다"며 "이 조항을 근거로 재산 등을 처리하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후견인이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타깝지만 그동안 무연고 사망자의 상속재산이 많지 않다보니,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현수 씨의 사례처럼 복지시설에서 나와 재산을 취득하고 살다 사망하는 경우는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이미 2016년에 민법을 개정해 피후견의 사망 이후에도 후견인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뒀다"며 "피후견인이 후견인과 생전에 미리 상의해 유언 등을 남기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의 감독 하에 후견인이 상속 관련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2024-06-29 [09:04]
-
12월에 사망한 탓?…빈소도 없이 바로 화장 [연결: 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2023년 12월 1일 오전 8시. 활동지원사 영이가 찾은 동현(가명)의 집은 고요했다. 살짝 열린 화장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단말기에 활동지원 출근 기록을 입력하던 영이는 오늘따라 인사도 없이 유독 조용한 동현이 이상했다. 뭘 하는 건지 살피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려 화장실로 시선을 보냈다. 별다른 의심 없이 “뭐해?”라고 말하며 쳐다본 그곳엔 동현이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동현은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코 밑에 갖다 댄 손가락에선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119에 신고하자 구급대원은 금방 출동할 테니 그동안만이라도 심폐소생술을 해보라고 했다. 영이는 온 힘을 실어 어떻게든 동현을 똑바로 눕히려고 했지만 딱딱하게 굳은 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현의 피부엔 싸늘함이 감돌았다.
구급대원이, 경찰이, 국과수 관계자들이 동현의 집으로 왔다. 현관엔 사건 현장임을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가 붙었다.
치아가 없어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비빔국수를 만들어줬던 부엌도, 나란히 누워 시덥잖은 이야길 하며 오후를 보냈던 안방에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동현의 주검은 다대포의 한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은 자연사였다.
영이는 동현을 위해 호화롭지는 않지만, 소박한 빈소가 차려질 줄 알았다. 향을 피우고 술 한 잔 올려 고인의 사망 직전 반년간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 마지막 도리를 다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가족 같은 관계에도 처참한 이별
사망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한 영이는 쓰러진 동현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리면 트라우마처럼 눈물부터 차오른다. 영이가 동현을 마지막으로 본 건 사망 이틀 전인 11월 29일이었다.
“이모 힘들잖아. 한 달 푹 쉬고 와”
영이의 도움 없이는 몸이 불편해 밥 한 끼 차려 먹기 힘든 동현이었다. 오후 2시쯤 활동지원 시간이 끝나 집을 나서는 영이에게 동현은 한 달 정도 푹 쉬고 오라며 농담을 건넸다. 다음날 교육 일정이 잡혀 모레 다시 방문하기로 했는데, 하루 못 본다는 사실에 동현이 아쉬움이 녹아든 고마운 감정을 장난스럽게 건넨 것이다.
“‘밥은 어떻게 하게’라고 말했더니 ‘내가 차려 먹으면 되지’ 그러더라구요. 참 애틋하고 그래서 ‘동현 씨 사랑해 모레 봐’ 하면서 꼭 안아줬어요. 그게 마지막 인사였어요.”
동현은 선천적으로 폐, 위장 등 기능이 약했고 지적장애가 있었다. 사회와 단절된 복지시설에서 평생을 살다 불과 약 3년 전부터 홀로 생활을 시작했다.
영이가 동현을 맡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족과의 왕래가 없는 동현에게 매일 찾아오는 영이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동현의 집에선 다대포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창문 너머로 화물을 실은 배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하루에 대여섯 번은 볼 수 있었다. “배 간다 배 간다”고 하며 감탄하는 그를 위해 영이는 동현을 데리고 유람선을 타러 가기도 했다.
“길을 갈 땐 손 잡고 가고, 오후가 되면 머리를 맞대고 누워있기도 했어요. 그러니 가족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죠. 정말 가족과 다름없어요.”
장례조차 치러주지 못한 참담한 이별을 겪은 뒤 영이는 종종 마음속에 엉킨 밧줄이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먹먹함을 느낀다.
불자인 영이는 종종 절을 찾아 동현의 명복을 뒤늦게 빈다.
#빈소조차 없는 사람의 마지막을 쫓는 방법
영이가 소속된 사하두바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훈 팀장은 동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동현은 장례를 치러줄 가족이 없었다. 일단 장례식장에 도착한 다음, 시신이 옮겨지면 직원에게 생전 망자를 지원하던 복지기관 관계자라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다음부턴 장례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동현과 동현을 돌보던 복지시설 관계자의 사이는 '남'에 불과했다. 장례식장 직원은 “구청에서 연락이 갈 거다. 무연고 사망자는 국가가 장례비를 준다. 절차대로 한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주말이 지나 희망을 안고 구청에 문의하자, 공영장례를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동현은 운이 나빴다. 공영장례 예산은 11월 말에 소진됐는데 하필 12월 1일에 사망한 것이다.
동현에겐 그동안 받아온 수급비 등 남은 재산이 조금 있었다. 예산이 없다면 남은 재산이라도 활용하면 될 것 같았다. 재산의 일부를 활용해 장례를 치를 수는 없는지 구청에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장례식장 직원을 귀찮게 하며 화장 때만이라도 알려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겨우 받아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화장장에서라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직원은 연락을 깜빡한 모양이었다. 동현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지하 봉안당에 안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0여 일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락공원 홈페이지에 ‘박동현’ 이름을 검색해 보니, 이미 화장 이후 영락공원 지하 1층 무연고자실에 봉안까지 된 상태였다.
장례주관자라는 제도를 알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한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였다. 알고 보니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금품을 활용한 장례비 충당도 법적으론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숨이 끊긴 무연고자 앞에서 ‘남’으로만 규정된 이들이 마지막을 챙기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법적으로 보장된 장례비 활용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 주는 곳은 없었다.
최 팀장은 “동현의 사후 내내 장례식장이나 행정기관에선 ‘가족 관계가 아니면 어렵다’는 태도였다. 때론 ‘가족이 아닌데 굳이 해야 하느냐’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며 “사비를 모아 장례비를 마련하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빈소를 빌리는 단계부터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예산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른다면, 재산이라도 조금 사용해서 장례비에 쓸 수 없는지 구청에 문의했다. 그러나 명쾌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며 “앞으로 또 이런 사례가 나올까 봐 무연고사가 우려되는 센터 이용자 분들이 유언을 남기게 하는 방법도 고민했는데, 복지기관이 나서서 유서를 쓰게 한다는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우려돼 검토에 그쳤다”고 말했다.
#사문화된 무연고사망자 재산 장례비 충당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 일부를 장례에 활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취급된다. 법적 근거는 있지만 막대한 행정 비용이 투입되고, 뒤늦게라도 상속인이 나타났을 경우 법적 분쟁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장사법에선 ‘시장이 무연고 사망자가 남긴 유류금품을 무연고 시신 처리 비용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비용 충당을 위해선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유는 장사법에 따른 무연고자가 민법상 상속인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장사법에 따른 연고 수색 범위는 배우자와 직계가족, 형제자매인데, 민법상 상속권한은 4촌 이내의 방계혈족(고모, 삼촌, 조카 등)까지로 훨씬 넓다.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해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하더라도, 상속자로는 인정받을 수는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민법상 상속 등 다양한 법률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장사법만으로 유류금품 처리에 관한 세부 규정 등을 두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망자의 유류금품이 방치된 사이, 해마다 늘어나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 예산 확보도 만만찮다. 지난해 부산 지역 무연고 사망자는 619명인데, 이 중 415명이 공영장례를 지원받았다. 올해 예산은 3억여 원으로, 지난해 부족했던 예산과 동일하다.
부산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 재산과 관련한 절차를 밟으려면 몇 년씩 법원을 오가야 하는데 지자체마다 무연고자 담당은 1명 정도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며 “또 뒤늦게라도 상속인이 나타났을 때 법적 분쟁에 휘말릴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오로지 ‘장례 의식 주관’에 대해서만 사회적 관계의 개입 여지를 열어둔 데 따른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질적으로 장례사무를 처리할 권한이나 사망직후부터 장례 이후까지 연결되는 세세한 사후처리 단계에서 사회적 가족이 쉽게 배제된다는 것이다.
서울시공영장례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돌봄은 사회화되었는데 장례와 죽음에 관한 것은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다"며 "장사법의 연고 범위와 민법상 연고자 범위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혈연 중심의 법률을 관계 중심으로 재편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06-28 [09:09]
-
“세상이 준 상처로 죽음까지 쓸쓸하다면 억울하잖아요" [연결: 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박 모(가명) 씨가 연락이 두절된 건 지난해 한 주말 오후였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박 씨는 홀로 살면서 평소 정신질환 약을 복용한다. 피해생존자협의회 손석주 대표는 박 씨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다.
평소라면 귀찮은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을 그가, 20통 가까이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집 주소라도 알면 찾아갈텐데 전화번호와 동 이름만 알고 있는 탓에 손 대표는 무작정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박○○이고, △△동에 사는 사람 때문에 연락합니다. 지인인데요, 전화를 안 받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어 전화했습니다."
기억을 되짚어 대략적으로 그가 사는 동네를 설명했다. 경찰은 경찰대로 혹시나 사건이 있는지 확인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박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칠 노릇이었다. 혹시 무언가 잘못됐을까, 혹시 어딘가에서 홀로 외롭게 남아있는 건 아닐까. 나쁜 상상이 손 대표의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발만 동동 구르다 3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수면제를 먹고 깊게 잠들었다는 박 씨의 연락을 받고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아찔했던 해프닝 이후, 손 대표는 생사 확인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피해자들이 모두 사회에 나와 오롯한 가정을 꾸렸거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파도는 유독 피해생존자들에게 높게 굽이친 듯했다. 어릴 적 겪은 충격적인 인권침해로 신체적, 정신적 상처가 깊게 팬 탓인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도 있다. 어렵게 가정을 꾸려도 오래가지 못해 다시 혼자가 되기도 한다.
만약 고독하게 마지막을 맞고도 늦게 발견된다면, 아무도 장례를 치르겠다고 나타나지 않아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면….
어릴 적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집단 수용소로 잡혀가 온갖 인권침해를 받고도 겨우 각자의 인생을 살아냈다. 사회의 일원이 되고 나서도 남들과 같은 대접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지인의 배웅도 없이 떠나가야 하는가. 울화가 치밀었다. 열악하게 살아왔다 한들, 마지막까지 그래선 안됐다.
“만약 또 누가 연락이 안 닿으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관공서에 수소문을 할 수밖에 없는지 막막한 걱정이 앞섭니다."
#유언으로 엮은 마지막 끈
협의회는 지난해부터 무연고 피해자의 장례와 재산 처리에 관한 생전 의사를 보장하기 위해 유언과 공영장례 위임장 작성을 돕고 있다. 손 대표를 포함해 현재까지 6명이 유언장을, 8명이 공영장례 위임장을 썼다.
유언집행자로 협의회로 지정한 유언에는 자신들의 재산을 활용해 공영장례를 치르고, 사망 후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 배상금을 받게 되었을 때, 무연고자라는 이유로 배상금마저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유언에 대한 검인은 공익사건을 전담하는 이주언 변호사가 맡았다.
이렇게 죽기 전 미리 유언이나 계약 형태로 서류를 마련해 사후를 약속할 수 있는 건, 지난해 개정된 장사법 덕분이다. 망자가 사망하기 전 본인이 서명한 문서나, 민법이 정하는 규정에 맞춘 유언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한다면 무연고 사망자라고 하더라도 장례의식 주관자를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유언과 함께 작성하는 공영장례 위임장은 장사법에서 제시한 '본인이 서명한 문서'의 명확한 서식이 없어, 임의로라도 만들어 작성하는 서류다. 일종의 이중 장치인 것이다.
손 대표는 홀로 지내는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가 있으면, 먼저 넌지시 의사를 물어본다. “‘형님 돌아가시고 나면 장례 치러줄 사람 있습니까'하면 없다고 해요. 그럼 ‘쓸쓸하게 가실 순 없지 않습니까. 전 형님 그렇게 보내기 싫습니다’고 이야기합니다. 배상금 등에 대해서도 국고로 환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알려드리면 대부분 흔쾌히 자신도 쓰겠다고 하세요.”
부산 지역에서만 확인된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는 140여 명. 최근 이 사건을 직권조사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확보한 소년의집 명부엔 영화숙에서 옮겨졌다는 600여 명의 기록이 확인됐다. 손 대표는 현재 피해생존자 중 최소 30명은 사망 후 무연고자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앞으로도 유언장과 위임장 작성을 위한 설득을 이어갈 계획이다.
# 매일 안부 확인하는 이유
유언까지 쓰며 사후를 약속하는 가느다란 끈을 엮었지만 진짜 난관은 서로의 생사 확인이다. 유언에 남긴 대로 사후를 챙기려면, 무연고사망자 시신 처리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구청에 가 시신에 대한 권한이나, 장례주관 의사를 주장해야 한다. 유언대로 이행하는 건 그 다음의 문제다.
이 지난한 과정을 시작이라도 하려면 사망소식을 최대한 빨리 알아채는 게 관건이다. 손 대표는 “사망 후 최소 24시간 안에 사망 사실을 알고, 유언장과 위임장을 챙겨 구청에 가야 어느 정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가 건넨 공책에는 피해자들의 이름과 사는 지역, 전화번호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피해자 중에서도 건강이 좋지 않거나, 홀로 사는 이들 30여 명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안부 전화를 건다. 혹시 생애 마지막 순간을 놓쳐 생전 의사대로 사후 정리를 못 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점점 나이가 들며 몸이 아픈 사람들이 늘면 모닝콜 담당자를 채용해 안부를 물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사후정리를 약속했지만, 법적으로 증명되는 관계로 묶여있지 않은 상황에선 연락을 자주 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사후 자기결정권 보장과 사회적 가족의 개입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행정의 역할이 필수라는 게 손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 행정은 ‘장례주관자 제도를 만들어놨으니 알아서 활용하시오’ 정도인데, 정말 사각지대를 해소할 의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무연고자와 이어진 현장 단체와 연계하면서, 개인정보에 접근이 수월한 행정기관이 통·반장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하면 더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4-06-27 [18:40]
-
30년 지기와 약혼자 있어도 무연고 사망자로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약혼자 있어도 무연고 사망 처리
보라색과 라벤더를 좋아했던, 웹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투병 중에도 밝고 친구들과 수다떨기 좋아했던, 옆집 할머니와도 싹싹하게 알고 지냈던, 한 고양이의 집사.
지난해 8월 부산 중구의 한 병원에서 자립청년 김새빛(가명) 씨는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성년이 된 후 보육원에서 나와 혼자 힘으로 거친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던 새빛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까지 병마와 싸웠지만 끝내 세상을 등졌다.
30년 지기 친구 주영(가명)과 약혼자 경훈(가명)은 새빛과의 이별이 머지 않았음을 어렴풋하게 가늠하곤 했다. 경훈은 타지에서 일하는 탓에 새빛을 매일 보러오진 못했지만, 주영은 사망 전날 밤에도 새빛을 찾았다.
그러나 막상 접한 그녀의 죽음은 한번에 꿀꺽 삼켜지는 슬픔이 아니었다. 친구와 연인 자격으론, 너무 이른 나이에 저버린 새빛의 마지막을 잘 매듭지어 줄 권한이 없었다. '남'으로만 규정될 뿐, 죽어서는 아무것도 해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
새빛의 짐을 챙겨가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엔 이미 공영장례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정 사진도 없는 빈소엔 새빛의 짐이 담긴 캐리어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허락된 추모의 시간은 고작 4시간. 그녀와의 숱한 추억을 되새기며 애도하기에는 너무나 짧았다.
억울했다. 새빛이 무연고 사망자임이 확인되고 공영장례 대상자로 분류된 뒤, 반나절만에 빈소가 차려지기까지 주영과 경훈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느 가족에게 그러듯 이들에게 장례나 장지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곳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 역할을 했지만, 무연고 사망이라는 행정절차 앞에선 그저 타인이었다. “새빛이 병이 심각해지기 전에 친구에게 미리 마지막을 부탁하고 (절차를) 안내 받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준비할 시간이 있었을텐데….” 후회하고 자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구나 무연고자 시신은 화장 후 부산영락공원 지하 무연고자실에 5년간 보관하다 산골 하는 것이 원칙. 남겨진 이들의 의사와 달리 이미 차려진 공영장례 빈소 앞에서 이후 장례절차를 주관하겠다고 주장하기에도 늦은 시점이었다. 가슴에 묻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듯 했다.
망연자실한 채 빈소에서 울고 있던 주영과 경훈은 우연히 공영장례 부산시민 조문단을 만났다. 부산시민 조문단은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이 외롭지 않도록 빈소를 다니며 공동으로 조문하는 단체이다. 이들의 사정을 접한 조문단의 도움으로 구청 담당자와 연락할 수 있었고, 유골만이라도 무연고 사망 처리 되지 않게 해달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안타까운 사연을 알아본 구청 담당자의 이해 덕분에 새빛의 유골함은 다른 봉안당에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새빛을 온전하게 추모하기 위해 도움을 받은 건, 병원에서의 보호자 자격도, 지자체의 연고 수색 과정도 아니었다. 남겨진 이들이 부여잡은 건 공영장례 제도를 잘 아는 한 시민단체와의 우연한 만남과 구청 담당자의 양해였다.
#약한 고리로 연결된 사회적 가족
새빛과 지인의 사연은 부산시민 조문단으로 봉안 과정에 도움을 줬던 부산반빈곤센터 최고운 대표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됐다. 새빛의 죽음은 무연고자의 사후가 사회적 가족과 손쉽게 단절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가족의 장례주관 길이 열렸지만, 연고 중심의 사후처리 과정에서 '약한 고리'인 이들의 관계는 우연과 양해가 겹치지 않는다면 쉽게 배제되고 만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와 생전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친분 관계를 맺은 사람이나, 망자가 생전에 유언 등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면 장례를 주관할 수 있다. 장례주관자로 지정되면 장례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봉안 방식까지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장례주관 신청 주체인 '친분 관계를 맺은 사람'은 사망 소식을 제때 접하고 무연고 시신처리 절차가 시작되기 전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빈소가 차려지기 전에 사망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사후 신청제인 장례주관자 신청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행정기관이 사망자의 연고를 찾아 사망사실을 알리고, 시신인수 의사를 묻는 범위는 부모, 자녀, 배우자, 형제·자매, 부모 이외 직계 존속, 자녀 이외 직계 비속이다. 이들에게 연락한 후 무연고자임이 판단되면 바로 공영장례 절차가 시작된다.
새빛과 주영, 경훈의 관계는 공적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다. 지자체가 모든 무연고 사망자의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파악할 수도 없다. 주영과 경훈이 새빛의 사망소식을 듣자마자 구청에 달려가 장례주관을 주장할 수 있었다면 몰라도, 연고 수색이 순식간에 끝나고 빈소가 마련된 터라 개입의 여지는 낮았다.
사후에 단절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해서 생전에 미리 신청할 수도 없다. '무연고자'라는 명칭을 붙이는 시점은 일단 사람이 죽고난 뒤 연고 수색이 끝난 이후이기 때문이다. 장례주관자 신청서에 쓸 수 있는 건 오로지 신청자와 사망자에 대한 정보뿐이다.
공부상 확인되지 않는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과 망자간 관계를 확인할 수 없어 답답한 건 행정기관도 마찬가지다. 사망사실을 알고 신청자가 찾아오더라도 그의 주장만으로 진정성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 한 구청 관계자는 “사실혼 사이여도, 관계 증빙이 어렵다면 먼 친척이라도 설득해 오라고 안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복지기록에 관계의 흔적이 남아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가족이 찾아올 수 있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장례주관 자격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매우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사후 자기결정권·추모할 권리 보장을"
26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2019년 237명이던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23년 619명으로 기록됐다. 지난해의 경우 시신인수 거부에 따른 무연고 사망자는 444명, 공부상 연고가 확인되지 않은 데 따른 무연고 사망자는 175명이었다.
부산에서는 지난해부터 공영장례가 시작돼 무연고자 또한 존엄한 최후를 맞을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이 마련됐다. 그러나 여전한 연고 중심의 장례 문화가 고착화돼있어 지인과 이웃 등 사회적 가족이 개입할 빈틈은 매우 좁다.
1인 가구 증가와 무연사회 확장 속에 존엄한 죽음과 사후 자기결정권 보장의 해답은 사회적 관계에 있고, 그 관계가 개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경일 부산시 인권위원장은 “무연고자라 하더라도 친구나 이웃, 생활공동체를 함께한 동료는 있다”며 “무연고 사망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건 평생 고독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망자의 사망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지 않아 생전 관계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윤강인 대리는 “기존 공영장례에서 지자체가 시신 처리에 관한 사항을 장례업체에 맡겨 처리한 것을 명문화하던 수준에서, 장례주관 제도로 패러다임이 진일보한 것은 맞다”면서도 “공영장례 지원 대상자와 장례주관자의 의사가 우선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요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4-06-26 [19:00]
-
가족 대신했던 ‘사회적 끈’, 생애 끝까지 잇는다 [연결: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지난해 8월 부산 중구 한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던 김새빛(36·가명) 씨는 숨을 거둔 지 반나절 만에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30년 지기와 약혼자가 있었지만, 가족관계 서류상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의 장례는 지자체가 무연고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무연고자 유골은 부산영락공원 지하에 5년간 봉안 후 산골 처리가 원칙이다. 친구와 약혼자는 장례를 직접 치러주고, 별도로 봉안해 추모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 씨가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되기까지 가족이 아닌 이들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1인 가구와 비혼 증가, 저출생 등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가족관계 단절에 따른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연고자(가족) 중심의 장례·추모 제도와 문화가 고착화돼 있어, 지인과 이웃 등 사회적 가족이 개입할 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무연사회의 확장 속에 존엄한 죽음과 사후 자기결정권 보장의 해답을 사회적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3603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 수는 지난해 5415명으로 2년 새 50% 이상 늘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장례를 치러줄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더라도 시신 인수가 거부된 사망자를 뜻한다. 무연고 사망자는 70% 이상이 연고자가 있더라도 시신 인수가 거부된 경우이며, 취약 계층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계층이 다양화되고 있다. 이는 무연사가 우리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 곁의 죽음’임을 뜻한다.
김경일 부산시 인권위원장은 “무연고자라 하더라도 친구나 이웃, 생활공동체를 함께한 동료는 있다”며 “무연고 사망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건 평생 고독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망자를 추모할 수 있는 법·제도적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3월 개정된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연고자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어 온 친구나 이웃, 지인 등이 장례 주관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은 유명무실하다. 비혈연 장례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부재한 탓이다.
정부는 무연고자가 유언장, 자필서명서 등의 방법으로 지인, 친구 등을 장례 주관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지침을 두고 있지만, 이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무연고자가 사망했을 경우 연고자가 아닌 사람은 사망 사실을 통보받거나 알지 못하는 구조이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부산 지역 무연고 사망자 619명 중 사회적 가족이 장례 주관자로 지정된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공부에 등재되지 않은 사실상의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부산일보〉는 한 달여간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무연고자와 무연고 사망자들의 지인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실과 괴리된 현 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찾아 분석했다. 나아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부산 동구청과 비혈연 장례 확산과 사후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 구축을 시도한다.
※〈부산일보〉는 무연고 사망자의 쓸쓸한 사후를 경험했거나, 무연고 사망 처리를 원치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온라인 전용 콘텐츠로 연재합니다. 부산닷컴과 모바일에서 온라인 전용 ‘연결 : 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기획 보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4-06-26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