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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내 말에 책임지는 정치”
영화 ‘링컨’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대통령의 위엄보다 자신의 뜻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이었다. 영화는 남북전쟁 막바지,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13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는 링컨의 모습을 그린다. 그는 정치적으로 안전한 길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법과 제도로 완성하는 길을 택한다.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됐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정치인은 자신이 한 말에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정치를 하면서 이 질문을 자주 하게 됐다. 처음부터 정치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부산으로 내려왔고, 우연한 기회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국회에서 일했고 시의원이 됐다.
정치인이 된 뒤에는 말과 결정의 무게가 달라졌다. 내가 한 말과 선택이 시민의 삶과 지역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정책대학원에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공부하면서 지역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왔다. 정치인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자리와 권한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권한을 갖는 것이지, 권한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는 많은 말을 한다. 공약을 이야기하고 시민에게 약속한다. 하지만 정치적 레토릭만큼 중요한 것은 그 말에 어떤 책임을 지느냐라고 생각한다. 모든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생기고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왜 지키지 못했는지 설명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정치에서 남기고 싶은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리보다 일을 선택하고,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한 말에 끝까지 책임지는 것. 언젠가 정치에서 물러나는 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적어도 내 말에 책임지는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송우현 부산시의회 행정문화위원장
2026-09-2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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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한참 뒤에라도 닿을 어떤 마음
“저 필름들을 전부 선물로 줄게. 대신 여기 들어오면 안 돼. 필름은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신부의 검열로 잘려 나간 필름을 탐내는 어린 토토에게 건네는 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토토는 영사실 문턱을 자꾸 넘어오려 하고, 그런 토토에게 화재에 취약한 영사실만은 들어와선 안 된다며 돌려세우는 둘 사이의 협정이다.
시간이 흘러 토토가 청년이 되자 알프레도는 더 큰 곳에서 살라며 그를 로마로 떠민다. 한동안 고향에 돌아오지도, 편지를 쓰지도 말라는 알프레도의 말대로 토토는 고향을 뒤로하고 로마에서 영화감독으로 성공한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도, 성공을 거둔 뒤에도 토토는 돌아오지 않는다.
30여 년이 흐르고 끝내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은 알프레도의 부고이다. 돌아온 고향 땅에서 한때는 토토에게 전부였던 극장 ‘시네마 천국’은 이제 TV와 비디오에 밀려 문을 닫은 지 오래고, 헐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장례가 끝나고 알프레도가 유품으로 남긴 필름 한 통을 받은 토토는 자신의 시사실로 돌아와 홀로 그 필름을 돌려 본다. 오래전 잘려 나간 키스 장면 조각조각이 잇달아 스크린에 흐르고, 토토의 얼굴에는 미소와 눈물이 교차한다.
검열로 한데 모인 키스 장면들은 알프레도의 손을 거쳐 토토를 위한 한 편의 영화가 되었다. 스크린 속 사람들은 저마다의 연인에게 사랑을 전하고, 그 장면들을 이어 붙인 알프레도의 마음도 토토를 향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토토를 위해 남겨둔 이 필름은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작별 인사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를 달래는 말처럼 들렸던 초반부 한마디가 마지막에 이르러 사랑을 담은 약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이 장면 앞에서는 관객인 나도 토토 옆자리에 앉아 함께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든다.
어떤 마음은 한참을 돌고 돌아 겨우 닿곤 한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것들도 누군가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뜻을 알게 된 말이나, 뒤늦게 고마워지는 다정함처럼, 나도 그런 마음을 남길 수 있을까. 알프레도가 필름 조각을 이어 붙였듯,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과 마음을 조금씩 모아 두고 싶다. 한참 뒤에라도 닿을 누군가를 위해. 설재원 월간 〈쿨투라〉 편집장
2026-09-2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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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AI가 만들 수 없는 온기와 감동
그 물건이 나에게 전해진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 후였다. 어머니께서는 빛바랜 한지 두루마리를 건네주시며 앞으로의 보관과 관리를 맡기셨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2m 남짓한 종이. 그 위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진솔한 글. 그리고 “西紀 一九六五年 五月 二日”. 지금은 하늘로 가신 나의 아버지와 살아계신 어머니가 백년가약을 맺은 날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가족들이 짐을 정리하다 처음 보는 상자 안에서 발견하였다는 그 두루마리는 부모님 결혼식에서 친구분이 낭독한 축사였다. 딸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금지옥엽 키운 딸이 시집가던 날의 기쁨과 축복이 담긴 축하문을 평생 소중한 보물처럼 보관해 오셨던 것이다.
신랑 신부에 대한 소개와 덕담으로 시작한 축사는, ‘스위트 홈과 희망의 유토피아를 향해 힘차게 항해하라’는 웅장한 분위기로 이어지다가 ‘천하의 신들과 더불어’ 축복을 빌며 마무리되었다.
60년 넘는 세월, 두 분은 이 친구의 바람대로 잘 살아오셨을까? 늘 엄숙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21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어느덧 여든을 넘긴 어머니는 무슨 다짐으로 그 세월을 헤쳐 오셨을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다. 나는 부모님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그 글을 상자에 고이 담아 소중하게 보관해오고 있다. 켜켜이 쌓인 근심을 지우고 우울한 여백을 채우고 싶을 때, 나는 이 축사를 꺼내어 읽는다.
AI가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2m 한지에 꾹꾹 눌러 쓴 아날로그의 가치. 기술이 채울 수 없는 온기와 감동이 종이 위에 살아있다. 칼 세이건이 말한 광활한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에서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룬 것은 숭고한 기적이다. 노사연의 노래 가사처럼 부모님이 함께 하신 세월은 서로를 보듬으며 ‘조금씩 익어가는’ 과정이었으리라. 불교의 가르침처럼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그저 먼 길을 잠시 여행 떠나신 것일 뿐, 언젠가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날 터이다.
최근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다시 읽으며, 내가 돌아가야 할 ‘집’의 의미를 생각한다. 젊은 부모님의 모습과 외할아버지의 사랑, 우리 가족이 걸어온 시간이 스며 있는 이 축하문이 나에겐 ‘집’이다. 가족의 고마움을 일깨우며 나의 역사와 흔적을 되짚어 보게 하는 영원한 내 인생의 원픽이다.
김성희 부산경찰청장
2026-09-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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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씨를 뿌리며 살고 있나 [내 인생의 원픽]
오래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이후,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누구라도 고단한 인생길에서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나무로 살고 싶어졌다.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큰 나무로 자라 열매 맺고 그늘이 되어줄 여러분’이라는 문구와 함께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그랬듯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거센 파도, 비바람에 흔들리겠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그들이 키운 나무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그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동시성의 원리일까.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감독 진재운)를 보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황무지가 된 낯설고 먼 니카라과 땅에서 100만 그루 나무를 심으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88세 이지수 박사의 감동적인 실화. 우리나라 마지막 공주였던 그는 기품 있었고, 매력적이었다. ‘순이’라는 백마를 타고 그가 심어 놓은 80여만 그루의 무성하고 푸른 숲을 돌아보는 모습에, 나는 초인(위버멘쉬)을 떠올렸다. 두꺼비, 말, 뱀, 나무 모두가 그의 친구다. 따뜻한 눈빛, 사랑 가득한 손길로 차별 없이 말을 건네고 어루만지는 그를 보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아아!’ ‘세상에!’ ‘오오!’를 연발했다. 영화는 자연, 생태 환경보호를 넘어서는, ‘삶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주식, 집값, AI, 진학, 취업 이야기로 산란한 현실, 눈앞의 성과, 효율과 속도로 숨 막히는 세상을 못마땅해하면서도 한편 귀를 쫑긋 세우는 내 모습을 들켜버린 듯해 눈을 감기도 했다. 이런 영화를 만든 진재운 감독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황량하고 아득한 니카라과 땅에서, 한없이 주기만 하는 자연에게 미안해하며, 다음 세대에게 생명을 살리는 산소를 공급하고자 묵묵히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그녀. 누구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않는 무명으로 살고자 하는 그녀. “나는 불행하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녀, 이지수 박사.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만의 숲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내일을 다시 푸르게 가꾸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나무의 노래’를 건네고 싶다. 나는 오늘 어떤 씨를 뿌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뿌리고 키운 나무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 나의 나무도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래, 그러자.
이미선 이미선진로설계연구소 대표(전 부산시교육청 교육연수원장)
2026-08-2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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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 [내 인생의 원픽]
1989년 교단에 들어선 후, 나는 줄곧 교육 현장에 있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학교를 경영하거나, 교육정책을 만들고 대학입학제도를 고민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더 오래 붙들고 씨름한 질문은 ‘어떻게 배우며 살아야 하는가’일 것이다. 여기에 가장 깊은 답을 건네준 책이 최재천 교수의 ‘최재천의 공부-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다. 이 책은 나에게 공부법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말해 주었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다. 교사는 학생을 많이 가르칠수록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좋은 교사가 된다. 한 아이의 성적보다 표정을 읽게 되고,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교육은 시작된다. 이해는 관심을 낳고, 관심은 신뢰를 만들며, 신뢰는 결국 사랑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책은 공부가 시험 준비가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 말한다. 공부는 경쟁이 아니라 성장이고, 비교가 아니라 성찰이다. 교육행정에 몸담으면서도 가장 큰 아쉬움은 한 번의 시험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일이 과연 교육다운가 하는 문제였다. 사람의 성장은 계절처럼 천천히 찾아오는데, 우리는 너무 자주 하루의 결과만으로 인생을 재단하고 있다. 긴 시간을 두고 관찰하며 평가해야 한다는 최재천 교수의 글을 읽으며 수많은 제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늦게 피는 꽃도 있었고, 실패를 딛고 누구보다 크게 성장한 아이들도 있었다. 잠재력은 숫자 몇 개로 설명될 수는 없으며, 교육은 앞에서 끌어당기는 일이 아니라, 옆에서 기다려 주는 일이고, 사람의 성장은 하루가 아니라 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짐을 그 아이들이 증명하였다. 최재천 교수는 침팬지 어미의 모습을 말했다. 새끼가 서툴게 열매를 깨다가 여러 번 실패해도 어미는 대신 깨 주지 않는다. 조금 더 오래 지켜보고, 조금 더 기다린다. 마침내 새끼가 스스로 열매를 깨는 순간, 그 배움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기 것이 된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우리 교육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해서 가르치는 것일까, 아니면 조급해서 가르치는 것일까. 정답을 빨리 알려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정년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 세상을 더 이해하고, 사람을 더 품기 위해서.
권혁제 부산시교육청 교육국장
2026-08-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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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현재 있게 한 희생 [내 인생의 원픽]
날씨가 좋고 시간이 나면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부산 사람들이 제법 많은 곳이기도 하다. 바로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이다. 세계 유일의 UN(United Nations·이하 유엔) 기념 묘지이며,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매년 해외에서 수많은 전사자의 가족들이 부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1959년에 유엔과 대한민국 정부 간의 협정으로 유엔 기념 묘지로 시작하였고, 2001년 유엔기념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2007년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유엔을 통해 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총 22개국이 연합군으로 참전했다. 현재까지 유엔군의 이름으로 파병한 유일한 사례다. 총 파병자 수는 198만 명이며, 전사자는 4만 명이 넘고, 유엔기념공원에 안치된 안장자 수는 2300여 명이다.
이곳에 갈 때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분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매일의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며, 전 세계에 K컬처를 알리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으로부터 73년. 유엔이 다시 부산을 찾았다. 부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도움을 받던 대한민국에서 전 세계에 도움을 주는 의미 있는 여정이 시작됐다. 위원회 홍보대사인 지드래곤이 설립한 저스피스재단은 전쟁과 기후변화로 파괴되고 사라져가는 세계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을 부산에서 시작했다. 1년간 활동으로 내년 7월 위원회 개최지인 튀르키예에서 기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한민국관에서 운영한 저스피스재단의 캠페인 홍보관에는 부산 대학생들과 스타트업들도 함께했다. 부산 대표 멘토링 커뮤니티 모두의 캠퍼스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부산 스타트업 모두싸인이 온라인 지지서명 솔루션을 제공했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을 이겨낸 평화와 자유의 상징이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공간으로 남겨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도 부산의 청년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부산 스타트업들에게는 세계 무대에서 공존의 가치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유엔군이 잠든 도시 부산에서, 부산 청년들의 손에서 세계를 지키는 여정이 2026년 시작되고 있다. 강석호 마이스부산 대표
2026-08-0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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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 빛나는 긍정의 힘 [내 인생의 원픽]
어릴 적부터 농구와 사랑에 빠지면서도 좌절과 절망, 고통의 시간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왜 이렇게 힘든 농구를 시작했을까” 하는 근원적인 의문과 회의가 들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화려한 대학 시절을 보내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프로의 세계는 녹록지 않았다. 잘해야겠다는 중압감은 몰려왔고 국가대표로 뛰면서 가슴에 단 태극마크는 더욱 날 옥죄어 왔다.
그런 상황에서 행운처럼 찾아 온 영화가 있었다.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사진·Life Is Beautiful, 1999)이다. 이 영화는 단란했던 한 가족이 절망이 가득한 전쟁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갖고 이겨내는가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귀도’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끌려간 나치수용소에서 어린 아들이 겪을 공포를 줄이기 위해 모든 상황이 게임이라고 설명하고, 세상은 언제나 아름다운 곳이란 믿음을 심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잃지 않는 희망과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위기 앞에서의 단단한 유연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해주었다. 나치수용소의 극단적인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희망을 만들어낸 귀도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위기의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의 여유’를 가르쳐 주었다.
마음의 여유는 위기와 절망 속에서 힘을 발휘했다. 선수 때는 경기를 이끄는 가드의 입장에서, 지금은 지도자의 자리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경기가 벌어지는 코트 위에서 겪는 거센 위기나 치열한 승부의 압박 속에서, 선수들에게 중압감을 얹기보다는 유연하고 유쾌한 태도로 희망적 분위기를 갖게 했다. 이 같은 긍정의 리더십을 심어준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이 영화는 사람을 향한 배려와 신뢰의 의미도 알게 했다. 장벽과 공포마저 뛰어넘어 음악과 목소리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했던 영화 속 귀도의 모습은 진심을 다해 마음을 건네는 소통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감독이자 한 인간으로서 권위보다는 진정성 있는 배려로 사람을 대하는 가치관을 안겨준 것이다. 선수단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단순한 지시와 명령이 아닌,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교감을 바탕으로 팀을 하나로 묶어내는 조화로운 관계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이 영화 덕분이다. 이상민 부산KCC 감독
2026-07-2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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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무대를 짓고 올리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수많은 작품을 마주해왔다. 때로는 화려한 기술에 감탄하고, 때로는 치밀한 서사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기는 작품은 따로 있다. 나에게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만난 김민정 작, 윤시중 연출의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하다.
2019년 초연으로 처음 이 작품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광주에서 네 번, 그리고 멀리 에든버러의 작은 소극장에서 한 번, 총 다섯 번을 관람했다. 매년 신록이 푸르러지는 5월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에서 광주로 향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찾았던 그 길을, 이제는 이 경이로운 경험을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소중한 이들의 손을 잡고 동행한다. 나에게 이 여정은 단순한 관극을 넘어, 그날의 영령들을 위로하며 나만의 ‘제(祭)’를 지내러 가는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처음 무대를 마주했을 때의 미학적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거대한 블랙박스 극장 안에서, 윤시중 연출은 붓과 분필 하나로 무대라는 3차원 공간을 거대한 역사적 캔버스로 바꾸는 파격을 선보인다. 막과 장의 구분도 없이, 여백의 미와 역동적인 움직임만으로 순식간에 수십 년의 시간을 교차하며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려내는 순간은 연극적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정점을 보여준다.
작품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인 전남도청, 그리고 그 건물의 벽을 하얗게 칠하던 칠장이 노인의 기억을 따라간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며 지우려 하는 아버지와 "사라지지 않도록 그리겠다"며 군부독재에 맞서 도청 벽에 글을 새기는 아들. 그리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 위험한 문장들을 필사적으로 다시 하얗게 칠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슬픈 붓질과 거친 숨소리는 객석으로 고스란히 걸어 들어왔다.
전남도청 철거라는 현실 앞에 괴로워하는 노인의 기억을 통해 2005년, 1980년, 1950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책장 속 활자나 박제된 지식, 그리고 영상 콘텐츠로만 알고 있던 ‘그날의 아픔’이 내 안으로 파고들았다. 점차 아들과 아내를 빼앗아가 버린 잔인한 역사 속에서, 평범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부서지고 또 버텨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처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매번 객석을 나설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밀려왔고, 역설적이게도 이 공연을 반복해 보는 행위는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공연 제작자의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늘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도로 발달하는 기술이 무대를 채워가는 이 시대에 ‘과연 연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징한 해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짓과 거친 붓질, 공간의 유기적 활용이 만들어내는 아날로그적인 극장의 공기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온몸으로 웅변한다.
이따금 창작과 제작의 현장에서 방향을 잃고 지칠 때, 아들의 흔적을 지켜내기 위해, 또 그날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붓을 들던 주인공의 실루엣을 떠올린다. 무대 예술의 본질과 시대적 책무를 일지 않으려 분투할 때마다 꺼내어 보는 나침반 같은 작품. 캔버스를 가득 채우던 먹의 향을 되짚는 순간, 무대를 향한 나의 심장 박동도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내 인생의 최애이자 ‘원픽’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문섭·예술은공유다 공연프로듀서
2026-07-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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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탁월한 사유의 시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소중함
살다 보면 많은 책을 만난다. 어떤 책은 읽고 덮는 순간 잊히고, 어떤 책은 오래도록 생각의 흔적을 남긴다.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내게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들게 된 질문은 ‘나는 과연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한다.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읽고, 경험을 통해 익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철학자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단순한 문장이 내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익숙한 관습과 통념, 이미 정해진 기준 속에서 안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언제나 기존의 답을 의심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독립’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생각의 독립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이다. 결국 한 사람의 품격도, 사회의 성숙도도 생각의 독립성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나이가 들수록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던 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변화는 빨라진다. 과거의 경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아진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화려한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말이다.
책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문장이 있다. ‘생각의 높이 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만큼 성장한다.
익숙한 답보다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시대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많은 분들께 권하고 싶다. BNK금융지주 빈대인 회장
2026-06-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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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 [내 인생의 원픽]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한센병 요양원에 사는 할머니와 도라야키 가게 주인, 그리고 한 소녀의 이야기다. 할머니가 팥과 대화하듯 정성껏 앙금을 만드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 영화를 보는데 30년 전 소록도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이라 녹동에 방을 잡고 배를 타고 들어갔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할아버지와 집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를 촬영하게 되었다. 가족사진을 보여주시겠다고 해서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앨범 위로 손가락이 사라진 뭉툭한 할머니의 손을 정신없이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박카스와 떡을 내왔다.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네요.” 나는 먹지 못했다.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 후에 중증 환자들이 수용된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적막한 복도 끝의 세면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쪽 팔은 손목만 남아 있었고 다른 손에는 냄비가 들려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그제야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 눈은 희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그날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우호적인 말들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병에 옮을까 싶어서 할머니가 건넨 음식조차 거절했던 내가, 카메라를 드는 데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소록도의 가장 깊고 외진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보았다.
영화 후반부에 가게 주인과 소녀는 요양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나눈다. 나는 울었다. 내 안의 손상된 자기 환멸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함께 앉아 음식을 먹고,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사진은 그 시간의 기록일 뿐이다.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빚진 기분이 든다. 그 빚은 아직도 다 갚지 못했다.
박태희 사진가·안목출판사 대표
2026-06-07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