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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
무대를 짓고 올리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수많은 작품을 마주해왔다. 때로는 화려한 기술에 감탄하고, 때로는 치밀한 서사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기는 작품은 따로 있다. 나에게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만난 김민정 작, 윤시중 연출의 연극 ‘시간을 칠하는 사람’이 바로 그러하다.
2019년 초연으로 처음 이 작품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광주에서 네 번, 그리고 멀리 에든버러의 작은 소극장에서 한 번, 총 다섯 번을 관람했다. 매년 신록이 푸르러지는 5월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에서 광주로 향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찾았던 그 길을, 이제는 이 경이로운 경험을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소중한 이들의 손을 잡고 동행한다. 나에게 이 여정은 단순한 관극을 넘어, 그날의 영령들을 위로하며 나만의 ‘제(祭)’를 지내러 가는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처음 무대를 마주했을 때의 미학적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거대한 블랙박스 극장 안에서, 윤시중 연출은 붓과 분필 하나로 무대라는 3차원 공간을 거대한 역사적 캔버스로 바꾸는 파격을 선보인다. 막과 장의 구분도 없이, 여백의 미와 역동적인 움직임만으로 순식간에 수십 년의 시간을 교차하며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려내는 순간은 연극적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정점을 보여준다.
작품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인 전남도청, 그리고 그 건물의 벽을 하얗게 칠하던 칠장이 노인의 기억을 따라간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며 지우려 하는 아버지와 "사라지지 않도록 그리겠다"며 군부독재에 맞서 도청 벽에 글을 새기는 아들. 그리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 위험한 문장들을 필사적으로 다시 하얗게 칠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슬픈 붓질과 거친 숨소리는 객석으로 고스란히 걸어 들어왔다.
전남도청 철거라는 현실 앞에 괴로워하는 노인의 기억을 통해 2005년, 1980년, 1950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책장 속 활자나 박제된 지식, 그리고 영상 콘텐츠로만 알고 있던 ‘그날의 아픔’이 내 안으로 파고들았다. 점차 아들과 아내를 빼앗아가 버린 잔인한 역사 속에서, 평범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부서지고 또 버텨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처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매번 객석을 나설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밀려왔고, 역설적이게도 이 공연을 반복해 보는 행위는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공연 제작자의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늘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도로 발달하는 기술이 무대를 채워가는 이 시대에 ‘과연 연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징한 해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짓과 거친 붓질, 공간의 유기적 활용이 만들어내는 아날로그적인 극장의 공기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온몸으로 웅변한다.
이따금 창작과 제작의 현장에서 방향을 잃고 지칠 때, 아들의 흔적을 지켜내기 위해, 또 그날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붓을 들던 주인공의 실루엣을 떠올린다. 무대 예술의 본질과 시대적 책무를 일지 않으려 분투할 때마다 꺼내어 보는 나침반 같은 작품. 캔버스를 가득 채우던 먹의 향을 되짚는 순간, 무대를 향한 나의 심장 박동도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내 인생의 최애이자 ‘원픽’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문섭·예술은공유다 공연프로듀서
2026-07-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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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탁월한 사유의 시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소중함
살다 보면 많은 책을 만난다. 어떤 책은 읽고 덮는 순간 잊히고, 어떤 책은 오래도록 생각의 흔적을 남긴다.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내게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들게 된 질문은 ‘나는 과연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한다.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읽고, 경험을 통해 익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철학자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단순한 문장이 내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익숙한 관습과 통념, 이미 정해진 기준 속에서 안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언제나 기존의 답을 의심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독립’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생각의 독립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이다. 결국 한 사람의 품격도, 사회의 성숙도도 생각의 독립성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했다.
나이가 들수록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던 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변화는 빨라진다. 과거의 경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아진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화려한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말이다.
책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문장이 있다. ‘생각의 높이 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바라보는 만큼 성장한다.
익숙한 답보다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시대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많은 분들께 권하고 싶다. BNK금융지주 빈대인 회장
2026-06-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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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 [내 인생의 원픽]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한센병 요양원에 사는 할머니와 도라야키 가게 주인, 그리고 한 소녀의 이야기다. 할머니가 팥과 대화하듯 정성껏 앙금을 만드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 영화를 보는데 30년 전 소록도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이라 녹동에 방을 잡고 배를 타고 들어갔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할아버지와 집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를 촬영하게 되었다. 가족사진을 보여주시겠다고 해서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앨범 위로 손가락이 사라진 뭉툭한 할머니의 손을 정신없이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박카스와 떡을 내왔다.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네요.” 나는 먹지 못했다.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그 후에 중증 환자들이 수용된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적막한 복도 끝의 세면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쪽 팔은 손목만 남아 있었고 다른 손에는 냄비가 들려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그제야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 눈은 희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물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 고맙습니다.”
그날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우호적인 말들을 들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고맙습니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병에 옮을까 싶어서 할머니가 건넨 음식조차 거절했던 내가, 카메라를 드는 데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소록도의 가장 깊고 외진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보았다.
영화 후반부에 가게 주인과 소녀는 요양원을 찾아가 할머니와 함께 음식을 나눈다. 나는 울었다. 내 안의 손상된 자기 환멸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함께 앉아 음식을 먹고, 함께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사진은 그 시간의 기록일 뿐이다.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빚진 기분이 든다. 그 빚은 아직도 다 갚지 못했다.
박태희 사진가·안목출판사 대표
2026-06-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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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창의성의 극치로 제작된 뮤지컬 ‘라이온 킹’
대학 졸업 후 우연히 발을 들인 공연 현장에 어느덧 43년이 흘렀다. 콘서트, 테마파크, 뮤지컬 등 장르를 두루 넘나들며 기획·제작·운영을 거치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에게 감동이 된, 평생 공연 현장에 몸담게 만든 운명 같은 뮤지컬 ‘라이온 킹’을 떠올린다.
지금도 뮤지컬 공연 기획과 공연장 운영에 몸담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 세월 중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테마파크 공연에 쏟았다. 당시에 늘 고민하던 것은 독창적인 캐릭터 개발, 캐릭터 뮤지컬, 퍼레이드 등 파크의 공연 제작과 운영이었다. 그러던 중 2000년 뉴욕에서 말로만 듣던 뮤지컬 ‘라이온 킹’(The Lion King)을 관람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에는 테마파크 공연을 담당했고, 선진화된 테마파크인 디즈니 공연에 대한 동경과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을 때 접한 ‘라이온 킹’은 충격 그 자체였다. 완벽하게 표현된 각종 동·식물 캐릭터들, 창의력 넘치는 디자인, 상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트와 도구로 표현한 무대, 귀에 감기는 음악으로 어린아이가 된 듯 잠시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공연이 끝난 뒤 호텔로 돌아와서도 한참 그 여운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05년 초 국내 최초 뮤지컬 전용 극장 샤롯데씨어터 개관 작품 협의를 위해 뉴욕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Disney Theatrical Production)을 방문했다. 같은 건물에 있는 뉴 암스테르담 극장에서 디즈니 스태프의 안내로 백스테이지를 돌아보며 캐릭터, 세트, 대소도구 등을 직접 만져보고 작동해 보았다. 그 치밀한 디테일과 완성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후 ‘라이온 킹’은 2006년 개관한 서울 샤롯데씨어터의 개관작으로 1년간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2019년 4월 부산 드림씨어터의 개관작으로도 100회 이상 공연되며 역대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과 나의 표정은 2000년 첫 관람의 설렘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도 전 세계인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라이온 킹’. 넘치는 창의력을 무대 위의 현실로 표현하며 생명력 넘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창의력과 완성도가 높아야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공연 산업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30여 년 동안 온몸으로 증명해 오고 있다. 뛰어난 한국의 창작자들이 세계에서 활약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문화 콘텐츠를 꿈꾸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자극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작품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아직도 떠올리면 여전히 놀라움을 주는 작품 뮤지컬 ‘라이온 킹’은 무대가 지닌 본질인 감동과 창의성의 힘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감동을 전하기 위해 공연장을 지키고 있다.
2026-05-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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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피리 연주자로서 마주한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나는 피리 연주자다. 1990년 처음 피리를 잡은 이래 40년 가까이 피리를 불어왔다. 어린 시절 피아노로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까지 합치면 내 삶은 온통 음악이었다. 피리는 유난히 호흡이 중요한 악기다. 몸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숨을 좁은 관 속으로 밀어 넣어 긴 선율을 버텨내야 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숨’이라는 것을 특별히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숨 쉬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2019년 가을, 나의 당연했던 세계가 무너졌다. ‘부산시민의 날’ 축하 공연 리허설 직후 갑자기 폐가 닫히는 듯한 공포와 함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산소호흡기를 낀 채 대기실 바닥에 누워 있다가, 부축을 받아 겨우 연주를 끝내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천식’ 판정을 받았다.
그날 이후 나의 숨은 늘 ‘한뼘’ 정도에 머물렀다. 걷고 계단을 오르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뼘짜리 숨을 쥐어짜더라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연 전 기관지 확장 링거를 맞고, 식은땀을 흘리며 피리를 불던 고통스러운 날들이 몇 년간 이어졌다. 병원에선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급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오랜 천식으로 인한 저산소증은 부교감신경 교란, 심부전증, 장기 기능 약화와 면역 저하까지 불러왔다. 입원은 보름으로 길어졌다. 하루에도 수차례 피를 뽑고 링거 줄에 의지한 병원 생활에서 읽었던 책이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 전통을 지키려는 세밀화가들과 새로운 화풍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묘한 동질감을 주었다. 소설 속 화가들은 자신이 평생 믿어온 예술의 질서와 아름다움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선택까지 감내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지키려 한다. 그 처절한 고뇌와 집념은 이상하리만큼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보름간의 집중 치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섰을 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정상적으로 숨을 쉬고, 계단을 오른다는 것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다시 찾은 귀한 숨으로 한국 문화와 한국 음악 대학 강의를 재개했고, 지난 2월 미국 학회에 선정되어 단독 세션과 리사이틀을 마치고 돌아왔다. 현지 클래식 음악가들과 교감은 피리 소리가 가진 보편적인 울림과 세계적인 가능성을 확신하게 했고, 내가 연주자로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다시금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숨 막히던 시간 속에서 다시 숨 쉬고 다시 악기를 잡아야 할 이유를 조용히 일깨워준 고마운 책이다.
김지윤 소리숲 대표
2026-05-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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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존재의 간절함 증명해 낸 곡
사람의 인생에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나에게 그런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1980년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을 붙잡고 있던 시간이다. 당시 나는 작곡가를 꿈꾸고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었고 집에는 악기조차 없었다.
그러나 입시에서는 반드시 이 곡을 연주해야 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신문지 위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 놓았다. 소리 없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머릿속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 안에서, 나 혼자만의 베토벤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방식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절실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고, 그 곡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 음악을 향해 버텨낸 시간이었다.
그렇게 외워서 연주한 베토벤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연주에는 기술보다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결국 나는 음악대학에 합격했고 그 경험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은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오랜 시간 공연 예술의 현장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작품을 만났지만, 이 곡만큼은 한 번도 내 기억에서 떠난 적이 없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은 나에게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던 시절 나 자신을 증명했던 기억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최근 낙동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서형민이 이 곡을 첫 곡으로 연주했다.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나는 신문지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완벽한 음향 속에서 울리는 음악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깊고 풍부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두 시간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날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하나는 서툴고 부족했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시작해 끝내 그 무대에 서게 된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었다. 어쩌면 그 연주는 나의 첫 공개 연주이자 마지막 연주였는지도 모른다. 이후 나는 연주자가 아닌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 역시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나는 공연장에서 수많은 연주를 만난다. 그러나 내 음악의 시작은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던 신문지 건반 위에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인생의 원픽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곡을 이야기할 것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그것은 내 음악 인생의 시작이자 오늘의 나를 만든 음악이다.
2026-05-0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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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공백(空白)’
몇 년 전, 예고 없이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열정을 쏟아 발행하던 잡지도 결국 휴재에 들어갔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 애쓰던 엔진이 꺼진 듯한 시간이었다. 그때 책장에 오래 꽂아두었던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공백>이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슬램덩크>로 잘 알려진 만화가다. 그는 <배가본드>를 연재하던 중 돌연 휴재를 선언한 적이 있다. 매주 일본 주간 만화 잡지의 연재 시스템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고, 그 쉼은 500일이나 이어졌다. 작가 자신도 이토록 긴 공백을 예상하지 못했고, 연재 중단설이 돌 만큼 그의 건강 역시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그는 사찰의 거대한 병풍을 그리고, 김포공항 통로 벽면에 그림을 남기는 등 만화의 프레임을 벗어난 대형 작업에 몰두했다. 이는 더 고된 육체노동이었고, 재미있는 건 그곳에도 여전히 마감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노우에는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무기력증의 시간을 건너갔다. 그리고 이 시기를 ‘내압(內壓)을 높이는 시간’이라 불렀다.
우리는 흔히 ‘쉼’이나 ‘공백’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 물론 소진된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한 휴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노우에의 경우처럼, 더 깊은 몰입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시간 또한 공백일 수 있다. 공백은 멈춤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몸’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머리와 상상력만으로 삶의 벽을 넘으려 할 때 우리는 쉽게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자연의 일부인 몸을 깊이 이해하고 사용하는 순간, 비로소 이전에 닿지 못했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머리로만 해결하려던 인생의 벽을 몸의 감각으로 마주할 때 미지의 문이 열리곤 한다.
인생은 매 순간이 결전인 <슬램덩크>와 다르다. 오히려 <배가본드>의 주인공 무사시처럼, 길 위에서 주춤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혼잣말을 내뱉는 일상의 반복에 가깝다. 이노우에는 이러한 모든 분투의 과정을 냉소 없이 바라보는 관조의 태도를 가질 때, 삶이 비로소 사랑스러워진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공백이 필요하다. 다음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충분히 내압을 높인 사람만이, 다시 일상이라는 전장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붓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의 무기력증이 끝났는지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6-04-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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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정치가 바꿀 역설의 현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세상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어디선가 ‘벚꽃 엔딩’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문득 이렇게 좋은 시절을 늘 마음 졸이며 보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일은 항상 봄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이 선거의 후보자들은 정당 추천을 받거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만화방창한 시절을 즐기기는커녕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올해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거나 교통 요충지의 건물 외벽에는 어김없이 후보자의 얼굴과 기호 등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2000년대 초반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이를 거점으로 경로 잔치와 운동회를 개최하고 동네에서 학교 앞 신호등 설치의 서명 운동도 하면서 알콩달콩 마을 사람들과 재미나게 지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마을 일을 잘하니 정치를 해보라며 지방 선거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이에 넘어가 어떤 정당의 당원이 되어 지방 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했던 때 대학 선배가 꼭 읽어 보라며 건네주신 것이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옳은 쪽이 이겨야지 어찌 강한 쪽을 편드는가? 그 거부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몸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거의 20년 간 정치를 주업으로 생활하면서 강자가 옳게 되어 버리는 뼈아픈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
정치인은 말로 흥망하며 정치에는 온갖 말들이 오가며 뒤섞인다. 대중은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량한 구전을 이어가곤 한다. 정치인들이 대중의 이런 측면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선거전을 펼치지 않도록 잘 살펴볼 때다. 싫든 좋든 정치가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두루 결정하는 만큼 우리 유권자들은 매처럼 눈을 부릅뜨고 선거전을 살펴봐야 한다. 강한 쪽이 이겨 옳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쪽이 이겨 대중을 섬기도록 말이다.
정미영 국회부산도서관 관장
2026-04-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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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남들이 늦다고 할 때 제자로 받아준 참스승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가족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 선생님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만난 한스 마르틴 라벤슈타인(Hans-Martin Rabenstein) 교수는 원래 오페라 지휘자로 활약하다 40대 중반에 지휘 교수가 되었다. 1974년 당시 27세에 베를린에 도착한 나는 지휘를 배울 수 있는 계기를 얻기 위해 베를린 국립음대(당시 명칭은 서베를린 예술대학)로 무작정 찾아가서 라벤슈타인 교수를 알게 됐고, 연락처를 받았다.
“구텐 모르겐!”(Guten Morgen, 안녕하세요) 전화 너머 들려온, 라벤슈타인의 힘차면서 맑은 목소리에 호감이 갔다. “한국에서 온 지휘 공부를 희망하는 금난새라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바로 다음 날 오후 자기 집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했고, 나는 작은 호숫가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라벤슈타인은 ‘나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피아노를 한두 곡 치고, 청음 테스트, 그리고 지휘를 해 보라고 했을 때 대가 앞이라 주저하면서 “여긴 오케스트라가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오케이, 제가 오케스트라입니다. 아까 쳤던 베토벤 소나타를 쳐 볼 테니 지휘해 보세요!”라고 말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만큼 재치 있는 분이셨다. 이어 그는 “너무 늦은(27세) 감이 있지만, 한국으로 가지 말고 다음 학기에 시험을 준비해 보라”고 권했다.
시험은 10개 항목 중 3개가 미달해 입학이 좌절됐다. 당연히 실망하는 내 표정을 보고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미스터 금, 누구도 네가 실패한 1974년에 관심이 없을 거요, 어쩌면 네가 성공했을 때 관심이 있겠지?” 그러면서 시간이 없으니 지휘 수업에 청강생으로 들어와서 공부하라고 격려했다.
그다음 학기엔 정식으로 합격했다. 라벤슈타인은 매우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6년간 공부하는 동안 그는 나에게 ‘음악 아버지’였고, 나아가 독일은 나의 ‘음악 나라’가 되었다. 이후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제5회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입상 기념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영광과 기쁨을 내 나이 30세(마지막 참석 기회)에 맞이하게 됐다.
삶에는 늘 좌절과 절망이 찾아오지만 “아무도 너의 실패에 관심 없단다”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곧 80세가 되는 올해도 좋은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6-04-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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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의 필모그래피를 수놓은 작품은 애증으로 점철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난히 도드라진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이다. 처음 영화로 이 작품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한없이 성스럽고 엄숙한 분위기로 포장돼야 할 것만 같던 예수 이야기가 예상을 아득히 비껴간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퓨전이다 크로스오버다 하는 장르적 혼합이 낯설지 않지만, 여러 면에서 사회가 경직돼 있던 시절 이 작품의 감독 노먼 주이슨은 성서의 재해석과 장르 파괴를 무기로 앞세운다. 사막에서 스승을 배신한 유다가 탱크에 쫓기는 장면으로 죄의식을 표현한다거나 은빛 철모를 쓰고 기관총을 휴대한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하는 장면은 새로운 시도를 넘어선 파격의 쾌감을 선물한다. 이런 해석은 팀 라이스(작사), 앤드루 로이드 웨버(작곡) 원작의 뮤지컬과 그 궤를 같이한다.
작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 일주일을 다룬다. 예수가 전하는 새로운 복음에 구원의 희망을 걸고 그를 추종하던 대중의 맹목적 광기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로마로부터 유대 민족의 독립을 꿈꾸던 시온주의자들에게 예수는 혁명가로 비치진 않았을까? 작품은 이러한 의문으로 당시의 사건을 조명한다. 거기에 신성을 걷어낸 예수의 인간적 면모까지 드러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록 음악을 뼈대로 한다. 물론 클래식적 요소와 팝 발라드도 한몫하지만, 서곡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심장을 두드리는 건 역시 록 음악이다. 모든 대사가 멜로디가 붙은 아리아로 처리돼 있기에 수많은 뮤지컬 레퍼토리 가운데도 록 오페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이 출현하던 1970년대만 해도 서구의 보수 기독교적 가치관 안에서 록 음악은 악마의 음악으로 취급되던 점을 고려할 때 예수를 인간의 품으로 돌려주고 싶었던 원작자의 욕망이 읽히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폐막식 공동 연출자인 고 유경환 감독과 뮤지컬계의 대모인 윤복희 선배와의 인연이 이 작품을 통해 맺어졌다. 이따금 삶이 힘겨울 때 이 작품의 서곡을 듣는다. 전주를 듣는 순간부터 소름이 올라오며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100년쯤 거뜬히 살아낼 것 같다. 이 작품이 최애이자 ‘원픽’인 이유다.
2026-03-29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