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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정치가 바꿀 역설의 현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세상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였다. 어디선가 ‘벚꽃 엔딩’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문득 이렇게 좋은 시절을 늘 마음 졸이며 보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일은 항상 봄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이 선거의 후보자들은 정당 추천을 받거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만화방창한 시절을 즐기기는커녕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올해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거나 교통 요충지의 건물 외벽에는 어김없이 후보자의 얼굴과 기호 등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2000년대 초반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이를 거점으로 경로 잔치와 운동회를 개최하고 동네에서 학교 앞 신호등 설치의 서명 운동도 하면서 알콩달콩 마을 사람들과 재미나게 지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마을 일을 잘하니 정치를 해보라며 지방 선거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이에 넘어가 어떤 정당의 당원이 되어 지방 선거에 나서기로 결심했던 때 대학 선배가 꼭 읽어 보라며 건네주신 것이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옳은 쪽이 이겨야지 어찌 강한 쪽을 편드는가? 그 거부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몸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거의 20년 간 정치를 주업으로 생활하면서 강자가 옳게 되어 버리는 뼈아픈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
정치인은 말로 흥망하며 정치에는 온갖 말들이 오가며 뒤섞인다. 대중은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불량한 구전을 이어가곤 한다. 정치인들이 대중의 이런 측면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선거전을 펼치지 않도록 잘 살펴볼 때다. 싫든 좋든 정치가 일상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두루 결정하는 만큼 우리 유권자들은 매처럼 눈을 부릅뜨고 선거전을 살펴봐야 한다. 강한 쪽이 이겨 옳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쪽이 이겨 대중을 섬기도록 말이다.
정미영 국회부산도서관 관장
2026-04-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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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남들이 늦다고 할 때 제자로 받아준 참스승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가족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 선생님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만난 한스 마르틴 라벤슈타인(Hans-Martin Rabenstein) 교수는 원래 오페라 지휘자로 활약하다 40대 중반에 지휘 교수가 되었다. 1974년 당시 27세에 베를린에 도착한 나는 지휘를 배울 수 있는 계기를 얻기 위해 베를린 국립음대(당시 명칭은 서베를린 예술대학)로 무작정 찾아가서 라벤슈타인 교수를 알게 됐고, 연락처를 받았다.
“구텐 모르겐!”(Guten Morgen, 안녕하세요) 전화 너머 들려온, 라벤슈타인의 힘차면서 맑은 목소리에 호감이 갔다. “한국에서 온 지휘 공부를 희망하는 금난새라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바로 다음 날 오후 자기 집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했고, 나는 작은 호숫가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라벤슈타인은 ‘나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피아노를 한두 곡 치고, 청음 테스트, 그리고 지휘를 해 보라고 했을 때 대가 앞이라 주저하면서 “여긴 오케스트라가 없는데요”라고 했더니, “오케이, 제가 오케스트라입니다. 아까 쳤던 베토벤 소나타를 쳐 볼 테니 지휘해 보세요!”라고 말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만큼 재치 있는 분이셨다. 이어 그는 “너무 늦은(27세) 감이 있지만, 한국으로 가지 말고 다음 학기에 시험을 준비해 보라”고 권했다.
시험은 10개 항목 중 3개가 미달해 입학이 좌절됐다. 당연히 실망하는 내 표정을 보고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미스터 금, 누구도 네가 실패한 1974년에 관심이 없을 거요, 어쩌면 네가 성공했을 때 관심이 있겠지?” 그러면서 시간이 없으니 지휘 수업에 청강생으로 들어와서 공부하라고 격려했다.
그다음 학기엔 정식으로 합격했다. 라벤슈타인은 매우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6년간 공부하는 동안 그는 나에게 ‘음악 아버지’였고, 나아가 독일은 나의 ‘음악 나라’가 되었다. 이후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제5회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입상 기념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영광과 기쁨을 내 나이 30세(마지막 참석 기회)에 맞이하게 됐다.
삶에는 늘 좌절과 절망이 찾아오지만 “아무도 너의 실패에 관심 없단다”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곧 80세가 되는 올해도 좋은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6-04-0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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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의 필모그래피를 수놓은 작품은 애증으로 점철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난히 도드라진 작품이 하나 있다. 바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이다. 처음 영화로 이 작품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한없이 성스럽고 엄숙한 분위기로 포장돼야 할 것만 같던 예수 이야기가 예상을 아득히 비껴간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퓨전이다 크로스오버다 하는 장르적 혼합이 낯설지 않지만, 여러 면에서 사회가 경직돼 있던 시절 이 작품의 감독 노먼 주이슨은 성서의 재해석과 장르 파괴를 무기로 앞세운다. 사막에서 스승을 배신한 유다가 탱크에 쫓기는 장면으로 죄의식을 표현한다거나 은빛 철모를 쓰고 기관총을 휴대한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하는 장면은 새로운 시도를 넘어선 파격의 쾌감을 선물한다. 이런 해석은 팀 라이스(작사), 앤드루 로이드 웨버(작곡) 원작의 뮤지컬과 그 궤를 같이한다.
작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 일주일을 다룬다. 예수가 전하는 새로운 복음에 구원의 희망을 걸고 그를 추종하던 대중의 맹목적 광기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로마로부터 유대 민족의 독립을 꿈꾸던 시온주의자들에게 예수는 혁명가로 비치진 않았을까? 작품은 이러한 의문으로 당시의 사건을 조명한다. 거기에 신성을 걷어낸 예수의 인간적 면모까지 드러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록 음악을 뼈대로 한다. 물론 클래식적 요소와 팝 발라드도 한몫하지만, 서곡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심장을 두드리는 건 역시 록 음악이다. 모든 대사가 멜로디가 붙은 아리아로 처리돼 있기에 수많은 뮤지컬 레퍼토리 가운데도 록 오페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이 출현하던 1970년대만 해도 서구의 보수 기독교적 가치관 안에서 록 음악은 악마의 음악으로 취급되던 점을 고려할 때 예수를 인간의 품으로 돌려주고 싶었던 원작자의 욕망이 읽히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폐막식 공동 연출자인 고 유경환 감독과 뮤지컬계의 대모인 윤복희 선배와의 인연이 이 작품을 통해 맺어졌다. 이따금 삶이 힘겨울 때 이 작품의 서곡을 듣는다. 전주를 듣는 순간부터 소름이 올라오며 심장박동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100년쯤 거뜬히 살아낼 것 같다. 이 작품이 최애이자 ‘원픽’인 이유다.
2026-03-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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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원픽] 미국의 송어낚시/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단 한 문장으로 나에게 세상의 감춰진 면을 드러냈다. 그 문장은 보는 순간 몸속으로 순식간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웠다. 그 후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인생을 걸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가끔 소설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다짐했다. 소설을 쓰는 일이 두려워 뒷걸음을 치던 나를 다시 소설 앞으로 끌어당겼던 것도 그 문장이다. 그 후에도 많은 문학의 별들이 세상과 글 사이에서 헤매는 나를 인도했지만 언제나 가장 빛나는 건 처음 만났던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다. 1987년, 구독하던 문예지의 부록으로 처음 만났는데 촘촘하게 편집된 글이라 유인물처럼 느껴졌던 책이었다. 표지에 실린 작가는 카우보이모자와 청바지, 요란한 셔츠를 입고 긴 목걸이를 했다. 그런 차림의 소설가를 본 적이 없어 보고 또 봐도 낯설었던 기억도 난다.
소설은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광장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에서 시작하는데, 근처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준다. 와도 된다는 신호를 확인한 후에 건너가 받은 샌드위치 안에는 시금치 한 잎뿐이었다, 미국의 송어낚시와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 시금치 한 잎이 든 샌드위치와의 거리는 아득했지만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을 환대할 곳은 없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건 분명해 보였다. 몇 년 전에 북한서 온 학생이 교회에 갔는데 수프에 버섯 한 조각 들어있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그 문장이 떠올랐다.
미국의 송어낚시 안에는 짧은 이야기 47편이 실려있는데 송어를 잡으러 가는 일과 개발로 달라진 하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야기 사이의 연결은 느슨하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세상에 사건과 서술자가 같다니. 나는 당황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는다, 그러니 다 읽어도 덜 읽은 것 같고 다 읽지 않아도 대충 다 읽은 느낌이다, 소설은 송어 하천을 잘라 길이대로 파는 중고 가게를 이어 마요네즈로 끝난다.
나는 내 글이 답답할 때마다 이 소설을 펼쳤다. 이곳저곳 영향을 받은 곳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미국의 송어낚시>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안다. 여전히 시금치 한 잎을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으며 빈약한 상상력을 감추려고 설명하고 채우고 연결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1984년 49세 때 자살했는데 주검조차도 한참 늦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쓴 사람이 왜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안타까움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얼마 전 2호선 마지막 전동차 안에서 그도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정말 소설을 끝까지 읽은 기분이었다.
정영선 소설가
*1997년 <문예중앙> 신익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2024~2025년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요산김정한문학상,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2026-03-22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