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수 `한국축구 자존심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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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최고 스트라이커로 잉글랜드 1부리그 진출

98프랑스월드컵 예선 아랍에미리트 연합(UEA)과의 경기서 활약한 최용수(왼쪽).

"한국산 독수리"는 드디어 "종가"의 품으로 날아갔다.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최용수가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축구종주국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리그에 우뚝 섰다.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유럽무대에서 곧추 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23일 출국한 최용수.

이회택-차범근-최순호-김주성으로 이어지는 한국축구 스트라이커의 황금계보의 후계자.98프랑스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아시아축구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그도 연세대 4학년 때까지는 주전자리를 꿰차지 못한 무명의 선수였다."대기만성" 최용수의 축구인생은 그만큼 파란만장했다.

단지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산 금정초등 3학년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뒤 동래고 시절까진 최고의 "골잡이"로 활약했다.2학년 때는 KBS배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이 되면서 최다득점상도 수상했다.

연세대에 진학한 최용수는 한동안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기술축구"를 선호하는 정병탁 감독과 "파워축구"를 구사하는 최용수의 스타일이 달랐던 탓.

진흙속에 묻혀버릴 뻔 했던 최용수의 진가는 김호곤 감독의 부임과 함께 다시 꽃을 피웠다.김감독은 최용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며 엄청난 신뢰를 보냈다.

최용수는 92년 호주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당시 사령탑을 맡은 고교때 은사 박상인 감독이 체력이 좋은 유럽선수들과 맞붙을 대형 공격수는 최용수만한 선수가 없음을 인정한 것.

대학졸업후 LG에 입단,프로 첫 골을 터뜨린 날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최용수는 아버지의 영전에서 약속했다.한국 최고의 축구영웅이 되겠다고.

96애틀랜타올림픽 대표에 이어 97년 월드컵대표팀에 발탁된 최용수는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을 4회 연속 본선에 진출케 하는 일등공신이 됐다.그리고 그는 국민들의 가슴속에 진정한 "별"이 됐다.

전세표기자 spjun@p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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