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너무 많이 넣으면 '매실맛 나는 설탕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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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 발효의 오해와 진실

영차! 영차! 초록으로 시린 경남 양산 원동 화제리의 매화나무밭에서 매실을 수확한 아이들이 그물자루에 담아 옮기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잘 띄운 매실!'

메주를 띄우는 건 알겠는데, 매실도 띄운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우리말 '뜨다'는 한자어로 '발효(醱酵)한다'는 뜻이다. '누룩을 띄워 술을 담근다'고 할 때처럼 미생물이 유기물질을 분해하는 것이 발효다. 다시 말해 효모와 세균들이 영양분을 소비하는 2차 대사의 결과물이 인체에 유익하면 발효이고, 그렇지 못하면 부패가 된다. 발효의 한글 표현이 '뜸'이긴 한데, 사용빈도가 낮다 보니 낯설다.

햇매실이 출하되는 6월이 되면 집집마다 매실을 담근다. 이렇게 얻은 매실액(속칭 엑기스)은 냉수에 희석하면 입맛을 돋워 주는 청량 음료가 되고, 요리에는 설탕의 대용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이 매실액을 오래 두면 발효가 잘되겠거니, 좋아지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애써 추출해 낸 매실의 유효성분은 발효되지 않은 채 최악의 경우 '설탕물'로 남게 된다.

매실 자체 당 성분과 수분·씨 무게 감안 않은
'매실과 설탕 1 대 1 배합'은 설탕 너무 많아
제대로 발효시키려면 매실 무게 70%가 적당

■발효 원하면 설탕을 매실무게의 70%로

부산 남구 문현동의 발효문화공간 '연효재'(옛 한국술과발효테라피·051-636-9355)의 김단아 대표는 "설탕 조절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실과 설탕을 혼합하는 이유는 삼투압 작용으로 매실 과육에서 수용성 물질을 빼내기 위한 것이다. 이 진액에 미생물을 번식시켜 먹기 좋게, 기능성 있게 만드는 것이 발효다.

문제는 설탕이 지나치게 많을 때다. 미생물 활동이 멈추는 당장(糖藏) 상태가 되면 발효가 멈춰 그냥 '매실맛 나는 설탕물'이 될 수도 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있으니 요리에 쓸 수 있지만, 발효를 시키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미생물이 활성화되는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50브릭(brix·용액 100g 중 당 1g이 1브릭)이 제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매실과 설탕 1 대 1 배합'을 따르면 산술적으로 설탕 무게가 절반, 즉 백분율로 50%가 된다. 이는 매실의 과육이 가진 당(10브릭 전후)과 수분(87% 정도), 씨 무게(20%가량)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어서 자칫 설탕 과투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대표는 "과일뿐만 아니라 채소, 산야초도 자체 브릭과 수분을 갖고 있는데 이를 무시한 채 1 대 1 비율로 설탕을 넣으면 제대로 발효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효재'는 목표치 50브릭을 만들려면 매실 무게의 70%정도의 설탕을 넣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1 대 1' 기준은 서툰 일반인들이 실패하지 않고 안전하게 담글 수 있게 제시된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한편 이와 유사한 사례는 최근 건강식품으로 선전되고 있는 산야초 효소. 무턱대고 설탕을 집어넣어 농도가 60%까지 치솟았다면 미생물 발효가 일어나기 어렵다. 자칫 걸쭉한 설탕물을 '효소가 듬뿍 든 발효액'으로 오인하고 마실 수도 있다. 

부산 남구 문현동의 발효문화공간 '연효재' 김단아 대표는 매실액을 담글 때 큰 대야를 이용하면 매실과 설탕을 잘 섞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탕에 잰 뒤 3개월 기다릴 필요 없이
한 달 정도 지켜본 뒤 과육 건져내고
온도 22~28도 6개월 두면 발효액 완성

■과육이 쭈글쭈글하면 건져내고 6개월 발효 '필요'


인터넷을 뒤져 보면 '설탕에 잰 뒤 3개월 혹은 100일을 기다리라'는 안내가 많다. 설탕 대용으로 쓰려면 그렇게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발효를 일으키고 싶다면 "심하게 쭈글쭈글해진 상태, 즉 과육에서 유효성분이 다 빠져 나왔을 때 건져내면 된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그 기간은 통상 알려진 것 보다는 훨씬 짧은데, 온도에 따라 가변적이지만 대체로 한 달 정도 두고 지켜보면 된다고. 긴가민가하면 과육을 씹어봐서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면 수용성 성분이 빠져 나온 것으로 보고 과육을 건져낸 뒤 발효를 유도하면 된다.

매실액은 알맞은 온도(22∼28도)를 유지한 채 6개월 정도 두면 요구르트와 같은 유산 발효가 일어나 시큼해진다. 이 발효액으로는 알코올 발효나 초산 발효로 나아갈 수 있다. 물을 섞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와인 효모를 사서 넣으면 담금주와 비교할 수 없는 풍미를 가진 매실 와인을 얻을 수 있다. 과거 어머니들이 부뚜막에서 막걸리 식초를 만들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초산 발효를 일으키면 매실 식초도 만들 수 있다. 매실 식초는 물에 희석해서 음용하면 된다.

완성된 발효액은 오래 둘수록 좋은 것일까? 김 대표는 "사람마다 선호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유산 발효를 하는 김치가 오래 됐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놔두면 나빠진다는 뜻이 아니라, 발효가 왕성하게 일어나 있을 때 먹는 것이 좋겠다는 것.

또 발효액에는 2차 대사를 통해 얻은 영양성분과 효소도 있을 텐데, 이를 '효소액'으로 오인해서 섭취했을 때 체내에 부족한 효소가 보충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입으로 들어온 효소는 체내에서 소화될 뿐인 단백질이어서 원래의 효소기능을 할 수 없다.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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