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NBC 우승 전주연 바리스타] 치명적인 향미 연출한 부산 바리스타, 한국 커피 정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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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에 들어간 전주연(왼쪽) 바리스타가 커피 제공에 앞서 물을 먼저 서브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지켜보는 이는 수석 심사위원. 김기일 제공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우승자 폴 바셋은 매일유업이 브랜딩한 커피전문점 '폴 바셋' 덕분에 모국인 호주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바리스타다. 2015년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인 찰스 바빈스키 역시 한국야쿠르트가 브랜딩한 '콜드브루 바이 바빈스키' 영향으로 커피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제법 얼굴이 알려졌다. WBC, 즉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은 현재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대회로, 각국의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들이 세계 타이틀을 두고 경쟁한다.

2009년 첫 도전 후 6전 7기 끝 우승 영예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한국 대표로 선발

과테말라산 말라위 게이샤 종 들여와 출전
풍부한 맛 내려고 초임계 추출기까지 동원
"세계대회 준비 위해 중앙아메리카로 원정"

한국에서도 지난 21일 2018년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릴 WBC에 출전할 한국 대표 1인을 선발하는 2018 한국 바리스타 대표 선발전(KNBC)이 킨텍스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부산 '모모스커피'의 전주연(30·커피사업부 실장·부산여대 호텔관광계열 바리스타 전공 겸임교수) 바리스타가 KNBC 챔피언에 올랐다. 지금까지 KNBC에서 여성 바리스타 챔피언이 탄생한 것은 1회(2012년)밖에 없었으며, 2000년 시작된 WBC 챔피언십에선 여성 우승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상태다. 또한 KNBC 우승자 중 부산·경남 지역 예선을 거친 부산 출신 선수도 전 실장이 처음이다. 참고로, 국내 바리스타 대회는 총 7개(KNBC, KLAC, KBrC, KCIGS, KTCT, KCRC, KSC)가 있지만 WBC 출전 자격은 KNBC를 통해 선발된다. 전 실장이 들려주는 커피 한 잔의 열정 이야기다.

■부산 바리스타, 2018 KNBC 첫 챔피언 영예

"8년 만의 성공입니다. KNBC 대회는 2009년부터 7번 참가했지만 처음 목표를 세운 뒤 준비한 거로 치자면 10년이 걸렸습니다. 개인적인 성취감도 크지만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대회를 마친 뒤 부산 금정구 부곡동 '모모스커피'에서 얼굴을 마주한 전 실장은 그때까지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2009년 처음 열린 KNBC 부산·경남 지역예선에서 1위를 차지해 전국대회에 나갔지만 파이널리스트(6명)에 들지 못했고, 2회부터는 아예 서울로 옮겨 예선을 치르면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3년 2등, 2014년 2등, 2015년 3등.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 2016 KNBC 심사위원에도 도전했다. 필기와 실기 시험을 거쳐 자격을 얻었고 대회에 참가했다. 심사위원을 하게 되면 그다음 해 선수 출전 자격이 박탈되고, 전년도 파이널리스트에 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드(우선권) 자격도 포기해야 하지만 그렇게 했다. "꼭 1등을 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올해 열린 2018년 대회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부산·경남 지역 예선부터 거쳤고, '부산 챔피언' 자격으로 KNBC 챔피언에 당당히 올랐다.

"핸드드립 대회와 달리 바리스타 대회 우승자에 여자가 적은 이유는 기계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점도 있습니다. 지역대회 수준이 낮다는 인식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지역 대회에서 1~3위를 하는 사람이 전국대회 출전 자격을 얻는데 저 때문에 지역을 대표해 전국대회로 올라가는 자리 하나가 줄어든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욕먹을 각오로 참여한 지역 예선이었습니다. 부산 커피를 알리고 싶었거든요."

■에스프레소 머신 외에는 출전 선수가 전부 준비

WBC뿐 아니라 KNBC 대회에선 각자가 준비한 커피를 소개해야 하고 △에스프레소 △밀크 베버리지(우유 음료) △시그니처 베버리지(창작 음료)까지 각 3잔의 음료가 4명의 심사위원에게 총 12잔이 제공된다. 한 선수당 주어진 시간은 준비(15분)-시연(15분)-정리(15분). 선수들이 사용할 에스프레소 머신과 그라인더는 주최 측에서 동일하게 제공하지만 나머지는 전부 본인이 준비한다.

"이 대회는 에스프레소 머신 등 기계 외에는 생두 선택부터 로스팅, 추출 레시피, 디자인, 심지어 커피잔 등 소소한 기물까지 바리스타가 전부 설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심사에선 맛 비중이 가장 크고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커피에 대해 어느 정도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는가와 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평가합니다. 장인정신과 의사소통, 서비스 등 바리스타로서 직업에 얼마만큼의 열정이 있는가 하는 항목도 있는데 이 대회가 생긴 이래 제가 처음으로 심사위원 전원 만점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전 실장은 이번에 과테말라에서 재배된 말라위 게이샤 종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대회 자체가 스페셜티 커피의 확대라는 취지도 있기 때문에 독특한 커피를 찾는 열정이 필요했다. 과테말라에서 재배된 이 말라위 게이샤는 현지에서도 첫 수확해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대회 전까진 비밀에 부쳐졌다. 생산량도 많지 않아서 총 8상자(상자당 15㎏)가 생산돼 4상자를 한국에 들여왔다. 내추럴 프로세싱(수확한 커피체리를 과육이 있는 상태 그대로 말리는 방식)된 이 커피는 부드러운 질감은 물론, 너무나도 다양한 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는데, 말라위 게이샤 종을 최대한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찾게 된 방법이 커피의 지방, 오일의 추출이었다.

그는 또 "한 잔의 에스프레소에는 약 0.075g의 오일이 담겨 있다"면서 "방법만 있다면 더 많은 오일 추출을 위해 초임계 추출기를 활용했다"고도 밝혔다. '초임계'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초임계라는 단어가 낯설 수는 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면서 기체 상태의 이산화탄소에 220bar라는 압력을 가하고, 오일 추출에 용이한 40도의 온도를 더해 고체도 기체도 아닌 새로운 물성, 초임계라는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말라위 게이샤를 통과하게 만들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는 오일을 더 많이 뽑아낼 초임계 연구를 하느라 부경대 식품공학과에 도움을 구했고, 에티오피아에서 온 화학을 전공하는 학생과 공동 실험을 진행했다.

"대회 준비를 위해 물심양면 도와준 모모스 이현기 대표는 물론이고 같이 대회를 준비한 동료, 부경대 식품공학과 관계자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세계대회를 준비해야 하는데 내년 2월께 커피 수확 시기인 코스타리카나 엘살바도르 농장 중 한 곳으로 건너가 한 달여 동안 머물면서 수확과 가공 과정에도 직접 참여할 생각입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선보인 말라위 게이샤 커피는 11월 1일부터 모모스커피 본점과 센텀시티점에서 판매할 예정. 다만 양이 많지 않아서 원두와 생두, 핸드드립으로만 판매된다. 말라위 게이샤의 경우, 에스프레소로 마실 땐 단맛과 고소한 느낌이 강하지만 핸드드립은 레드 와인 마시는 느낌이 난다고.

한편 전 실장에게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꿀팁을 요청했다. 그에 따르면 커피 종류와 물, 커피 분쇄도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다. 최근엔 블렌딩 커피보다는 산지 특징과 향이 선명한 싱글 오리진 커피를 선호하는 추세다. 물은 정수기 물을 사용하더라도 충분히 순환된 물이 좋단다. 물 온도의 경우, 91~93도가 일반적이다. 가정용 반자동 혹은 자동 기계에서 커피 분쇄도를 조절할 수 있다면 그것도 활용해 보자. 너무 가늘게 분쇄하면 쓴맛이 강하고, 향을 즐기려면 분쇄를 좀 더 굵게 하고 커피양을 늘리면 된다. 커피잔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아메리카노는 잔 입구가 약간 두툼한 걸 써서 커피의 무게감과 단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핸드드립은 윗부분이 벌어진 쪽이 향을 더 잘 즐길 수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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