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황정민, "김정일 만나는 장면에선 정말 '쫄았어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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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만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속된 말로 '오줌 쌀 뻔' 했어요. 정말 긴장되더라고요."

배우 황정민은 영화계에선 베테랑 중의 베테랑 연기자다. 수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여왔기에 어떤 작품에서든 제몫 이상을 해내는 배우다. 그래서 관객들은 황정민이라면 어떤 역할이든 능숙하게 해낼거라 은연 중에 믿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영화 '공작'에서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실화를 기반으로 했으며 정치적, 국제적으로 예민한 주제인 남북의 냉전시대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장감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김정일과의 대면신'이었다고. 그만큼 힘들었던 탓일까.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공작' 촬영 뒷이야기를 신나게, 끊임없이 털어놨다. 영화 자체도 독특하거니와 데뷔 24년 만에 처음 해본 역할인 덕분이다.

■ '공작' 카메라 앞 이야기

영화 '공작'은 1990년대 중반 최초로 북한의 핵개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북측으로 잠입한 안기부 첩보요원이자 무역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암호명 흑금성·황정민)과 그를 둘러싼 남북 권력층 간의 첩보전을 그린 영화다.

황정민이 맡은 흑금성은 실존인물로 당시 실제로 중국에서 활동했던 군인 출신 안기부 공작원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직전 있었던 '북풍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해당 사건은 차후 뉴스에서 많이 다뤄져 널리 알려졌지만 흑금성은 매스컴에서 크게 돋보이지 않았다. 황정민도 그를 잘 몰랐다.

"윤종빈 감독이 팟캐스트 하나를 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전 몰랐어요. 90년대 연극에 빠져 살았다지만 이런 것들도 알지 못했던가 하는 부끄러움이 몰려들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이 인물을 어떻게 다이나믹하게 표현해야하나 고민이 컸어요. 특히 대본은 좀 밋밋한 느낌이었거든요."

흑금성이란 인물을 알게되자 자연히 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는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온전히 국가를 위해 한 우물만 판 사람이었다. 황정민은 "나 같으면 절대 못할 일"이라며 "또 나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돼 독방을 견디기까지 했다"면서 흑금성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언급했다.

박석영과 흑금성은 1인 2역이 아니다. 1인 2역은 배우가 두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지만, 박석영과 흑금성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황정민은 이 부분에서 고심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1인2역처럼 하면 쉬워요. 따로 연기해서 가져다 붙이면 되는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되잖아요. 한 명이 두 인물을 번갈아 가야하니까요. 겉으로는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어려웠어요. 그것도 각자 개성과 방향이 뚜렷해서 두드러져야하고. 결국 사투리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죠. 그거라도 없었으면 표현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박석영과 흑금성을 연기하며 어려웠던 부분을 묻자 황정민은 주로 흑금성에 대한 기억을 털어놨다. 먼저 상관에게 보고할때를 꼽은 그는 "조진웅에게 보고해야하는데, 차렷자세로 대사하기가 참 어렵다"라며 "적절하게 손동작을 그리고 모션도 있어야하는데 입으로만 하니까 표현이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어려운 발음들을 또박또박 해야했기에 어려움은 더 했다고. 이와 함께 그는 김정일과의 대면신도 떠올렸다.

"그때는 연기지만 정말 '쫄았어요'. 김정일 별궁 세트장에는 엑스트라 300분이 계셨지만 실제로는 2000명이 있대요. 이게 실제였다면 차렷 자세조차 가능했을지 오싹하더라고요. 게다가 기주봉 선배가 한 김정일 분장은 해외특수분장팀이 와서 완성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어요. 그러다보니 저 뿐 아니라 이성민 형도 숙소는 물론 현장 벽 보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그곳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NG도 엄청 났어요."

이러한 고충을 떠올린 황정민은 "후반부에 지훈이가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너도 오면 연기 못할걸?'이라고 놀렸다"라면서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잘하더라"고 말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 '공작' 카메라 뒷 이야기

촬영 뒷 이야기로 주제를 옮기자 황정민은 가장 먼저 '브로맨스'를 펼쳤던 이성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놨다. 본인은 어려운 연기에 엄청나게 헤맸지만 이성민의 카리스마에 묻어서 잘 넘어갔다고 겸손을 보였다.

"좋은 배우랑 함께 연기하는 건 행복해요. 그 기운을 받아서 좋은 에너지를 쌓을 수 있거든요. 성민이 형을 처음 만난 장면이 고려원이에요. 원래 배우들이 자기 힘든걸 내색을 잘 안하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어려웠어요. 이중삼중으로 감정을 숨기는데 관객께는 보여드려야하고. 그러다보니 '이렇게 해선 안되겠다. 털어놓자' 해서 말했더니 형도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힘든 걸 털어놓는게 하나의 해답처럼 느껴졌어요."

'공작'은 몸이 아닌 말과 표정으로만, 그런데 액션만큼이나 긴장감 넘치게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구강액션'이란 신종 장르로 불리고 있다. 영화 초반부터 그래야했으니 너무 어려웠던 것. 황정민은 "윤종빈 감독은 말을 액션처럼 다이나믹 하게 해달라고 하는데, 그거 말은 쉽다"면서 분노를 터트려 웃음을 안겼다.


난감했던 건 연기 외적인 부분에도 있었다. 북한을 표현해야하기에 김정일 별궁이나 평양 길거리 세트장을 만들고 엑스트라 수백명을 인민군으로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그로 인한 민원으로 쫓겨난 적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작'이 개봉한 시점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촬영했던 시기는 전 정권이라 '도둑 촬영'을 하기도 했다고.

"미술팀이 미리 세팅을 해놓는데 북한 선전 문구가 좀 큰가. 수백미터 밖에서도 보이니까 동네 분들이 신고를 하더라고요. 아무리 영화 촬영 중이라고 양해를 구해도 나이 드신 분들께선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면서 호통치시고요. 그래서 영화 찍으면서도 저희 끼리는 '과연 개봉은 할 수 있을까?' 걱정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평양에서도 촬영할 수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네요. 하하"

배경이 1990년대 초중반이다보니 타자기, 폴더폰, 팩시밀리, 양주 등 추억의 소품들도 반가움을 자아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많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트렌치 코트다. 그리고 황정민이 입던 코트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원래 소품팀이 준비한 옷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느낌이 안 사는 거에요. 그런데 윤종빈 감독이 아버지께서 그때 입으셨던 트렌치코트를 가져오더라고요. 신기한 것이 몸에 딱 달라 붙더라고요. 세월이 묻어 오래된 느낌도 나고요. 그런건 소품으로 따라하긴 어려운거잖아요. 무조건 그거 입고 촬영한다고 했고, 실제로 그랬죠. 촬영 후반은 7월이었는데 더워도 제가 입는다고 고집부렸어요."

■ "지겹다고요? 감사하죠!"

연기력으로야 나무랄데 없는 황정민이지만 관객들 중에는 종종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쉼 없이 활동하는 배우다보니 너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매년 최소 2~3편의 작품 활동을 하고 누적 관객수도 1억 명을 눈 앞에 두고 있으니 보는 이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황정민도 이를 모르진 않는다.

"제가 영화 한두편 찍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저도 알죠. 하하. 예전에는 짜증이 났던 적도 있긴 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많은 배우들이 활동하는데 '많이 나온다', '지겹다'는 소리 듣는 배우 사실 얼마 안되거든요. 그 중에는 '믿고 본다'도 있긴하고요. 하하. 아무튼 그 중의 한 명이 저란 말이죠.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지금은 저 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래도 관객의 피로도를 낮추려 노력은 해야한다. 황정민도 이 부분에 있어서 진심을 전하는 힘을 갖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기준은 이야기다. 그는 "이야기라는 것은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걸려 있다"면서 "'공작'을 처음 들었을때 너무 궁금했고, 그래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했다"고 말해 이번 영화 역시 노력의 결과임을 설명했다.

황정민의 다음 이야기는 윤제균 감독의 SF물 '귀환'이다. 김혜수와 함께 우주복을 입게 될 그는 "'공작'의 좋았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보려 한다"면서 "무중력 상태의 신비로움과 중압감이 기대된다"고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개봉 5일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공작'은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에 의하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고 실시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전국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김상혁 기자 sunn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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