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진 형벌 논란] 엄벌주의에도 늘어나는 강력범죄… 중한 처벌 효과 있나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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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강력범죄가 이어진다. 조현병을 앓던 40대 남성의 무차별 살인, 10대 청소년들의 잔혹한 집단폭력으로 인한 상해치사,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면 어김없이 ‘보다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한국 사회의 형벌은 최근 수 년간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고 있다. 그러면 무거워진 형벌만큼 우리의 삶은 안전해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무거워진 형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력범죄율은 줄어들지 않는다. 법조계에서 엄벌주의의 대한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는 이유다.

흉악범죄 발생 ‘계속’ 엄중처벌 목소리↑

韓, 다른 국가 대비 법정 형량 무거워

최근 10년 간 흉악 강력 범죄는 늘어

‘엄벌 병행할 다른 대안 필요’ 지적 증가

지나친 형량, 수감자 사회 복귀 방해

전문가 “범죄자 재사회화 시스템 갖춰야”

■갈수록 엄해지는 처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에선 강력범죄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고, 그만큼 시민들의 강력한 처벌 요구도 거세졌다. 이에 대응하듯 한국 사회는 2010년 형법의 일부 개정을 통해 유기징역과 유기금고의 상한을 15년에서 30년 이하로 높이고, 형벌 가중 시 상한도 25년에서 50년까지로 조정했다. 사형에 대한 감경은 10년 이상에서 20년 이상 50년 이하로 상향조정됐다. 무기징역과 무기금고에 대한 감형의 경우도 7년 이상에서 10년 이상 50년 이하로 상향조정했다.

이처럼 형법이 강화될 수 있었던 표면적인 논리적 근거는 한국 사회의 수명 증가였다. 2010년 형법 개정 이전까지 형법상 유기징역형의 상한선 15년(가중 25년)은 1953년 형법 제정시 정한 그대로였다. 당시에는 국민의 기대수명이 50세를 채 넘지 못했기에, 최고형이 25년이면 충분했다고 봤다. 그러나 2010년 당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를 넘어섰다. 기대수명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자 형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형법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법정 형량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유기징역 상한의 경우 한국은 형벌 가중을 포함해 최대 50년으로, 독일(15년), 영국·스위스·오스트리아·네덜란드·대만(20년), 이탈리아(24년), 프랑스·일본(30년), 스페인(40년) 등 대부분의 나라보다 엄하다.

법정 형량뿐만 아니다. 형법 개정 이후 실제 재판에서의 강력범죄에 대한 양형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 양형위원회의 2018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살인의 경우 2010년 평균 형량(이하 1심 기준)이 120.7개월이었으나 2017년에는 177.6개월로 크게 급증했다. 개별 사건의 정황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2010년에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보다 2017년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이 4~5년 정도 더 징역형을 사는 셈이다.

살인미수 역시 2010년에는 평균 형량이 35.6개월이었으나, 이후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2017년에는 평균 형량이 48.5개월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강력범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절도의 경우 2013년 평균 형량은 9.3개월이었지만, 이또한 4년 뒤인 2017년에는 10.3개월로 1개월 늘었다.

■오히려 강력범죄 늘었다?

이러한 엄벌주의가 과연 범죄예방효과를 가질까. 애석하게도 아직까지는 형벌이 무거워졌다고 범죄가 줄었다는 유의미한 통계적 결과는 없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학계의 주장을 방증이라도 하듯, 실제 한국 사회에서 형벌이 강화되어 온 지난 10여 년 동안 살인·강도·성폭력·방화 등 흉악 강력범죄는 오히려 증가했다. 법무부의 2018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흉악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2008년 2만 4023건에서 2017년 3만 6030건으로 50%가량 증가했다. 연도별로 보더라도 2012년과 2016년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엄한 법 개정이 이뤄졌던 성폭력 부분만 떼어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2008년 1만 6129건에서 2017년 3만 2824건으로 배 이상 들었다.

엄벌주의의 효과 여부와는 별개로, 과도한 엄벌주의가 ‘형벌만능주의’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범죄 발생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논점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결국 적절한 죄값을 치르게 하되, 대신 죄값을 치른 후 재범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사회화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형량은 오히려 재사회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민영성 교수는 “무조건 형량을 늘리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데 이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복역기간이 길면 사회 복귀 후 재사회화 과정이 힘들어지고, 그만큼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커진다”고 경고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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