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법원, 한국 정부 배상 책임 일부 인정

김주희 부산닷컴 기자 zoohih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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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을 기록한 전시회에 참석한 응우옌 득쩌이 씨의 조카인 베트남 피해자 응우옌 티탄 씨가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울먹이는 모습. 연합뉴스 2019년 4월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을 기록한 전시회에 참석한 응우옌 득쩌이 씨의 조카인 베트남 피해자 응우옌 티탄 씨가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울먹이는 모습. 연합뉴스

법원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은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3) 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응우옌 씨)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응우옌 티탄 씨는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2월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서 7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에서 가족들을 잃고 자신도 총격을 입었다며 2020년 4월 3000만 10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우리 정부는 "베트콩이 한국군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어 단지 한국 군복을 입고 베트남어를 쓰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우리 군이 가해자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우리 군이 민간인을 살해했더라도 게릴라전으로 전개된 베트남전 특성상 정당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사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류진성 씨, 당시 마을 민병대원이던 베트남인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한 증거를 바탕으로 응우옌 씨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소멸시효가 만료됐는지도 쟁점이 됐다.

우리 정부는 불법행위 시점이 이미 수십 년 지나 소멸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했으나, 응우옌 씨 측은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거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큰 경우'에 해당해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해 사유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다만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거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큰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재판부는 피해의 정도, 배상의 지연, 물가 및 통화가치의 변화 등을 고려해 정부가 응우옌 씨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를 4000만 원으로 정했다. 다만 응우옌 씨의 청구 금액이 3000만 100원이라 그 범위 한도에서 배상금이 인정됐다.


김주희 부산닷컴 기자 zoohih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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