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전수조사 어렵고, 밀수량은 많고… 구멍 뚫린 부산항 [일상 파고드는 마약]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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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적발량 최대 70% 비중
물동량 전량 검사 땐 항만 마비
첩보 화물 등 표본 검사 불가피
‘청정국’ 인식에 국적 세탁 표적
관세청, 첨단 고성능 장비 도입
각국 세관과 공조 확대 계획

부산세관 직원들이 지난 12일 오전 부산 남구 부산세관 지정 장치장에서 마약 검사를 위해 화물을 컨테이너에서 내리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세관 직원들이 지난 12일 오전 부산 남구 부산세관 지정 장치장에서 마약 검사를 위해 화물을 컨테이너에서 내리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항만을 통한 마약 밀수는 공항을 통한 경우보다 적발 건수는 적지만 중량은 월등히 많다. 항공을 통해서는 소량의 마약이 빈번히 들어오는 반면, 항만에서는 한 번에 국내 연간 전체 마약 적발량에 가까운 양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의 99%가 항만으로 들어오는 만큼 화물 전수조사가 어려워 사전에 마약을 적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부산항은 국가 이미지에 편승해 환적 효과를 노리는 마약조직의 표적이 되고 있다.


■“마약 전량 검사는 불가”

지난 12일 오전 부산 남구 부산세관 지정 장치장. 1차 엑스레이 검사에서 의심화물로 분류된 담배 화물을 검사하기 위해 세관 직원들이 컨테이너를 개봉하고 있었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카시트 부품 화물에서 마약 검사가 이뤄졌다.

세관은 앞서 첩보가 접수된 화물과 기존 블랙리스트에 오른 화주의 화물 등 기준을 가지고 화물을 표본 검사한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1차로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경우에 따라 엑스레이 검사 없이 바로 물건을 개봉해 해체 검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세관에서는 의심되는 화물을 열면 ‘스왑’이라고 불리는 검사지로 물건의 표면을 닦은 뒤 아주 소량의 마약도 탐지해 낼 수 있는 기계인 ‘이온 스캐너’에 검사지를 넣는다. 여기서 이상 결과가 나오면 다른 검사키트 등을 통해 정확히 어떤 마약인지를 판별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의심되는 화물에서만 검사를 진행하다 보니 전수검사를 하지 않는 한 많은 화물에 숨긴 마약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지난해 전국 무역항에서 처리한 물동량은 15억 4585만t에 다다른다. 물리적으로 화물 전량을 검사하게 되면 항만이 마비될 수도 있다.

 

■‘마약청정국’ 악용해 국적 세탁

항만으로는 컨테이너 등 대규모 화물이 들어오는 탓에 전수조사를 하기 어렵고, 항공에 비해 물량도 많아 마약을 은닉하기 쉽다.

특히 부산항은 대표적인 마약 밀수 표적이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99%가 항만을 통하는데, 특히 부산항이 가장 많은 양을 처리한다. 지난해 전체 물동량 중 약 27%에 달하는 4억 2492만t이 부산항을 통했다. 2위인 광양항은 같은 기간 2억 6932만t에 그쳤다.

항만의 경우 항공에 비해 마약 적발 건수는 적지만 적발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2021년에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수출입 화물 등에서의 마약 적발 건수는 11건에 그쳤지만 중량은 94만 3867g에 달했다. 이는 2018~2020년에 적발된 밀수 마약의 평균 연간 중량에 가까운 양이다. 또한 최근 5년간 항만을 통해 들어온 수출입 화물 등에서의 마약 밀수를 적발 건수로 보면 매년 15건 이하지만 총 중량은 그해에 적발된 마약 밀수 총량의 최대 70%(2021년)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는 인식이 있어 마약 밀수범들은 국적 세탁용 경유지로 한국을 선호한다고 업계는 전한다. 환적화물의 경우 수출입 화물보다 마약 검사 집중도가 낮아 감시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2018년 부산항에서 환적해 중국으로 출발하려던 컨테이너에서 코카인 63.88kg이 적발됐다. 2021년 아보카도가 실린 컨테이너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코카인 400kg가량이 발견되기도 했다. 코카인 1회 투여량이 0.01g인 것을 감안하면 135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검찰은 당시 해당 화물의 종착지가 부산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환적화물에 대한 마약 검사가 수출입에 비해 적은 건 사실이다”라며 “한국이 통상적으로 ‘마약 청정국’이라는 인식이 있어 국적 세탁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엔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인 나라에 마약 청정국 지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2016년 이 수치를 넘어서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은 상태다. 관세청 측은 “환적화물도 의심 화물로 지정되면 동일하게 검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기술적 한계, 대안 없나

관세청은 현장 검사로 밀수를 적발하는 동시에 첩보 활동을 통해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마약 수사를 이어 간다. 2021년에는 강철로 만든 항공기 부품인 ‘헬리컬 기어’에 필로폰(히로뽕) 총 404kg이 숨겨져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다. 이 필로폰은 세관을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지만, 검사장비로는 두꺼운 강철을 투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세관은 호주연방경찰과 미국 세관으로부터 마약 밀반입 첩보를 넘겨받는 등 첩보 활동을 통해 이 마약의 유통 경로를 추적했다. 앞서 호주 세관이 헬리컬 기어 내부에서 약 500kg에 달하는 마약을 적발한 적이 있었다. 이에 세관은 부산항을 통해 국내로 반입된 헬리컬 기어 부품 안에도 수백 kg의 마약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경로를 추적해 경기도 외곽의 한 인적 드문 대형 창고에서 마약을 적발했다.

관세청은 금속 초음파 검사기를 도입해 이 같은 금속부품 검사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라만 분광기, 정밀분석장치 등 최첨단 고성능 장비를 도입할 계획도 갖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국제 공조를 통해 각국 관세 당국과 합동 단속을 확대하고, 주요 항만 등에서 화물 파괴와 해체 검사에 대한 손실보상 예산을 활용해 화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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