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집주인 주소가 벌판” 부산 대형 전세사기 또 터지나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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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구 등 4개 빌라 주민 89세대
건물주 부부 연락두절로 발 동동
월세 많아 안전하단 말 믿고 계약
수십억 근저당에 전세금 떼일 판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예비 부부
54억 원 날릴 우려에 대책위 꾸려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또 다른 50억 원대 ‘전세사기’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약 90세대와 전세 계약을 맺고 잠적한 집주인 부부의 서류상 사무실엔 비닐하우스뿐이었다. 사회초년생, 예비 부부 등 세입자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변호사 선임 등 대응에 나섰다.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30대 이 모 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출퇴근을 위해 회사와 가까운 지역 빌라에 2년 8개월 전 전세 계약을 맺고 입주했는데, 최근 집주인 부부가 세입자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것이다.

7000만 원을 대출 받아 전세금 9000만 원을 마련했던 이 씨는 집주인 잠적으로 은행 빚을 떠안고 살 위기에 처했다. 이 씨는 “입주할 땐 건물에 월세 물건이 많아서 ‘위험한 집이 아니다’ ‘월세가 많아 수익성이 보장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 안전한 줄 알았다”며 “월세가 부담돼 전세로 살았다. 갑갑한 마음에 어떻게든 집주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9일 사상구, 부산진구, 동구의 4개 빌라 세입자 약 90명이 꾸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이들의 건물을 소유한 A 씨 부부가 최근 잠적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는 총 89개 세대, 피해 전세금은 약 54억 원으로 추산된다.

선순위채권인 근저당권이 총 46억 원 가량 설정돼 있어 물건이 경매에 넘어간다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상구 B빌라에 11억 원, 부산진구 C·D빌라에 27억 원, 동구 E빌라에 7억 원의 농협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최근 한 세입자가 A 씨 부부에게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 피해자들은 부부의 잠적 사실을 알게 됐다. 일부 피해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A 씨 부부의 기장군 소재 사무실로 찾아가 봤지만 현장에는 비닐하우스뿐이었다고 한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이들 부부가 피해자들과 소통하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해지한 듯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피해자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모여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부부의 집 주소로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집주인 부부가 최근 거주지에서 급히 이사를 간 것으로 알려져 정확한 소재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아직 전세 계약 기간이 남아 당장 경찰 수사도 어려운 상태라며 피해 구제를 호소했다. 한 달여 뒤 전세 계약 만료를 맞는 집이 20여 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피해는 사실상 ‘시한 폭탄’인 상태다.

30대 피해자 성 모 씨는 “예비 부부다. 신혼집을 준비하다 이런 일이 터져 정말 갑갑한 심경”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연장해 주지 않아서 기한 내에 당장 대출을 갚아야 해 답답한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성 씨는 “오래 살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 세대가 월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세로 다 바뀌었다”며 “금리가 낮을 때 전세금을 받아 투자해서 돈을 벌려고 했지만 이번에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내리자 돈을 충당하지 못해 도망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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