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집주인 주소가 벌판” 부산 대형 전세사기 또 터지나
사상구 등 4개 빌라 주민 89세대
건물주 부부 연락두절로 발 동동
월세 많아 안전하단 말 믿고 계약
수십억 근저당에 전세금 떼일 판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예비 부부
54억 원 날릴 우려에 대책위 꾸려
부산에서 또 다른 50억 원대 ‘전세사기’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약 90세대와 전세 계약을 맺고 잠적한 집주인 부부의 서류상 사무실엔 비닐하우스뿐이었다. 사회초년생, 예비 부부 등 세입자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변호사 선임 등 대응에 나섰다.
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30대 이 모 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출퇴근을 위해 회사와 가까운 지역 빌라에 2년 8개월 전 전세 계약을 맺고 입주했는데, 최근 집주인 부부가 세입자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는 것이다.
7000만 원을 대출 받아 전세금 9000만 원을 마련했던 이 씨는 집주인 잠적으로 은행 빚을 떠안고 살 위기에 처했다. 이 씨는 “입주할 땐 건물에 월세 물건이 많아서 ‘위험한 집이 아니다’ ‘월세가 많아 수익성이 보장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 안전한 줄 알았다”며 “월세가 부담돼 전세로 살았다. 갑갑한 마음에 어떻게든 집주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9일 사상구, 부산진구, 동구의 4개 빌라 세입자 약 90명이 꾸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이들의 건물을 소유한 A 씨 부부가 최근 잠적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는 총 89개 세대, 피해 전세금은 약 54억 원으로 추산된다.
선순위채권인 근저당권이 총 46억 원 가량 설정돼 있어 물건이 경매에 넘어간다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상구 B빌라에 11억 원, 부산진구 C·D빌라에 27억 원, 동구 E빌라에 7억 원의 농협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최근 한 세입자가 A 씨 부부에게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 피해자들은 부부의 잠적 사실을 알게 됐다. 일부 피해자는 계약서에 명시된 A 씨 부부의 기장군 소재 사무실로 찾아가 봤지만 현장에는 비닐하우스뿐이었다고 한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이들 부부가 피해자들과 소통하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해지한 듯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피해자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모여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부부의 집 주소로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집주인 부부가 최근 거주지에서 급히 이사를 간 것으로 알려져 정확한 소재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아직 전세 계약 기간이 남아 당장 경찰 수사도 어려운 상태라며 피해 구제를 호소했다. 한 달여 뒤 전세 계약 만료를 맞는 집이 20여 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피해는 사실상 ‘시한 폭탄’인 상태다.
30대 피해자 성 모 씨는 “예비 부부다. 신혼집을 준비하다 이런 일이 터져 정말 갑갑한 심경”이라며 “다른 사람들도 은행에서 전세 대출을 연장해 주지 않아서 기한 내에 당장 대출을 갚아야 해 답답한 부분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성 씨는 “오래 살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 세대가 월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세로 다 바뀌었다”며 “금리가 낮을 때 전세금을 받아 투자해서 돈을 벌려고 했지만 이번에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내리자 돈을 충당하지 못해 도망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