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규제법 베끼면 안돼”…글로벌 전문가들 ‘공정위 온플법’ 우려
“온플법, 경쟁촉진과 소비자후생 모두 외면할수도”
온라인 플랫폼 규제동향 국제세미나서 우려 쏟아내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경쟁법 관련 전문가들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에 대해 한 목소리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지난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연 ‘온라인 플랫폼 규제동향 국제세미나(사진)’를 통해서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지정해 법으로 규제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공정위 입법안이 시행될 경우 관련 산업에 미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대형 플랫폼 기업들을 사전지정해 규제하는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한 온플법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공정위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외 5∼6개 규제 대상 플랫폼 기업을 미리 정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사전 규제 방식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법 행위 시 전체 매출의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안이 포함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해당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이 따라하는 EU의 DMA 법안은 규모가 큰 ‘비유럽 플랫폼’ 기업만을 겨냥해 설계됐으며 경쟁촉진과 소비자 후생, 혁신을 모두 외면했다”고 대체로 말했다. 이미 유럽의 규제 일변도 정책을 IT 강국인 한국이 급하게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로버트 애킨슨 회장은 “아직 글로벌하지 못한 유럽 본토 플랫폼 기업의 이익을 위해 미국 대기업을 규제하겠다는 법안”이라며 “DMA가 시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혁신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빅테크 규제 법안들이 모두 폐기된 상황에서 유럽식 규제를 복사 붙여넣기 하면 안 된다”며 “한국 공정위는 DMA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선 지켜봐야 한다.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펜실베니아대 크리스토퍼 유 교수는 “반도체와 같이 ‘규모의 경제’ 기반의 효율적인 산업이 존재하는 만큼 단지 규모로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혁신을 죽이고 비용을 높이게 된다”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하지 않은 채 똑같은 논리로 다양한 성격의 기업들을 일반화해 규제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EU는 최근 애플·아마존 등 미국 기업 5곳과 한국 삼성전자, 중국 바이트댄스(틱톡 자회사)가 규제대상인 ‘게이트키퍼’ 자격에 부합하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 법의 규제를 받으면 웹브라우저·쇼핑·검색 등 각종 자사 앱과 플랫폼 서비스 설치나 마케팅이 금지된다. 유럽 내 연 매출 75억유로(약10조 6000억원)·시가총액 750억유로(106조원), 월간 플랫폼 이용자 4500만명·3개국 이상 진출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 사전 규제 대상이다. 구글·아마존뿐 아니라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도 ‘삼성 인터넷’ 같은 웹브라우저 앱을 자사 스마트폰에 제공한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으로 봤다.
주세페 콜랑겔로 이탈리아 바실리카타대 교수는 “누구도 삼성이 DMA가 말하는 ‘게이트 키퍼’에 해당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과연 삼성이 경쟁 촉진을 저해하는 ‘게이트 키퍼’일까? DMA는 그저 기업의 사이즈에만 초점을 맞춘 퇴행적인 규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EU는 규제로 금지한 행위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정당성, 소비자 피해 등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애킨슨 회장은 “유럽 규제로 ‘게이트 키퍼’의 서비스·제품 수혜를 입는 기업 수십만 곳에 피해가 예상되며 상당한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DMA는 실제 시장 점유율과 영향력 등과 관련 없이, 사전 규제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에겐 수많은 의무와 금지 사항을 부과하는 한편, 경쟁업체가 DMA의 범위에서 면제되도록 예외를 둔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를 들어 음악 스트리밍 산업에서 시장점유율 15%인 ‘애플 뮤직’은 DMA 대상이고, 31%인 스포티파이는 면제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공정위가 추진하는 온플법이 유럽식 DMA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부작용이 심할 것이며, 당장 추진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도 나왔다. 대만 공정거래위원회(TFTC) 앤디 첸 부위원장은 “대만은 별도의 법을 만들어 디지털 플랫폼을 규제하지 않으며 신중을 기해야 하는 사전규제는 대만에서도 입법이 실패했다”며 “유럽과 한국은 기술·문화·지역적 차이가 있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대 권남훈 교수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커머스 산업에서 1~5위 사업자는 계속 바뀌었고, 독과점이 고착화된 적이 없어 추가 규제의 사회적 필요성이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콜랑겔로 교수는 “유럽에서도 DMA가 독일과 이탈리아 등 국가별 반독점 조항과 상충돼 혼동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고, 효과적인 규제책인지 의문이 많다”며 “DMA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식으로 도입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위 ‘자사우대’ 규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크리스토퍼 유 교수는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이 높은 마진율을 자랑하는 업체의 비싼 배터리를 사려는 고객에게 경쟁력 있는 자사 배터리 상품을 광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자사우대 규제”며 “새로운 경쟁압력은 좋은 것인데 소비자보다 경쟁기업을 보호하는 유럽식 자사우대 규제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주대 김성환 경제학과 교수는 “증권사 자료를 제외하고 정부가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연구하거나 분석한 자료가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DMA를 베껴서 규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