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재난문자 좀 스마트해질 수 없나[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원론적 재난문자 경각심 저하 논란
실제 재난 현장 실효성 없다 지적도
구체성 현장성 담보할 방안 고민해야
부산에 집중호우가 예보된 18일 부산시와 구청에서 송출한 재난문자.
부산에 집중호우가 예고됐던 18일 시민들에게 재난문자가 빗발쳤다. 행정안전부는 물론이고 부산시와 일선 구‧군에서 반복적으로 재난문자를 보내 하루에만 20여 건이 쏟아졌다. 앞서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장마철 집중호우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자 전국 지자체에 공문을 통해 집중호우 예보 시 과할 정도로 재난문자를 발송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날 부산에 지역에 따라 시간당 최고 50㎜ 안팎의 집중호우가 예보되자 행안부는 물론이고 지자체가 앞다퉈 재난문자를 발송한 것이다. 집중호우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예고된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구체성 없고 반복적인 재난문자가 오히려 시민들의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격한 기후와 사회 변화로 각종 재난 상황이 잦아지면서 재난문자를 둘러싼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2016년 경주 지진 후 지자체 확대
재난문자는 재난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 주기 위해 발송되는 문자 서비스로, 2005년 5월 15일부터 시작됐다. 경중에 따라 위급재난문자, 긴급재난문자, 안전안내문자로 나뉜다. 위급재난문자는 전시 상황, 공습경보, 규모 6.0 이상의 지진 등 국가적 위기 상황일 때 60㏈의 경보음과 함께 송출된다. 긴급재난문자의 경우 태풍 화재 등 자연‧사회 재난 발생 시 재난 지역 주변에 위험을 알리기 위한 송출이고 40㏈의 경보음이 울린다. 안전안내문자는 위급과 긴급을 제외한 일반적 재난 경보와 주의보 상황에서 일반 문자 수신음과 함께 보낸다. 긴급과 안전안내문자는 차단할 수 있지만 위급은 차단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재난문자 사용이 확대된 건 2016년 경주 지진 이후다. 당시 지진 발생 후 9분이 지나서야 재난문자가 발송돼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을 받은 후 지자체로 송출 권한을 확대했다.
부산에 나흘째 호우경보가 발효 중인 18일 출입이 통제된 온천천 하부도로 및 산책로와 설치된 운동기구가 불어난 물에 잠겨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천편일률적 내용 경각심 저하
지자체로 발송 권한이 확대되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재난문자는 급증했다. 재난문자 서비스 시작 이후 2019년까지 연평균 414건에 그쳤던 문자 발송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연평균 5만 4402건으로 131배 폭증했다. 과도하게 반복되는 재난문자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반응도 잇따랐다. 행정안전부는 과도한 재난문자가 오히려 경각심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따라 상황에 맞는 송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지자 과도할 정도의 선제 대응 개념으로 재난문자도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내용이 ‘집중호우 예상 침수 위험지역 통행 자제’ ‘산사태 위험지역 접근 금지’ 등 원론적 내용들이 반복적으로 발송되다 보니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부산경찰청의 실종자 문자까지 섞였다. 인터넷이나 SNS상에도 ‘짜증모드 안전안내문자’ ‘안전문자 엄청 오네요 전쟁난 줄’ 등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일상에 방해된다며 재난문자 알림 설정을 꺼 놓는 사람도 많다. ‘안전안내문자’를 검색하면 ‘안전안내문자 차단’이 바로 따라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 18일 집중호우 때는 시와 구‧군의 재난문자가 ‘동천 수위 상승 통행 자제’ ‘우장춘 지하차도 통제’ 등 좀 구체화하기는 했다. 전문가들은 재난문자가 남발될 경우 국민들 사이에선 재난문자가 긴급하지 않다는 학습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해양경찰과 소방관 등 구조 대원들이 17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14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작 재난 현장에서는 실효성 없어
재난문자는 정작 참사 현장에서는 사전 예방 기능이 없었다. 산사태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에서도 피해 발생 전 예천군에서 ‘우리 지역 호우주의보 발효 중’이라는 재난문자를 1건 발송했지만 원론적 문구로는 참사 예방에 한계가 있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17건의 재난문자를 쏟아냈지만 결국 1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되는 참사를 막지 못했다.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청주 오송지하차도 참사의 경우도 해당 지하차도에 대한 차량 통행금지 등 구체적 재난문자는 사고 2시간이 넘어서야 발송됐다. 2020년 발생한 초량지하차도 참사의 경우도 1시간 후에야 재난문자가 나갔다. 이번 집중호우에 발생한 학장천 사고 전에도 구체적 재난 경고는 없었다.
12일 오전 부산 사상구 학장천에서 경찰과 소방 인력이 지난 11일 폭우로 학장천의 물이 불어나면서 실종된 60대 시민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오보·오발송 ‘양치기 문자’ 논란
5월 23일에는 서울시가 경계경보 발령을 알리는 위급재난문자를 오발송해 논란이 됐다. 행정안전부가 북한의 우주발사체 발사에 대응해 백령도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는데 서울시가 이를 오독해 공습경보 사이렌과 함께 위급재난문자를 날린 것이다. 행정안전부에서 서울시 공습경보가 오발령임을 알리는 재난문자를 다시 발송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오발령도 문제지만 앞뒤 없는 문자 내용으로 인해 논란이 확대됐다. ‘오전 6시 32분 서울 전역에 공습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재난문자는 무엇 때문에 어디로 대피하라는 건지 오히려 시민들을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 기상청은 올해 장마철을 앞두고 극한 호우 시 직접 재난문자를 발송한다는 계획하에 6월 15일부터 수도권 시범실시에 들어갔다. 기상청은 7월 12일 서울에 극한 호우 상황이 발생하자 언론에 재난문자 발송 사실을 알렸지만 동 코드를 잘못 입력해 문자가 발송되지 않는가 하면 엉뚱한 지역에 잘못 문자가 발송되기도 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결국 이 같은 재난문자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집중호우 피해 현장 방문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충남 논산시 성동면 구연육묘장을 방문해 수해를 입은 육묘농가의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극한 기후 뉴노멀 맞춤형 대응 필요
극한 기후와 사회 현상으로 재난 대응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져 재난문자를 보다 실효성 있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문구와 횟수 등에 대한 정확한 효과 분석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명확한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재난문자의 현장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도 고민해야 한다. 오송지하차도의 경우 참사 1시간 전에 지하차도를 통제해야 한다는 112신고가 있었는데 이럴 때 현장 출동과 함께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또 자치단체마다 CCTV가 그물망처럼 갖춰져 있는데 CCTV 상황실과 연계해 실시간으로 위험을 알릴 수는 없느냐는 생각이다. 또 인공지능(AI) 시대에 재난 매뉴얼이 첨단 기능을 활용하지 못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산시에서 한때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재난 대응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원론적 문자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동이나 마을 단위 특정 지역에 특정한 위험을 알리는 재난문자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누차 있어 왔다. 재난문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분명하지만 뉴노멀 시대에 얼마나 효과적이고 스마트하게 갈 수 있느냐를 정부와 지자체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