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78년 전 비극의 증언록

그때 사건 기억할 유일한 생존자
천장까지 튀어 올랐다 떨어져
배 꼭대기서 본 바다는 아비규환
떠다니는 보따리라도 잡으려 애써
억울한 죽음 목격한 트라우마에
그때 이후 배 안 타고 일본 안 가

지난 6월 경남 진주시에서 만난 우키시마호 사건 생존자 이순연 할머니가 가족 사진을 보며 우키시마호 침몰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할머니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김보경 PD harufor@

1945년 8월 24일.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강제동원 한국인을 태운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일본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4730t급 거함은 돌연 뱃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고, 의문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그토록 그리던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수천 명의 한국인이 수장됐다. 일본이 발표한 한국인 공식 사망자는 524명.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은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및 옛 오미나토 해군시설부의 우키시마호 희생자 명단을 각각 단독 입수해 번역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실제 사망자는 최대 8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2023년 8월 8일. 78년이 흘렀지만 그들은 죽어서도 고향을 찾지 못한다. 탈출하고자 몸부림쳤던 일본 땅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배는 고철로 팔렸고, 대부분의 유해는 주변에 집단 매장되거나 바닷속에 잠겼다. 50년 전 각계의 노력 끝에 국내로 반환된 유골조차 뿔뿔이 흩어졌다.

<부산일보>는 자매지 <서일본신문>과 한일 지역언론사 최초의 공동기획으로 일본에 남은 유골을 되찾고 ‘잊힐 위기’에 놓인 우키시마호의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이미 봉환된 유골도 한데 모아 ‘그날’을 기억할 역사적 공간이 마련되길 바란다. 현 정부의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실타래다. 목적지 부산항을 향한 우키시마호의 마지막 항해다.

“제 나이 여든한 살입니다. 죽어서 아버지를 뵈면 적어도 ‘유골은 고국의 금수강산에 모셔뒀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유족 한영용 씨)

“이제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이순연(87·경남 진주시) 할머니는 우키시마호 사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0여 년 전부터 언론사, 시민단체 등에서 여러 사람이 찾아왔지만 그때뿐이었다고. 아직 추모 공간도 없다는 취재진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재차 되묻기도 했다.

“아이고, 죽은 사람 동상이라도 하나 세워줘야 된다.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는데….”

할머니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억하는 거의 마지막 생존자다. 당시 나이는 열 살. 취재진이 81명의 생존자기록부를 입수해 주소와 연락처를 전부 확인한 결과, 사건을 기억할 만한 연령대는 할머니가 유일했다. 다른 생존자는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생존자 이순연 할머니.

■“내려다보니, 까마귀 떼처럼 바글바글”

구사일생한 그날의 기억은 또렷했다. 너무 배가 고파 친구들과 말린 청어를 몰래 빼 먹으려고 식당으로 갔을 때였다.

“갑자기 ‘팡’하더니 천장까지 튀어 올라갔다 떨어진 겁니다. 떨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물에 안 빠지려고 청어 포대를 거머쥔 거지. 주변에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명도 없고.”

다행히 일본인 식당 직원들이 할머니를 구해줬다.

“밥하는 사람들은 배가 터질 줄 알았던지 작은 고깃배를 타고 나가고 있더라고. 폭발 전에도 바다 쪽으로 작은 배들을 막 달아놨거든. 하여튼 배를 타고 나가면서 내 목을 당겨 올려 주고 가는 겁니다. 어디에다 올렸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한 발 한 발 가다 보니 사다리가 있더라고. 그렇게 올라가서 식구들을 다시 만난 겁니다.”

배는 두 동강이 난 채 서서히 가라앉았다. 할머니와 가족들은 점점 높아지는 선미와 선수 쪽으로 계속 타고 올라갔다.

“아버지가 한 명이라도 살려야 된다며 어린 동생을 허리에 둘러매고 가겠다는 거야. 언니와 내가 ‘우리는 어쩔 거냐’면서 막 붙들고 우니까 차마 못 가고 애를 다시 풀어놓더라고. 엄마는 당시 폭발의 충격으로 숨도 쉬지 않는 갓난아기(막내)를 계속 업고 있지. 아버지는 막 왜 죽은 아기를 업고 있느냐고 엄마와 싸우지. 오빠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당시 상황은)말도 못 합니다. 엄마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면 꼭 다른 데 가서 묻을 거라며 애를 절대 안 놓더라고.”

배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바다는 충격이었다. 폭발로 배 기름통이 터지는 바람에 이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바다를 뒤덮고 있었다.

“차마 사람 형태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시커먼 까마귀 떼가 앉은 것처럼 바글바글하더라고. 서로 살려고 둥둥 떠다니는 보따리를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잡으니까 또다시 가라앉고…. 일본 어민의 고깃배가 구해준다고 들어왔는데 빠진 사람들이 한쪽에 막 많이 매달리니까 배가 픽픽 엎어지더라고. 그러니까 (고깃배가)안 들어오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죽었지. 그 장면은 훤합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고깃배는 하나둘씩 다시 들어와 생존자를 실어 날랐다. 배 위에 매달려 있는 생존자 중 애들은 밑으로 던져 다른 배로 옮겼다.

“어른들은 내려가다 미끄러져 죽기도 하고, 애는 던져서 밑에서 못 받으면 그냥 죽는 거였고….” 기적적으로 할머니 가족은 모두 목숨을 건졌다. 숨이 끊어진 줄 알았던 갓난아기도 살았고, 헤엄을 잘 치던 오빠는 이미 뭍에 가 있었다.

생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은 채 해군 창고로 모여들었다. “남자고 여자고 팬티도 안 입은 사람이 쌨더라고. 한 일주일 있으니 해군 군복을 하나씩 나눠줬습니다.”

희생자도 다시 한번 목격했다. “살아 나온 사람들이 시체라도 볼 거라고 나갔는데, 파도가 치니까 빠져 죽은 사람들이 싹 밀려 나오는 겁니다. 바닷가에 (그 시체를)다 엎어 놓은 거지. 배에 물이 찼으니 물 뺀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겁이 나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겠더라고.”

할머니 가족은 일본 주민의 마구간이나 신발장 등에서 잠을 자며 지내다 겨우 한국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고국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식구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할머니도 아버지를 중간에 길에서 잃어 수양딸 생활을 했다. 먹을 물이 없어 흙탕물을 마시기도 했다. 우연히 가족이 다시 만나 함께 살았지만, 먹고 사느라 가족끼리 제대로 찍은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

“처음 한국 땅에 왔을 때 막 사람들이 나와서 인사도 하고 주먹밥도 하나씩 줬습니다. 조선 땅이 이렇게 참 살기 좋구나 생각했는데…. ”

■“참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입니다”

일본 생활과 그날의 기억은 할머니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배를 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여행도 가지 않는다.

“바다 위만 하더라도 최소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배 안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았겠습니까. 내가 말을 이렇게밖에 못 해서 그렇지 얼마나 큰 사고입니까.”

할머니는 유족의 뜻에 따라 이제라도 유골을 되찾기를 바란다. 추모 공간이 생기면 꼭 한번 가 보고 싶다고 했다.

“참 억울하게 죽었지. 누가 한국 땅이 보인다고 하니, 다들 바다 쪽으로 나가서 ‘보인다’ ‘보인다’며 쳐다보고 이랬거든요. 알고 보니 일본 땅이었고 거기서 딱 폭발한 겁니다. 보러 나갔던 사람들 다 빠져 죽고…. 내 몸만 성하면 (추모 공간에)가 보고 싶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