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9월 위기설… 한국 경제 괜찮나
자영업 ‘빚 폭탄’은 과장된 측면 있다
2금융권 연체율·부동산 PF 위험 여전
경제 위기에 비상한 각오로 대비해야
정부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9월 위기설’이 말끔히 가시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은 최근 금융가에 널리 퍼진 9월 위기설과 관련해 “위기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국내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이 전반적으로 안정적 모습이고 금융사들도 위기 상황에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의 건전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계 부채 증가 속에 개인회생 신청이 늘고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2금융권의 유동성 위기도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 경제가 하반기에는 침체를 딛고 일어설 것이라는 ‘상저하고’의 전망도 각종 경제지표 악화와 함께 점차 설득력을 잃어 가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는 정말 괜찮은 것일까.
코로나 사태 3년을 거치며 시중에서 자취를 감췄던 5만원권 지폐가 장롱이나 금고에서 다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리 상승에 따른 여파로 해석된다. 사진은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왜 9월인가
9월 위기설은 우선 역사적 사건에 기댄 측면이 있다.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2008년의 미국 리먼 사태와 2011년의 유럽 재정 위기가 9월에 있었다. 1997년 우리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도 9월에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9월 국내 증시 붕괴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내외적 요인들이 겹치면서 9월 위기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미국에서는 고금리 여파에 따른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중소형 은행들의 부동산 부실 문제가 본격화했다. 중국도 경기침체 장기화와 부동산 위기로 통화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등 불안한 모습이다. 대내적으로는 코로나 대출금 상환 유예가 9월에 종료되면서 금융 부실 사태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에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에 따른 2금융권 유동성 위기까지, 위기의 신호들이 쌓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IMF 연례협의 대표단과 화상으로 면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코로나 대출 만기 ‘빚 폭탄’
코로나 당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지원했던 대출금의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9월로 끝나 ‘빚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소문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연착륙 지원 방안’에 따라 대출 만기를 최대 2025년 9월까지 연장할 수 있어 현시점에 상환 만기가 몰릴 가능성은 적다. 또 상환 유예 대출은 최장 5년간 원금 분할 상환이 가능하고 일부 자체 상환으로 대출 잔액도 꾸준히 줄고 있어 상환 만기 도래에 따른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경기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원금 상환 유예를 받은 자영업자들이 원금 상환을 감당할 여력이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이자 상환 유예 자영업들의 경우 부실 위험이 크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이나 채무 상환 포기가 상승하고 있는 것도 연착륙에 대한 불안감을 키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 연체율은 6.35%로 지난해 말 3.31%에서 배 가까이 급등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사건은 7만 575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9%나 늘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4일 오후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본사를 찾아 야드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저축은행 유동성 위기 현실화하나
9월 위기설의 또 다른 진원지인 저축은행 업황을 놓고도 금융 당국과 시장 전망이 엇갈린다. 금융감독원은 하반기에는 저축은행의 영업 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저축은행에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신용평가사의 경고가 나오는 등 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9월 위기설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고금리 여파 속에 2금융권에서 돈을 많이 빌리는 영세 자영업자의 대출이 코로나 대출 지원 종료와 맞물려 금융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또 부동산 PF 부실이 언제든 2금융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호금융조합(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의 연체율은 지난 6월 말 2.8%를 기록해 지난해 말(1.52%)보다 1.28%포인트 늘었다. 그나마 새마을금고 연체율은 제외된 수치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6월 말 기준 5.33%로 지난해 말(3.41%) 대비 1.92%포인트 올랐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올해 평균 총자산이익률(ROA)이 마이너스로 전환하는 등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기준 금리 상승 여파로 이자 비용이 늘어나고 부동산 PF 우려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늘린 영향인데 경기 상황이 더 악화하면 유동성 위기에 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통관 기준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8.4% 줄어들었다고 1일 발표했다. 11개월째 수출 감소세다. 연합뉴스
∎내년이 더 어렵다
금융가에는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9월 위기설도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 컨센서스다. 최근 한국과의 연례협의에 나선 헤럴드 핑거 IMF 단장은 “한국은 강력하고 건전한 펀더멘털을 가지고 있다”며 “나름의 취약성도 있지만 한국에 금융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10월부터 경제지표가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상저하고’의 올해 우리 경제 전망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의 각종 경제지표는 정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 세계 경기침체 우려와 소비 둔화로 반도체 회복세가 늦춰지면서 제조업 생산은 11개월 연속 감소했고 수출도 11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 기댈 곳은 국내 소비뿐인데 가계 부채는 쌓이고 고물가에 올해 상반기 실질임금은 통계가 작성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한마디로 쓸 돈이 없다는 이야기다. IMF도 9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도 하반기 기대보다 회복세가 더딜 수 있고 부동산 위기로 인한 중국 경기침체 여파가 내년도 한국 경제에 추가적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9월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른 우리 경제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낙관적 전망만 외칠 게 아니라 비상한 각오로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정치권이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이념 논쟁, 역사 논쟁이 한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강윤경 논설위원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