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길고양이, 포용이냐 방목이냐
“동물권 향상 필요” “형평성 어긋나”
국민 의견 엇갈리는 논쟁적 주제
시대 가치에 맞게 공존 해법 찾아야
고양이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달 6일 경남 통영시가 국내 처음으로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 일명 ‘고양이 학교’를 개소했다. 유기묘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유도한다는 게 취지다. 최근 충남 천안시는 아예 길고양이 보호를 위한 조례안을 만들었다. 이 역시 국내 처음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개체 수 관리, 인간과의 공존이 목적이다. 국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선진국 수준의 동물권 향상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특정 동물을 위해 혈세를 쓰는 게 적절하냐’는 반대 여론이 맞서고 있다.
길고양이 보호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거세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100만 마리의 길고양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일보DB
■ ‘동물권’ 인식, 변화의 바람
통영의 고양이 학교와 천안의 길고양이 보호 조례안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섬마을 폐교를 활용한 고양이 학교는 구조에서부터 치료·건강 관리·입양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도맡는다. 주민 참여 예산과 시비 등을 들여 보호실과 치료실, 캣·북카페 등을 갖췄다. 생후 3개월 미만의 구조묘나 유기묘·장애묘가 우선 입소 대상인데 최대 120마리까지 보호할 수 있다. 고양이를 주제로 한 생명·생태 교육 사업도 담당한다. 이를 위해 통영시는 운영 조례도 마련했다.
천안의 길고양이 보호 조례안은 한마디로, 길고양이와 시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책의 수립과 시행의 근거다. 길고양이 보호·관리, 교육·홍보, 급식시설 설치, 중성화 사업에 대한 시장의 책무가 명시돼 있다. 권고가 아니라 의무 사항이라는 것인데 시민도 시 정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길고양이 문제에 따른 주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길고양이보호관리위원회’ 설치 조항도 담겼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에는 길고양이가 생태계 일원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동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깔려 있다. 길고양이 보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중성화 수술로 개체 수를 조절해 인간과 공존해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한 걸음 더 성숙해지는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국내 첫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가 6일 경남 통영에서 문을 열었다. 통영시는 한산면 용호도의 한 폐교를 리모델링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통영시 제공
■ 특정 동물만 보호, 어째서?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유독 고양이에게만 동물권을 주느냐, 특혜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 중에는 일반적인 동물복지와 관련된 조례를 만든 곳은 많지만 ‘고양이’라는 특정 동물을 대상으로 조례를 만든 곳은 없다. 이는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물론 고양이 급식소 설치나 중성화 사업 근거를 위한 한정된 목적의 조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고양이 보호 조례는 아직은 없는 상태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 반려동물 진료 지원 조례(2021.3.24), 반려동물 관련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2021.12.29), 동물 보호 및 복지에 관한 조례(2022.10.26)가 제정된 바 있지만 고양이를 중심에 둔 조례는 아니다. 부산의 기초지자체 차원에서도 16건의 동물 관련 조례가 제정돼 있는데, 전부 동물복지나 반려동물과 관련된 보편적 내용이다.
길고양이 보호를 반대하는 이들은 고양이가 희귀종도 아니고 멸종위기종도 아닌데 어째서 보호 대상이 되는지 묻는다. 고양이만 세금을 들여서 먹여주고 살려주고 집까지 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고양이 때문에 금전적, 정신적 피해 사례가 발생하는 점도 반대 여론의 한몫을 차지한다. 고양이 때문에 주차 차량이 손상되고 울음소리로 고통을 겪는 일들이 그것이다.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고 다니거나 새를 사냥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 길고양이, 유해한가 무해한가
고양이는 우리나라 야생생물법이 정하는 ‘유해야생동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버려지거나 야생화된 가축 혹은 반려동물로 인해 질병 감염이나 생태계 교란의 우려가 있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돼 있다. 특히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의 경우 포획·사살·중성화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문제는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생하는 길고양이다. 애초 길에서 알아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점을 인정해 서식지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길고양이를 함부로 죽이면 처벌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고양이는 한국에서 두 개의 법적 지위를 지닌다. 고양이는 인간과 자연, 두 세계에 걸쳐 있는 이중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도심이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해 스스로 살아가는 길고양이는 서식지에서 살아가도록 법으로 보호받는다. 그러나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들고양이에 대해서는 포획·사살 등의 조처가 가능하다. 부산일보DB
■ 찬반 논란 속 공존 해법 찾아야
당국과 언론에서 추정하는 전국 길고양이 수는 대략 100만 마리 수준이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제시된 적은 없다. 그런데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개인, 동물권 보호단체, 정부, 지자체,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막론한 얘기다.
적정 개체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꼽히는 것이 중성화 수술이다. 문제는 그 효과에 대한 입장차가 극명히 갈린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국 7대 광역시에서 길고양이가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과장된 발표라고 보는 반론도 있다. 무엇보다 국내외 학자들 사이에서도 관련 연구 결과가 상반되게 나온다.
길고양이 문제는 찬반양론이 나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쉽지 않다. 그 취지대로 동물권 확보와 개체 수 조정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거둘지, 아니면 그냥 길고양이의 무한 증가로 귀결될지 전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길고양이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지만, 무제한적인 증가를 방치해도 곤란하다는 것. 그렇다면 더 이상의 번식을 막으면서도 새롭게 버려지는 고양이가 생기지 않도록 현실적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무차별한 수용’이냐 ‘무책임한 방목’이냐, 이런 이분법을 넘어 공존의 해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