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빠질 수 있는 중독, ‘중독자’ 인정이 치료 첫 단계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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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큐 전문의를 만나다] 가나병원

가나병원 독고향 진료과장이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가나병원 제공 가나병원 독고향 진료과장이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가나병원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인 허슬러’는 미국 제약회사의 영업직에서 임원에 오른 여성의 시각으로 제약회사가 어떻게 마약성 진통제의 남용을 기획하는지 그린 드라마다. 미국에는 마약성 의약품의 오남용 실태를 고발하는 작품들이 다수 있지만 실화라는 점이 돋보인다.

마약류는 도파민 분비를 늘려 쾌락을 촉진시키는 흥분제와 가바(GABA)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억제해 쾌락의 강도를 높이는 진정제가 있다. 흥분제와 진정제는 통증을 줄이는 약제로도 개발됐다. 약제라도 의존성과 금단증상을 가져오면 중독으로 빠질 수 있다.

가나병원 독고향 진료과장은 “중독은 걸리는 사람과 걸리지 않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질병’으로 봐야 한다”며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며 진화해 왔기 때문에 누구나 중독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마약, 향정신성 의약품, 대마 같은 마약류 외에도 술, 담배, 도박, 섹스와 같은 자극 요인뿐만 아니라 일, 운동, 수면, 음악 등도 중독의 대상이 된다.

중독은 우리 뇌의 항상성을 깨뜨린다. 뇌는 외부 변수에 맞서 쾌락과 고통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약물이나 자극이 들어오면 뇌에서는 쾌락, 보상, 동기 부여에 관여하는 대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고 이와 함께 고통을 관장하는 가바도 분비되면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쾌락이 반복되면 도파민 반응이 중단되어 도파민 결핍 상태가 오면서 중독 상태로 넘어간다. 이 순간부터 같은 약물이나 자극에도 쾌락이 아닌 고통이 느껴지고 내성, 금단증상 그리고 갈망이 오면서 더 강한 약물이나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마약 중독 치료는 약물 복용으로 적극적인 치료를 하고 이어지는 금단증상을 극복하기 위해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한다. 중독 물질은 뇌에서 생기는 물질들을 모방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마약 효과만 분리해 치료하기 힘들다. 1년 이상 장기적으로 접근해 몸의 항상성을 회복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이다. 마약 치료 재활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약물 중독은 뇌 작용을 거치지 않고 복용하는 순간 몸이 반응한다. 그래서 중독에 빠져도 본인이 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독고향 진료과장은 “중독 치료의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치료 의지를 갖는 것”이라며 “나를 중독에서 분리시키고, 중독에 맞서 이기려 하지 않으며, 머릿속 중독 기억을 지우고 중독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중독으로 내성이 생긴 사람은 중독 물질에 대한 역치가 올라가 있다. 중독 물질을 끊으면 공허감, 우울감, 무력감으로 또 다른 고통을 받게 된다. 치료 중간 과정으로 음악, 운동, 취미생활, 업무 등 생산적인 활동으로 중독의 대상을 갈아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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